아이스크림, 그리고 천국 잔치 — 뉴질랜드 오클랜드, 모두를 위한 이야기 — (장애인 인식 개선 소설)
아이스크림, 그리고 천국 잔치
— 뉴질랜드 오클랜드, 모두를 위한 이야기 —
장애인 인식 개선 소설
"완전한 참여와 평등." — 1981년 UN 세계 장애인의 해 표어
제1장 : 뉴마켓 오후 세 시
오클랜드의 9월은 봄이다.
남반구의 봄은 낯설고 아름답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은 늘 이 계절 앞에서 잠깐 멈칫한다. 서울에서라면 9월은 이미 가을 문턱인데, 여기서는 교복 소매를 걷어붙이고도 덥다. 뉴마켓(Newmarket) 브로드웨이 스트리트에 심어진 포후투카와 나무들이 손을 흔들듯 가지를 흔들고, 카페 테이블 위의 플랫 화이트가 김을 피워 올리고, 노란 버스가 경쾌하게 코너를 돌아 사라진다.
세 소녀가 학교를 막 마쳤다.
이나 황(Ina Hwang, 열여섯), 소현 박(Sohyun Park, 열여섯), 그리고 막내 유나 정(Yuna Jung, 열다섯). 셋 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지만 성격은 제각각이다. 이나는 반장 스타일, 소현은 말이 없고 그림을 잘 그리며, 유나는 아직 뉴질랜드 영어가 서툴지만 호기심만큼은 누구도 못 당한다.
교복 치마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셋이 브로드웨이 스트리트를 걷는다. 보도 양쪽으로 부티크 가게들이 늘어서 있고, 그 틈새로 젤라토 가게 하나가 분홍색 차양을 드리우고 있다.
"여기 젤라토 맛있다던데." 유나가 가게를 향해 이미 발걸음을 옮기며 말한다.
"우리 숙제 있잖아." 이나가 일단 따지고 나서, 0.3초 후에 자기도 발걸음을 옮긴다.
소현은 말없이 따라간다.
세 개의 콘. 유나는 망고 소르베, 이나는 피스타치오, 소현은 라즈베리. 각자 콘을 손에 들고 다시 보도로 나온다. 9월 오후의 햇살이 아이스크림 위에서 반짝인다.
그때였다.
보도 저편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스물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남자. 키가 크고 목이 길었다.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청바지를 입었는데, 걸음걸이가 약간 딱딱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가까워지면서 세 소녀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그의 고개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홱, 꺾였다.
"췻!"
소리가 났다. 혀가 치아 뒤쪽을 치는 소리. 욕설처럼 들렸다. 그리고 잠깐 후, 다시 고개가 홱 꺾였다. 이번엔 왼쪽으로.
유나가 이나의 팔을 꽉 잡았다. "언니, 저 사람…"
이나도 순간 걸음을 멈췄다. 소현은 아이스크림을 핥다가 손을 내렸다.
세 소녀는 무섭다고 느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섭다'기보다는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오는 그 막연한 공포.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그게 두려움의 정체였다.
그 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사람이 걷고 있었다. 이번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눈이 조금 좁고 얼굴이 동그랬으며, 표정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눈동자의 초점이 약간 먼 곳을 향해 있었다. 몸을 좌우로 살짝살짝 흔들면서 걷고 있었다.
유나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이미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유나는 손에 들고 있던 망고 소르베 콘을 내밀었다. 여자아이를 향해.
"이거 먹을래?"
수영이가 유나를 올려다봤다. 초점이 먼 것 같았던 눈이 이제 유나의 아이스크림 콘에 고정되어 있었다. 뚜렷하게.
"아이스크림이네."
수영의 목소리는 낮고 천천했다. 감탄사가 따로 없었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것 같았다.
"응, 망고야. 먹어봐."
수영이 아이스크림을 한 입 핥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수영이 아이스크림 좋아해."
그게 전부였다. 더 이상의 수식도, 감사도 없었다. 그냥 그 사실 하나를 말했다. 하지만 그 문장 안에 기쁨이 통째로 들어있었다.
옆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저는 뚜렛 증후군이에요. 틱 장애라고도 하죠. 고개 움직임이랑 소리가 저도 모르게 나와요. 놀라셨죠?"
유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 아니… 솔직히 처음엔 좀 놀랐어요. 근데 이제 괜찮아요."
남자가 살짝 웃었다.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게 낫거든요."
제2장 : 100가지 오해
그날 밤, 이나는 숙제를 하다가 인터넷을 검색했다.
뚜렛 증후군. 자폐 스펙트럼. ADHD. 틱 장애.
화면 가득 정보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나는 자신이 오늘 오후 브로드웨이 스트리트에서 얼마나 많은 오해를 품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 오해 하나.저 사람은 화가 난 거다.
→ 뚜렛 증후군의 틱은 감정과 무관한 신경학적 반응이다. 본인도 통제하기 어렵다.
●오해 둘. 저 소리는 욕설이다.
→ 뚜렛 증후군 환자 중 욕설성 틱(코프롤라리아)을 보이는 경우는 전체의 10~15%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눈 깜빡임, 고개 흔들기, 음성 틱(헛기침, 흥얼거림 등)이 주된 증상이다.
●오해 셋. 눈동자 초점이 없는 건 이상한 거다.
→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때때로 눈 맞춤이 어렵거나, 시선이 먼 곳을 향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집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각 처리 방식이 다른 것이다.
●오해 넷. 몸을 흔드는 건 위험한 신호다.
→ '스티밍(stimming)'이라고 불리는 자기 자극 행동은 자폐인들이 감각 과부하를 조절하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안정제다.
●오해 다섯. 저런 사람들은 혼자 다니면 안 된다.
→ 많은 자폐인과 틱 장애인은 자립적인 삶을 산다. 잭슨처럼,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다니고, 가족을 돌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쇼핑을 한다.
이나는 공책에 썼다.
"오늘 나는 처음에 무서웠다. 그런데 그 무서움은 그 사람이 무서운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게 무서웠던 거다."
제3장 : 잭슨 오빠
남자의 이름은 잭슨 리(Jackson Lee)였다.
한국 이름은 이재훈. 스물다섯 살. 오클랜드 공과대학교(AUT)에서 IT를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었다. 여동생 수영(Lee Suyoung, 열 살)의 보호자이기도 했다. 두 남매는 부모님이 한국에 계신 동안 오클랜드에서 함께 살았다. 수영은 지역 특수 한글 학교인 "밀알 스쿨"에 다녔다.
다음 날, 이나는 수영이 다니는 학교가 그들의 학교 근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교에서 지역사회 봉사 프로그램으로 특수학교와 교류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담당 선생님 Mrs. 웨슬리가 교실에서 발표했다. "우리가 이번 학기에 "밀알 스쿨" 친구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볼링, 레고 클래스, 농구, 음악 치료, 여러 가지 활동들이 있어요. 자원봉사자를 모집합니다."
이나가 손을 들었다. 유나도 들었다. 소현이 잠깐 망설이다가 들었다.
제4장 : 볼링장에서
볼링장은 오클랜드 서쪽의 핸더슨에서 있었다."밀알 스쿨"에서 온 아이들은 열두 명이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 ADHD를 가진 사람, 틱 장애를 가진 사람,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 나이는 여덟 살에서 사십살까지 다양했다.
수영도 왔다. 이나를 보더니 "어제 아이스크림"이라고 말했다.
이나가 웃었다. "맞아, 어제 아이스크림. 나 이나야."
"이나." 수영이 그대로 따라 말했다.
수영은 볼링공을 보고 오래 서 있었다. 레인 앞에서 공을 쥐고, 내려놓고, 다시 쥐고. 두 번째 시도에서 핀 두 개를 건드렸다.
수영이 멈췄다. 그리고 아주 작게 — 정말 아주 작게 — "핀." 이라고 말했다. 마치 핀이 쓰러진 사실 자체가 새로운 발견인 것처럼.
ADHD를 가진 한 남자아이 — 투이(Tui, 열두 살) — 는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의자에 앉았다 싶으면 일어나고, 레인 경계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옆 레인의 공을 집으러 달려갔다. 그러나 투이의 차례가 됐을 때, 달려와 공을 힘껏 던졌다. 스트라이크였다.
"오!!" 투이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수영이 고개를 돌려 투이를 봤다. 그리고 조용히 "잘했어 토미."라고 말했다.
"매디슨 볼 효과라는 게 있다고 했다. 볼링이 자폐 아이들에게 좋은 이유가, 혼자 집중하는 시간과 결과의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기 때문이라고. 공이 굴러가고 핀이 쓰러지는 것. 그게 수영이한테는 진짜 큰 일이었던 거다. 나한테는 당연한 것인데."
제5장 : 레고 교실
레고가 쏟아졌다. 투이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가만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아이가, 레고 더미 앞에 앉자마자 조용해졌다. 고도로 집중하는 눈빛.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밀리 선생님이 이나에게 조용히 설명했다. "ADHD를 가진 아이들이 관심 있는 것에 집중할 때는 완전히 달라요. '하이퍼포커스'라고 해요. 집중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관심이 없는 것에 집중하기 어려운 거예요."
20분 후, 투이는 완성된 레고 기차를 들고 선생님한테 달려갔다. 바퀴가 진짜로 돌아갔다.
수영은 레고 교실에서 다른 방식으로 집중했다. 색깔별로 블록을 분류했다. 빨간 것 옆에 빨간 것, 파란 것 옆에 파란 것. 혼자서 묵묵히, 아주 정확하게.
소현이 수영 옆에 앉아서 같이 분류를 도왔다. 한동안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그냥 옆에서 같이 블록을 정리했다. 수영이 처음 말을 걸었다. "이거 파랑." "응, 파랑이네." "이거 소현이 해."
"수영이가 자기 분류 작업을 다른 사람이 건드리는 걸 싫어해요. 그걸 허락한 거면 대단한 거예요." — 에밀리 선생님
제6장 : 축구 교실의 이준
틱 장애를 가진 아이는 이준(Lee Jun)이었다. 열세 살. 눈 깜빡임과 어깨 들썩임이 주된 틱이었다.
처음에 이준은 운동장 한쪽에 서서 다른 아이들이 뛰는 것을 바라봤다. 뛰다가 틱이 나오면 애들이 볼까봐 무섭다고 했다.
코치 샘이 운동장 전체를 향해 외쳤다. "얘들아, 오늘 워밍업은 어깨 올리기야! 양쪽 어깨를 귀까지 올려봐. 그리고 팍, 내려."
아이들이 따라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몇 번 하고 나니 다들 자연스러워졌다.
샘이 이준에게 걸어와 조용히 말했다. "이제 네가 어깨를 들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안 볼 거야. 다들 방금 다 해봤으니까."
이준이 운동장으로 나왔다. 경기 끝 무렵, 이준이 코너킥으로 어시스트를 했다. 공이 정확히 동료의 발 앞으로 굴러갔고, 동료가 슛을 쏘아 골이 들어갔다.
이준이 두 팔을 들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눈이 깜빡였다. 그리고 웃었다.
오후의 햇살 속에서 이준의 웃음은 어떤 말보다 컸다.
제7장 : 모두를 위한 농구 교실
토요일 오후, 농구 교실이 열렸다. 제목은 "For Everyone Basketball"이었다.
코치 조이의 수업은 달랐다. 경쟁이 없었다. 팀을 나눴지만 점수를 세지 않았다. 대신 각자 목표가 있었다.
수영의 목표: 공을 두 번 튀기기
투이의 목표: 5초 동안 제자리에 서 있기
이준의 목표: 한 번 패스하기
이준이 공을 들고 링 앞에 섰다. 던졌다. 림에 맞고 튕겨 나왔다. 다시 던졌다. 들어갔다.
조이가 환호했다. 이나가 박수쳤다. 유나가 소리를 질렀다. 이준이 어깨를 들썩였다.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제8장 : 오쿠페이션 떼라피 — 엔진룸
토요일 아침에 이나와 유나는 처음으로 "엔진룸(Engine Room)"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뉴질랜드의 오쿠페이션 떼라피(Occupation Therapy, 작업치료) 선생님이 뉴질랜드 엔진룸 코스에 맞게 만들어 주셨다.
치료사 앤이 말했다. "발달은 끝이 없어요. 나이에 상관없이 인간의 뇌는 계속 배우고 변해요. 여기는 그 변화를 돕는 곳이에요."
수영이 덤플린에 올랐다. 위아래로 팡팡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영의 눈이 반짝 뜨였다. 몸을 위아래로 흔며 자기 자극 행동이 덤프린 리듬으로 옮겨갔다.
"전정 감각(vestibular sense)이라고, 몸의 균형을 감지하는 감각이 있어요. 많은 자폐인들이 이 감각을 추구해요. 흔들리는 게 본인들한테 굉장히 안정적인 느낌을 줘요.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귀가 즐거운 것처럼, 수영이한테는 흔들림이 몸 전체가 즐거운 거예요." — 앤 치료사
이나는 수영이 걸을 때 몸을 좌우로 흔들던 것을 떠올렸다. 그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수영이가 스스로를 안정시키는 방법이었다.
제9장 : 뮤직 떼라피
금요일 오후, 음악 치료 수업이 있었다. 봉사자 미아가 기타를 들고 들어왔다.
미아가 리듬을 쳤다. 탁, 탁-탁, 탁. 리듬에 맞춰 이름을 말하는 게임이 시작됐다. 수영이 정확하게 박자를 맞췄다. 이준이 틱을 하면서도 "이—준" 박자에 맞춰 말했다. 투이가 몸으로 먼저 반응했다. "투—이!"
"음악은 언어 전에 있어요. 언어가 생기기 전에 리듬이 있고, 멜로디가 있어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음악으로는 자연스럽게 나와요." — 미아 봉사자
제10장 : 잭슨 오빠의 이야기
어느 날 저녁, 이나는 잭슨 오빠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뚜렛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가 열한 살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그냥 내가 이상한 줄 알았어요."
"학교에서 애들이 흉내냈죠. 틱 하는 거. 처음엔 웃으면서요. 나중엔 짜증나서 그냥 집에 있고 싶었어요."
"지금은 그냥… 이게 나야, 싶어요. 없앨 수 있다면 없애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근데 이게 없다면 내가 어떤 사람일지 모르겠기도 하고."
"수영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근데 제가 생각하는 건, 수영이가 행복한지 아닌지예요. 수영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지.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지."
이나가 웃었다. 잭슨도 웃었다. 그게 전부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제11장 : 장애인 예배
주일 오전, 이나는 교회에 갔다. 오늘은 특별한 예배가 있었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예배."
이나는 처음에 이것이 어떤 건지 몰랐다. 장애인이 장기 자랑을 하거나, 장애인을 위한 헌금을 모으거나 하는 것인 줄 알았다.
달랐다.
예배당 맨 앞줄에 휠체어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체 좌석이 다양한 필요를 고려해 배치되어 있었다. 통로가 넓었다. 조명이 부드러웠다. 찬양은 단순했다. 반복되는 짧은 멜로디. 수영이 앞줄에 앉아 찬양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박자는 아무도 못 당했다.
제12장 : 성찬 식탁
성찬 떡은 조금 달랐다. 충분히 큰 조각으로 나왔다.
집사님이 말했다. "처음엔 우리도 작게 드렸는데, 여기 오시는 분들이 성찬을 좋아하세요. 좀 더 드시고 싶어 하시고."
"예수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인데, 왜 쪼끔씩만 드리냐고. 하나라도 더 먹고 싶어서 성찬으로 오는 사람들한테 은혜가 더 있는 거 아니냐고." — 최 목사님
수영이 떡을 받았다. 한 입 먹었다.
"맛있다."
작게, 조용하게. 주변 어른들이 들었다. 그리고 웃었다. 이나도 웃었다.
맞다. 맛있어야 맞다. 잔치이니까.
최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은혜는 나누면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나누면 남아요. 여운이 남아요."
수영이 빵 한 조각을 챙겼다. "오빠 줄 거예요."
이나의 눈이 뜨거워졌다.
제13장 : 천국 잔치
예배 후 친교 시간. 교회 뒤편 작은 홀에 상이 차려졌다. 떡볶이, 김밥, 잡채. 누군가 가져온 치킨. 그리고 수박.
비장애인들은 대부분 예배 후에 바빴다. 점심 약속이 있거나, 일이 있거나. 목사님 말씀처럼, 장가가야 하고, 소 봐야 하고, 밭에 나가야 하는 사람들.
홀에는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이 주로 남았다.
수영이 수박을 봤다. "수박이다." 잭슨이 웃으면서 한 조각을 잘라 건네줬다. 수영이 양손으로 받아 들었다. 베어 먹었다. 붉은 수박즙이 입가에 묻었다. 수영은 개의치 않았다.
이나는 그 자리를 보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했다. 화려하지 않았다. 특별한 것도 없었다. 그냥 사람들이 앉아서 먹고 있었다. 서로 말이 많지 않아도, 말이 맞지 않아도, 그냥 같이 있었다.
최 목사님이 이나 옆에 와서 조용히 앉으셨다. "처음 와봤어요?" "네." "어때요?"
"천국 같아요."
"맞아요. 이게 천국이에요."
제14장 : 100가지 에티켓
그다음 주, 이나는 학교 수업 발표를 준비했다.
제목: 뉴질랜드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 — 오해와 진실, 그리고 에티켓
이나는 밤새 썼다. 새벽 두 시까지. 100가지를 채우는 것이 목표였는데, 쓰다 보니 100가지가 부족할 것 같았다.
● 틱 장애인이 소리를 내거나 갑작스러운 행동을 할 때, 흉내 내거나 웃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다.
자폐인이 눈을 맞추지 않아도 당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눈 맞춤이 그들에게 다를 수 있다.
● 자폐인이 몸을 흔들거나 손을 흔들 때, 제지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조절의 방법이다.
●장애인에게 말을 걸 때, 보호자에게 먼저 묻지 말고 당사자에게 직접 말을 건다.
"저 사람 왜 저래?"를 속삭이지 않는다. 그들이 듣는다.
●장애인이 무언가를 천천히 할 때, 재촉하지 않는다. 그들의 속도가 있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나서 돕는다. 허락 없이 휠체어를 밀거나, 손을 잡지 않는다.
● 장애인을 사진 찍거나 동영상 찍을 때, 반드시 당사자 또는 보호자의 동의를 구한다. SNS에 올릴 때는 특히.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낫다"는 비교를 하지 않는다. 장애는 비교의 기준이 아니다.
● 장애인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특별히 다르게 대우하지 않는다. 그냥 같이 있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대우다.
● ADHD를 가진 사람이 가만히 있지 못한다고 게으르거나 버릇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ADHD를 가진 사람이 집중할 수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지지한다.
● 자폐인이 짧은 문장으로 말해도 대화를 충분히 나눌 수 있다. 길게 말하길 기대하지 않는다.
● 장애인이 식당에서 식사할 때 주변에서 쳐다보지 않는다.
● 장애인을 소개할 때 장애를 먼저 소개하지 않는다. 이름을 먼저 소개한다.
이나는 에티켓 100가지가 결국 하나로 줄여진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을 먼저 보는 것."
에필로그 : 봄날, 브로드웨이 스트리트
두 달이 지났다. 11월의 뉴마켓은 더 밝아졌다. 포후투카와 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세 소녀가 또 학교를 마치고 브로드웨이 스트리트를 걷고 있었다. 이번엔 젤라토 가게 앞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수영이었다.
수영이 이나를 보더니 말했다. "이나." 그리고 콘을 내밀었다. 한 입 핥아 먹은 콘을.
"먹을래요?"
이나가 웃었다. "고마워." 한 입 핥았다. 달콤했다.
잭슨이 이나에게 말했다. "수영이가 이나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 볼링 갔다 오고 나서 자꾸 이나 얘기해서."
"이나 좋아해."
세 단어. 이나의 눈이 뜨거워졌다. 이번엔 참지 않기로 했다. "나도 수영이 좋아해."
다섯 명이 젤라토 가게로 들어갔다. 각자 콘을 골랐다. 나란히 나란히 나왔다.
봄날의 오후. 아이스크림. 그리고 사람들.
이것이 전부였다.
이것이 전부여도 충분했다.
— 끝 —
후기 : 뉴질랜드의 장애인 차별 금지법
뉴질랜드는 1993년 Human Rights Act를 통해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이 법은 고용, 교육, 공공 서비스, 주거 등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합니다.
뉴질랜드 장애 전략(New Zealand Disability Strategy)은 '사회적 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에 근거합니다.
장애는 개인의 신체적 또는 정신적 상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이 그 사람을 배제할 때 발생한다.
이 소설에서 볼링장, 레고 교실, 축구 교실, 농구 교실, 음악 치료, 교회 예배가 달라진 것은 장애인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달라진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것이 인식 개선의 본질입니다.
모든 사람은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당신도, 나도, 수영이도, 잭슨 오빠도, 이준이도, 투이도.
천국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소설의 모든 인물은 가상의 인물이며,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적 목적으로 창작되었습니다.
사진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온라인에 게시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