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포식자
Predator of Light
한국 이단을 파헤치는 종교 추리 소설 • 약 50,000자
⚠ 창작물 고지
이 소설의 모든 인물·단체·사건은 순전한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특정 인물이나 종교 단체를 지칭하거나 단죄할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이단의 보편적 작동 원리와 한국 교회의 역할에 대한 신학적·사회적 성찰을 목적으로 씌어진 창작물입니다.
목 차
프롤로그 — 편집실의 밤
1부: 카리스마의 탄생
1장. 첫 번째 제보
2장. 두 개의 믿음 — 종교 천재의 교리 해부
3장. 통일교의 유산 — 카리스마가 제도가 될 때
2부: 이단의 구조
4장. 구원파의 문법 — 날짜가 구원의 증거가 될 때
5장. 관계의 그물 — 사랑으로 포장된 통제
6장. 돈의 신학 — 헌금이 흐르는 방향
3부: 종교 천재의 설계
7장. 종교 천재의 설계도 — 이단이 자라는 5단계
8장. 사라진 청년들 — 공동체의 뒷면
9장. 내부 고발의 대가 — 진실을 말하는 것의 무게
4부: 한국 교회의 응답
10장. 교회의 침묵 — 가장 강력한 방어선의 부재
11장. 빛과 그림자 — 진실의 마지막 조각들
12장. 진실의 무게 — 다큐멘터리의 완성
에필로그 — 일 년 뒤
다큐멘터리 작가의 노트
부록 — 한국 교회를 위한 10가지 바른 종교 정책 제언
Predator of Light
한국 이단을 파헤치는 종교 추리 소설
— 이 소설의 모든 인물, 단체, 사건은 순전한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특정 인물이나 종교 단체를 지칭하거나 단죄할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신흥 종교와 이단의 보편적 작동 원리, 그리고 한국 교회의 역할에 대한 신학적·사회적 성찰을 목적으로 씌어진 창작물입니다. —
프롤로그: 편집실의 밤 — 2034년 11월
새벽 두 시였다.
편집실 모니터 열두 개가 어둠 속에서 파랗게 빛났다. 한지수는 헤드폰을 목에 걸고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식은 지 오래였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지난 여덟 달의 흔적이 쌓여 있었다. 외장 하드 드라이브 열네 개, 녹취 파일 이백삼십 개, 법원 판결문 사본들, 그리고 진술서가 담긴 노란 파일 폴더들. 서류들 사이에는 심리 치료 센터 명함들이 여럿 끼어 있었다.
모니터 속의 남자가 웃고 있었다.
박진혁. 나이 오십삼. JBK 엔터테인먼트 창업주이자 대표이사. 트와이스K, 버블스, 쇼크웨이브를 세계 무대에 올린 K-pop의 설계자. 그러나 지금 이 화면에서 그는 엔터테인먼트 거물이 아니었다. 하얀 반팔 셔츠를 입고 성경책을 양손으로 쥔 채, 그는 수백 명의 청중 앞에 서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컬버시티의 힐튼 호텔 그랜드볼룸. 2034년 3월에 열린 세미나였다.
"여러분."
박진혁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마이크가 없어도 될 것 같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교인들이 가짜 믿음을 진짜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30년 교회를 다니고, 매주 헌금을 드리고, 봉사를 하고, 직분을 받아도. 진짜 믿음을 경험한 적이 없다면, 그분들은 아직 구원받지 못하신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저는 가짜 믿음 안에서 살았어요."
청중석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한지수는 영상을 잠시 멈추고 눈을 감았다. 저 울음 소리를 처음 들은 것이 여섯 달 전이었다. 그때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울음은 진짜였다. 청중의 감동도 진짜였다. 그 진짜 감정이 어떻게 사람을 묶는 도구가 되는지, 그것이 이 다큐멘터리가 추적해온 질문이었다.
그녀는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믿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믿음1과 믿음2. 인간이 의지로 만들어내는 믿음과,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믿음.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계신 믿음은 어느 쪽입니까?"
편집실 문이 열렸다. MBS 다큐팀 막내 김재민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언제 집에 가세요?"
"가도 못 자." 한지수가 말했다. "내일 시사회인데."
"준비 다 됐잖아요."
"뭔가 빠진 느낌." 그녀가 다시 영상을 바라봤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됐는지. 그게 아직 완전히 안 느껴져."
김재민이 그녀 옆에 앉아 모니터를 같이 바라봤다. 박진혁이 성경책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진짜 믿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요?" 김재민이 말했다.
"응." 한지수가 대답했다. "그게 제일 무서운 거야."
다큐멘터리 제목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빛의 포식자》.
하지만 이 제목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그녀는 이 이야기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한 번 더 되짚어야 했다.
1부
카리스마의 탄생
1장. 첫 번째 제보 — 2034년 4월
한지수가 처음 이 사건에 발을 들인 것은 완전한 우연이었다.
당시 그녀는 MBS 다큐멘터리 팀 소속으로, K-pop 산업의 구조적 노동 착취를 주제로 한 3부작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기획사 연습생들의 비인간적 기숙사 환경, 성인이 되기도 전에 사인하는 전속 계약의 불공정 조항, 데뷔 실패 후 수천만 원의 빚을 떠안는 구조. 이미 두 편이 나갔고 반향이 컸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오전, 제보 이메일 하나가 들어왔다.
발신자: 이나연. 나이 26세. 자기소개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저는 JBK 아이돌 팬이었어요. 그러다가 박진혁 대표님의 성경 강의를 듣게 됐고, 2년 전부터 진리의 빛 교회를 다녔습니다. 지난달에 나왔어요. 지금 심리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한지수는 처음에 흘려들으려 했다. 솔직히 말하면, 연예인 종교 의혹은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지만 대부분 근거 없는 루머로 끝나거나, 설령 사실이라도 특정 종파의 신앙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법적·윤리적으로 복잡한 지형이었다. 박진혁은 이미 수차례 유사한 의혹에서 깨끗하게 빠져나온 전력이 있었다. JBK 측의 법무팀은 한국에서 가장 공격적인 미디어 대응 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나연은 달랐다.
그녀는 증거를 갖고 있었다.
첫 만남은 마포구 합정역 근처의 작은 카페였다. 오후 세 시. 주문 카운터 바로 뒤 구석 자리에서 이나연은 검은 후드티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앉아 있었다. 양손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을 감싸고 있었지만, 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손의 떨림이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두렵지 않으세요?" 한지수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이나연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촉촉했다.
"무서워요."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무서운 건요, 제가 교회에서 나오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바뀌어 있었는지를 깨달은 거예요. 부모님이 저를 못 알아볼 정도로요."
한지수는 녹음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나연이 꺼낸 것은 낡은 스마트폰이었다. 화면 보호 필름이 군데군데 들떠 있었다. 그녀가 갤러리 앱을 열었다. 카카오톡 대화방 캡처 사진들이 스크롤도 끝나지 않을 만큼 가득했다. '진리의 빛 교회 강남지부 믿음훈련반'이라는 이름의 단체방이었다.
한지수가 화면을 스크롤하면서 읽어나갔다.
목장 리더 '은혜언니': "오늘 박 선생님 강의 안 들으신 분 있어요? 강의 안 드는 날은 믿음이 약해지는 날이에요."
목장 리더 '은혜언니': "이나연 씨, 오늘 기도회 왜 빠졌어요? 지금 가정 상황이 힘든 거 알아요. 근데 이럴 때일수록 교회 공동체와 함께 있어야 해요."
새벽 두 시 열세 분. 목장 리더 '은혜언니': "지금 당신이 부모님을 더 사랑하면, 그건 믿음이 없는 증거예요. 예수님도 가족보다 믿음의 형제자매를 먼저 두셨어요."
새벽 세 시 사십오 분. 목장 리더 '은혜언니': "교회 밖 친구들은 당신의 신앙에 방해가 돼요. 서서히 멀리하는 것이 믿음 성장에 좋아요."
한지수는 화면을 내려놓고 이나연을 바라봤다.
"처음부터 얘기해 주실 수 있어요? 어떻게 그 교회에 들어가게 됐는지."
이나연이 긴 숨을 내쉬었다. 그 숨 속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박진혁 대표님 팬이었어요. 중학교 때부터요. JBK 아이돌 콘서트를 열두 번 갔고, 굿즈도 방 하나를 채울 만큼 있었어요."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가 곧 지웠다. "스물두 살 때 처음 그분의 유튜브 강의를 봤어요. '첫열매들'이라는 채널이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궁금해서 클릭했는데, 논리가 있었어요. 제가 기존에 교회에서 들어본 적 없는 얘기들이었거든요. '믿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거. '당신이 믿는다고 생각하는 그 믿음은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거. 그게 충격적이었어요."
"충격적이었는데 왜 계속 들었나요?"
"그분이... 설득력이 있었어요. 그리고 저도 당시 교회생활이 형식적이라는 느낌을 받고 있었거든요. 매주 예배 가는데 뭔가 변하는 게 없고, 목사님 설교가 좋긴 한데 삶에서 뭔가 살아있지 않다는 느낌. 박진혁 대표님이 그걸 정확히 짚어주는 거예요. '기존 교회의 믿음이 왜 살아있지 않은지, 왜 무기력한지'를요."
한지수가 메모를 했다.
이나연이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오프라인 소모임 공고가 떴어요. 서울 강남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에 하는 거. 그게 나중에 알고 보니 진리의 빛 교회의 목장 모임이었어요. 근데 처음에는 그냥 '박진혁 대표님 강의 함께 듣고 나누는 성경 공부'라고만 알려져 있었어요."
"교회라는 게 처음부터 알려지지 않았군요."
"네. 들어가고 두 달이 지나서 알았어요. 그때는 이미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 리더 은혜언니가 제 생일을 챙겨줬고, 취직이 안 돼서 힘들 때 목장원들이 여러 회사 연락처를 알아봐 줬어요. 그 사람들이 진짜 가족 같았어요. 그러니까 교회라는 게 밝혀져도 크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했죠."
경제적 취약성. 관계적 고독. 한지수는 그 두 단어를 동그라미로 표시했다. 이것이 모든 이단의 입구였다. 언제나.
2장. 두 개의 믿음 — 종교 천재의 교리 해부
박태준 목사를 찾아간 것은 첫 번째 제보 사흘 뒤였다.
그는 서울 은평구의 낡은 5층 건물 3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한국 이단 연구 협의회 사무총장. 이 직함이 무색할 만큼 소박한 공간이었다. 벽을 온통 가득 채운 책들, 파일 더미들, 그리고 녹슨 서류 캐비닛.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자료들은 한국 이단의 30년사를 포괄하고 있었다.
문선명의 『원리강론』 초판. 권신찬의 1970년대 강의 테이프 목록. 정명석 관련 법원 판결문 모음. 신천지 탈퇴자 진술서 수백 장.
"박진혁이요." 박태준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는 그 사람의 채널을 2030년부터 지켜봤어요. 처음 영상을 봤을 때 솔직히 말씀드리면, 등골이 오싹했어요."
"왜요?"
"완벽했거든요." 그가 천천히 말했다. "이단의 교리는 대부분 조잡합니다. 성경 구절을 억지로 가져다 붙이고, 논리적 비약이 심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이 너무 노골적이에요. 신학을 조금만 공부해도 구멍이 보이죠. 그런데 박진혁의 강의는 달랐어요. 유창하고, 논리적이며, 심지어 신학적으로도 진지한 토대 위에 세워진 것처럼 보였어요. 그게 오히려 더 위험한 이유입니다."
박태준이 화이트보드에 두 개의 단어를 썼다.
믿음1. 믿음2.
"박진혁은 로마서 1장 17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가 마커를 들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리고 원문에는 '믿음에서 믿음으로'라는 표현이 있어요. 그는 여기서 두 종류의 믿음을 발견합니다. 첫 번째 믿음은 인간이 의지로 만들어내는 행위적 믿음이고, 두 번째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믿음이라고요."
"그 해석 자체가 잘못된 건가요?"
"잘못이라기보다." 박태준이 마커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어서 더 위험해요. 루터도, 칼뱅도 믿음이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어요. 그건 맞습니다. 문제는 그 해석의 결론이에요. 박진혁은 이 믿음 이분법을 통해 이렇게 선언합니다. '당신이 수십 년 교회를 다니고 헌금을 드리고 봉사를 해도, 믿음2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아직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그 선언이 핵심입니다."
한지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그의 공동체에서만 믿음2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가 되는 거네요."
박태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이단의 작동 방식과 같아요. 첫째, 기존 종교를 불신하게 만들어라. 둘째, 나만이 진리를 가졌다고 선언하라. 셋째, 그 공동체 밖에서는 구원이 없음을 인식시켜 탈출구를 막아라."
그는 책장에서 두꺼운 파일을 꺼냈다. 제목이 없었다. 그냥 빼곡하게 분류된 자료들.
"또 하나의 교리가 있어요." 박태준이 말했다. "성경 66권을 유대인을 위한 말씀과 이방인을 위한 말씀으로 나누는 극단적 세대주의입니다. 이것을 적용하면 산상수훈을 포함한 복음서의 상당 부분이 '오늘날 이방인인 우리에게는 직접 적용되지 않는 유대인을 위한 말씀'이 됩니다."
"산상수훈이요?"
"마태복음 5장부터 7장. '원수를 사랑하라', '눈은 눈, 이는 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 모든 것이 이방인에게 해당하지 않는 말씀이 될 수 있어요. 성경에서 자신에게 불편한 구절들을 체계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신학적 면죄부를 만드는 거죠."
한지수는 잠시 생각했다.
"그 강의들을 보면서, 박진혁이 진정으로 그 내용을 믿는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는 건가요?"
박태준이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봤다.
"그게 제가 가장 오래 고민한 질문이에요. 30년간 이단을 연구하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그 경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명확하지 않다는 거예요. 문선명은 말년까지 자신이 재림주라고 믿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구원파 권신찬도, JMS 정명석도, 초기에는 진정한 확신이 있었다고 탈퇴자들은 말해요. 진정한 확신이 있는 사람이 훨씬 더 설득력 있거든요. 연기가 아니니까."
"즉, 스스로도 속아 있는 사기꾼일 수 있다는 거군요."
"또는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한 나머지 다른 관점을 볼 수 없게 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종교사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카리스마적 지도자'라고 부릅니다. 재능과 진리는 전혀 별개의 것인데, 그 사람 자신도 그 둘을 혼동하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한지수는 노트를 덮으면서 마지막으로 물었다.
"박태준 목사님은 지금 이 상황이 어떤 단계라고 보세요?"
박태준이 파일을 닫았다.
"가장 위험한 단계입니다. 빠르게 성장하면서 동시에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피해자가 생기는 단계. 아직 대규모 스캔들은 없지만, 그 스캔들이 터질 조건들이 하나씩 갖춰지고 있는 단계. 이 시기를 지나면 두 갈래 길이에요. 내부 균열로 자멸하거나, 더 치밀해져서 제도화되거나."
"어느 쪽이 더 무서운가요?"
"제도화가요." 그가 즉각 답했다. "통일교처럼요."
3장. 통일교의 유산 — 카리스마가 제도가 될 때
다음 2주를 한지수는 자료 조사에 쏟았다.
통일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창립자 문선명(1920~2012). 1954년 한국에서 창설된 이 단체는 한국에서 태어난 신흥 종교 중 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조직이 됐다. 현재 195개국에 지부가 있다. 합동결혼식, 평화 운동, 언론 재단, 교육 기관. 표면은 평화와 가족의 가치를 이야기하지만, 내부에서는 수십 년에 걸친 집단적 상처가 쌓여 있었다.
한지수가 주목한 것은 통일교의 '포획 방식'이었다.
통일교는 처음부터 "우리는 통일교입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학술 심포지엄, 평화 강연, 문화 예술 행사로 접근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되고, 그 관계가 신뢰로 변할 때 비로소 교리 교육이 시작된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점증적 동의(Foot-in-the-door technique)'라고 부른다.
부천의 한 도서관에서 통일교 탈퇴자 이정훈(64세)을 만났다.
"저는 1984년 대학교 2학년 때 들어갔어요." 그가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에 오랜 회한이 배어 있었다. "처음에는 '청년 문화 연구회'라는 동아리였어요. 민주화 운동이 뜨겁던 시절이었거든요. 거기서 통일에 대한 강의를 듣고, 마당극을 하고, 함께 밥을 먹고. 내가 통일교라는 걸 안 건 두 달이 지나서였어요. 그때는 이미 그 공동체 안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겨 있었고, 그들이 보여주는 따뜻함 때문에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어요."
한지수가 물었다. "결국 나오신 계기는 뭐였나요?"
이정훈이 손목의 작은 흉터를 만졌다.
"제 여동생이 합동결혼식에 배정됐어요. 만나본 적도 없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나라 남자랑. 교회의 결정이라고. 그 결정에 이의를 달면 믿음이 없는 것이 된다고요." 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여동생이 자해를 했어요. 그 모습을 보고서야 제가 깨어났어요. 제 눈에 필름이 걷히는 느낌이었어요."
"지금 진리의 빛 교회를 어떻게 보세요?"
이정훈이 창밖을 한참 바라봤다.
"패턴이 똑같아요." 그가 말했다. "처음에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 관계를 통해 묶는 것. 그리고 기존 가족·친구·교회보다 공동체를 더 높이는 것. 그게 통일교가 50년 전에 쓴 방법이에요." 그가 한지수를 바라봤다. "다른 점이 있다면, 통일교는 노골적이었어요. 박진혁은 세련됐습니다. 유튜브로 들어오고, K-pop 팬덤으로 들어오고, 논리적인 언어로 포장됩니다. 21세기 버전이에요. 훨씬 더 빠르고, 훨씬 더 효과적이에요."
막스 베버는 '카리스마의 일상화'를 말했다. 처음에는 한 인물의 개인적 카리스마가 추종자를 끌어당기지만, 조직이 커지면서 그 카리스마가 규칙과 교리와 위계질서로 굳어지는 과정. 통일교는 그 과정의 가장 완성된 사례였다.
연세대 종교학과 정서영 교수는 말했다.
"통일교와 구원파의 공통점을 한 문장으로요? 카리스마 지도자의 체험을 조직이 독점한 거예요. 문선명의 '하나님과의 만남', 권신찬의 '죄사함의 깨달음'— 이 개인적 체험이 교리화되고, 그 교리에 동의하지 않는 자는 공동체에서 배제됩니다. 그리고 그 교리를 유지하기 위해 재정이 조직의 상층부로 집중됩니다. 나중에는 창업자가 아니라 그 시스템이 작동하는 거예요."
"박진혁의 경우도요?"
"아직 초기 단계예요. 하지만 방향은 보입니다."
한지수는 그날 밤 노트에 세 단어를 썼다.
K-pop. 유튜브. MZ세대의 고독.
이것이 21세기의 이단 입구였다. 냉전 시대의 통일교가 민족주의와 이념 공백을 이용했다면, 디지털 시대의 이단은 플랫폼과 팬덤과 고독을 이용했다. 도구가 달라졌을 뿐 설계도는 동일했다.
2부
이단의 구조
4장. 구원파의 문법 — 날짜가 구원의 증거가 될 때
구원파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진리의 빛 교회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한지수는 기독교복음침례회, 일명 구원파의 역사를 깊이 파고들었다. 1960년대 미국인 선교사의 성경 강의에서 씨앗이 뿌려진 이 교단은 이후 권신찬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독특한 한국형 이단으로 발전했다. 1980년대 오대양 집단 사망 사건과의 연루 의혹. 세월호 참사의 실소유주 유병언의 신앙적 배경. 이 모든 것이 구원파와 연결돼 있었다.
구원파의 핵심 교리는 단순하면서도 치명적이었다.
"죄 사함을 확실히 받은 날짜를 기억하라."
이것이 구원의 증거가 된다.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날짜는 반드시 지적인 '깨달음의 체험'과 함께여야 한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는 것, 세례를 받았다는 것, 헌금을 드렸다는 것— 이 모두가 구원의 증거가 아니다.
구원파 탈퇴자 김혜숙(48세)을 온라인으로 인터뷰했다.
"입교 당시가 기억나세요?"
"대학교 2학년 때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아래에 오랜 상처가 감지됐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너무 힘든 시기였어요. 기숙사 친구가 성경 공부 모임에 가자고 했어요. 첫 두 달은 정말 좋았어요. 성경을 배우고, 선배들이 많이 챙겨주고, 따뜻한 공동체였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강사가 물었어요. '당신은 죄 사함 받은 날짜를 알아요?' 저는 모른다고 했고, 그때부터 제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 취급을 받기 시작했죠."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웠나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닌 사람한테 '당신의 신앙은 가짜'라고 말하는 거잖아요. 처음엔 화가 났어요. 그런데 그들이 그 교리를 성경 구절로 설명할 때, 반박을 못 하겠더라고요. 신학을 잘 몰랐으니까. 그래서 받아들이게 됐어요. 제가 지금까지 가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처음에는 굴욕적이었지만, 이제 진짜 믿음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더 컸어요."
한지수가 물었다. "구원파와 진리의 빛 교회의 공통점을 느끼세요?"
"직접적으로 느껴요." 김혜숙이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박진혁 유튜브 강의를 몇 개 봤는데요, 언어가 달라요. 훨씬 현대적이고 세련됐어요. 하지만 골격이 같아요. 믿음의 이분법. 기존 목사들에 대한 불신 조장. 자기만이 진짜 복음을 가졌다는 암시. 그리고..." 그녀가 잠깐 멈췄다. "그 음성이요. 자신감 넘치고, 따뜻하고, 절대 소리를 높이지 않는 그 음성. 그게 제일 무서워요. 구원파 강사들도 그랬거든요. 화내지 않는 사람이 더 설득력 있어요. 화내지 않아도 확신이 있으니까."
구원파가 보여준 또 하나의 패턴은 '교권 무효화'였다. 기존 교회 지도자들의 신앙을 전면 부정하는 것. 한경직 목사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선언. 이것이 기존 종교 권위를 해체하고 새로운 권위를 세우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진리의 빛 교회의 강의에도 같은 구조가 있었다.
"기존 교회 목사님들의 강의를 들으면 믿음1의 언어가 들립니다. 그분들도 믿음2를 경험하지 못하셨기 때문이에요. 신학교에서 수년을 공부해도, 믿음2 없이는 진짜 복음을 가르칠 수 없어요."
한지수는 그 문장을 노트에 받아 적었다.
수십 년을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목회한 목사를 '믿음2 없는 사람'으로 무효화하는 것. 그러면 그 자리에 박진혁이 들어선다. 신학 훈련이 없어도 된다. 교단의 검증이 없어도 된다. '직접 받은 깨달음'이 모든 권위보다 높기 때문이다.
5장. 관계의 그물 — 사랑으로 포장된 통제
한지수가 진리의 빛 교회 목장 운영 지침서를 처음 입수한 것은 5월이었다.
이나연이 교회에 있을 때 몰래 복사해두었다고 했다. 직감적으로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았다고. 그 직감이 옳았다.
지침서는 겉으로는 평범한 소그룹 목회 매뉴얼처럼 보였다. '가정교회 모델'을 표방하며, 목장원들이 서로를 돌보고 삶을 나누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씌어 있었다. 한국 교회에서 오래전부터 건강한 목회 모델로 사용해온 방식이었다.
그런데 세부 지침들이 달랐다.
5페이지: '목장원이 교회 밖의 다른 성경 강의를 듣거나 외부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경우, 그것이 믿음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친절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박 선생님의 강의 외의 강의들은 믿음1의 언어로 씌어진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9페이지: '목장원이 부모, 형제, 친구 등 외부 관계로 인해 흔들릴 경우, 그 관계가 현재 신앙 성장의 방해물이 되고 있음을 부드럽게 지적해 주십시오. 예수님도 가족보다 믿음의 형제자매를 먼저 두셨습니다(마태복음 12:48).'
14페이지: '목장원의 직업 현황, 재정 상태, 건강 상태, 가족 관계의 어려움을 정기적으로 파악하십시오. 이것은 기도 제목을 위한 것이며, 어려움에 처한 목장원을 먼저 돕는 것이 목장 공동체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18페이지: '목장원이 교회를 떠나겠다고 할 경우, 즉시 상위 리더에게 보고하십시오.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리더십 팀이 함께 대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목장원의 과거 자기 고백 일지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지수는 18페이지에서 멈췄다.
자기 고백 일지.
이나연이 나중에 설명해줬다. 입교할 때 쓰게 하는 문서였다. 과거에 저지른 죄들, 가족에 대해 품었던 나쁜 감정들, 이성 교제 경험과 그 내용들. '하나님 앞에서의 솔직한 고백'이라는 명목으로 제출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목장 리더들과 공유된다는 사실은 말해주지 않는다.
박태준 목사는 이 지침서를 보고 말했다.
"BITE 모델. 행동 통제(Behavior control), 정보 통제(Information control), 사고 통제(Thought control), 감정 통제(Emotional control). 이 네 가지가 모두 작동하는 집단을 우리는 '파괴적 컬트'라고 정의합니다. 이 지침서에 그 네 가지가 전부 있어요."
14페이지의 재정 파악은 행동 통제의 시작이었다. 경제적 취약점을 알면 의존성을 만들기 쉽다. 취업을 도와주고, 급할 때 돈을 빌려주고, 그 도움이 쌓이면 그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어려워진다.
9페이지의 가족 관계 약화 조장은 사고 통제였다. 마태복음 12장 48절을 가족보다 공동체를 우선하라는 근거로 쓰는 것은 심각한 문맥 오용이다. 예수님은 그 구절에서 혈연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진정한 가족임을 말씀하셨다. 그것을 '가족보다 우리 교회가 먼저'라는 메시지로 비틀면 구원파, 신천지가 모두 써온 방법이 된다.
18페이지의 자기 고백 일지는 감정 통제의 가장 극단적 도구였다. 자발적으로 털어놓은 약점을 인질로 삼는 것. JMS 정명석 공동체에서도, 신천지에서도, 그리고 2030년대 진리의 빛 교회에서도. 도구는 같았다.
이나연이 후에 말했다.
"교회를 나온 뒤에 예전 목장 언니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한지수 선생님 만나는 거 그만두지 않으면 제 자기 고백 일지를 유포하겠다고요."
한지수는 그 문자를 경찰에 신고하도록 권고했다. 스토킹방지법과 협박죄 적용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진리의 빛 교회가 그 협박을 실행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통제 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가장 서늘한 부분이었다.
6장. 돈의 신학 — 헌금이 흐르는 방향
진리의 빛 교회 전 회계 담당 최성민(42세)을 만난 것은 6월의 인천 부두 근처였다.
그는 원래 JBK 계열사에서 일하다 박진혁의 강의를 듣고 교회에 합류했다. 회계 전문가였기에 자연스럽게 재정 담당을 맡았다. 하지만 내부를 알게 되면서 점차 불편함이 쌓였고, 2년 전 교회를 떠났다.
"숫자가 이상했어요." 그가 말했다. 테이블 위에서 손을 뒤집었다. "진리의 빛 교회는 전국 6개 지부와 미국 지부를 운영합니다. 공식 등록 신도가 약 3천 명, 정기 헌금자가 1,500명 정도예요. 1인 평균 월 헌금을 보수적으로 잡아도 월 3억, 연 36억이에요. 여기다 LA 세미나 같은 특별 집회에서 회당 수억 원 규모의 헌금이 들어와요."
"그 돈이 어디에 쓰이나요?"
"공식 항목으로는 교회 운영, 선교, 자선사업이요." 최성민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근데 제가 회계 장부를 볼 때, '선교 비용'으로 분류된 항목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게 있었어요.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강사료' 항목이 있었는데, 수령인이 박 선생님 가족과 연결된 서비스 회사였어요."
"법인 이름이요?"
"'열매빛 서비스'요. 설립자가 박 선생님 아내 쪽 친척이었어요. 교회에 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는데, 청구 금액이 시장 단가의 두세 배였어요. 강의 영상 편집 월 단가가 통상 업계 기준의 3배 이상이었어요."
"그 이야기를 당시 누군가에게 했나요?"
최성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박 선생님 측근 리더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돌아온 것은 두 가지였어요. '박 선생님에 대한 의심 자체가 믿음이 없는 증거'라는 말. 그리고 그 다음 주부터 제 목장 분위기가 싸늘해지기 시작했어요. 목장원들이 저를 멀리하고, 기도 제목도 나누지 않고. 두 달 만에 저는 공동체에서 완전히 고립됐습니다."
한지수가 물었다.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나요?"
"그래서 변호사를 만나봤어요." 최성민이 말했다. "변호사가 그러더라고요. 범죄 혐의를 입증하려면 실제로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횡령 또는 배임의 고의성을 입증해야 한다고요. 서비스가 조금이라도 제공됐다면, 금액이 과도해도 사기죄 성립이 어렵대요. 종교 단체이기 때문에 재정 공시 의무도 없고요."
"그게 법의 공백인가요?"
"현행법으로는 그렇습니다." 그가 봉투를 꺼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딱 하나예요. 제가 보관하던 회계 자료 일부 사본이에요. 직접적 범죄 증거는 아니에요. 하지만 방향은 보여줄 거예요."
한지수는 봉투를 받으면서 손이 떨렸다. 이 자료가 다큐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최성민의 마지막 말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저 무서워요. 솔직히. 제 직장이 JBK 계열사와 연결돼 있어요. 자칫하면 밥줄이 끊길 수 있어요. 제가 공식적으로 진술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 말 속에 이단의 가장 완성된 통제 구조가 있었다. 경제적 의존성과 관계적 고립이 맞물리면,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침묵을 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피해자만이 아니라 외부 목격자들도.
이것이 이단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였다.
3부
종교 천재의 설계
7장. 종교 천재의 설계도 — 이단이 자라는 5단계
정서영 교수의 연구실을 두 번째로 찾은 것은 7월 중순이었다.
교수는 화이트보드에 다이어그램을 그리기 시작했다. 30년간 통일교, 구원파, JMS, 하나님의 교회, 신천지를 분석하면서 정리한 패턴이었다.
"신흥 종교가 이단으로 발전하는 과정에는 보편적인 5단계가 있어요."
1단계. 카리스마의 씨앗.
"모든 이단은 설득력 있는 창업자에서 시작해요. 그 사람이 기존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내놓습니다. 이 단계에서 창업자는 진정한 영적 탐구자처럼 보여요. 어떤 경우는 실제로 그렇기도 해요. 진정성이 있는 시기죠."
2단계. 소수 공동체 형성.
"신뢰하는 소수가 모입니다. 이 단계가 가장 순수하고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 시기예요. 작은 모임에서 나누는 따뜻한 교제, 창업자의 개인적 관심, 공동체 의식. 이 경험이 너무 좋아서 사람들은 계속 남아요. 이 단계의 공동체는 진짜 아름다운 경우가 있어요. 문제는 이게 오래가지 않는다는 거죠."
3단계. 교리 경계선 강화.
"공동체가 커지면 내부와 외부의 구별이 생깁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고 저들은 모른다'는 논리가 체계화되죠. 기존 교회와 가족은 점차 잠재적 방해 세력으로 묘사돼요. 목장 지침서에서 보셨듯이, 이 단계에서 관계의 그물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이 단계부터 구성원들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그 변화가 너무 느려서 당사자는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4단계. 재정 집중화.
"조직 운영에 돈이 필요해지면서 헌금에 신학적 의미가 부여됩니다. '드림이 곧 믿음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투자하는 것이다.' 재정이 창업자와 그 가족에게 흘러가는 구조가 서서히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이 교리에 의해 가려집니다. 헌금 행위 자체가 신앙 수준의 척도가 되는 거예요. 많이 드릴수록 믿음이 강한 것이 됩니다."
5단계. 폐쇄 시스템화.
"탈퇴가 어려워지는 단계입니다. 재정적 의존, 관계적 고립, 심리적 정체성 융합. 교회가 그 사람의 사회 전체가 된 상태예요. 친구도 거기, 직장 연줄도 거기, 자존감의 근거도 거기서 나와요. 나가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공포. 그 공포가 벽이 되는 거죠."
한지수는 화이트보드를 사진으로 찍었다. 이 다이어그램이 다큐멘터리의 뼈대였다.
"진리의 빛 교회는 몇 단계에 있나요?"
"3단계와 4단계 사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피해자가 생기는 구간이에요. 아직 큰 스캔들은 없지만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상처가 쌓이는 때죠."
그리고 교수는 화이트보드에 6단계를 추가했다.
6단계. 브랜드 확장.
"이 단계까지 간 이단은 손에 꼽습니다. 통일교가 가장 완성된 사례예요. 일간지 창간, 로비 회사, 대학 설립, 문화 재단. 종교 법인이 세속 플랫폼으로 확장되면서 구성원들에게 취업 기회, 사회적 네트워크, 문화적 정체성까지 제공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이단'이라는 단어로는 그 집단을 설명할 수 없어요. 하나의 병렬 사회가 된 거죠."
한지수는 그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보면서 서늘함을 느꼈다.
"진리의 빛 교회가 그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요?"
"이미 LA 지부가 생겼어요. 목장 단위에서 직업 소개, 사업 네트워킹, 이민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죠. K-pop 팬덤을 통한 아시아 청년 네트워크 진출 가능성도 있어요. 박진혁이라는 이름이 K-pop 세계에서 갖는 신뢰도는 어마어마하거든요."
교수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단의 성장을 막는 것은 법으로 불가능에 가까워요. 종교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종교 집단의 활동 자체를 막을 수 없으니까요.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예요. 정보를 공개해서 개인의 선택을 돕는 것. 그리고 대안을 먼저 그 자리에 세우는 것. 더 건강한 공동체가 먼저 있으면 이단이 파고들 공간이 줄어들어요."
8장. 사라진 청년들 — 공동체의 뒷면
이나연이 밤에 전화를 걸어온 것은 7월 말이었다.
"선생님, 저한테 연락하는 사람이 있어요. 진리의 빛 교회 현직 목장 리더예요. 직접 만날 수 있는지 물어봐요."
그 사람은 박재현이었다. 30대 후반. 원래 서울 은행동의 중소기업 마케터였는데 박진혁의 강의를 듣고 교회에 합류한 뒤 전임 사역자로 전환했다. 현재 강남 지부 목장 리더. 그런데 최근 1년 사이 자신의 목장에서 이상한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의 커피숍 구석 자리. 박재현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뭐가 이상했나요?" 한지수가 물었다.
박재현은 오랫동안 컵을 바라봤다. 마침내 말을 꺼냈다.
"제 목장에 스물여섯 살 청년이 있어요. 이름은 말씀드리기 어렵고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예요. 서울에서 혼자 살면서 아르바이트 여러 개를 뛰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생활비를 지원해줬어요. 취업도 교회 네트워크로 도와줬고. 그런데 지금 그 친구의 월급 중 40%가 헌금으로 나가고 있어요."
한지수가 숨을 들이켰다.
"40%요?"
"제가 상위 리더한테 이건 너무 과하지 않냐고 했더니,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그 친구의 재정 상황이 어려웠던 게 믿음이 없어서였고, 이제 헌금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믿음을 키우는 것'이라고요. 재정적 착취가 교리로 정당화되는 거예요."
또 다른 사례가 있었다.
"50대 여성분이 아파트를 팔았어요. 오래된 은평구 아파트였는데, 매각 대금의 절반 이상을 교회에 헌납했어요. 자발적으로 하신 거였어요. 근데 그 결정이 이루어지기 전 수개월 동안 목장에서 집중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완전한 드림'에 대한 강의가 있었어요. 그 분위기 속에서 그분이 '저도 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했고, 그때부터 리더십이 적극적으로 도왔어요. 자발적이기는 한데, 자발적이 되도록 설계된 거죠."
박재현의 손이 떨렸다.
"사라진 청년들도 있어요. 교회를 나간 사람들이에요. 탈퇴하면 기존 목장원들이 그 사람과 연락을 끊어요. 공식적인 지시는 없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요. '믿음이 없는 사람과 교류하면 내 믿음에 방해가 된다'는 논리로요. 그 사람들은 교회를 나오면서 사회적 관계망 전체를 잃는 거예요."
"그 청년들이 나온 뒤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박재현의 얼굴에 고통이 지나갔다.
"몇 명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확인된 건 아니에요. 근데 저는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잠을 못 잤어요. 제 손으로 그 사람들을 목장에 입교시켰으니까."
한지수는 촬영기를 켜지 않았다. 이 사람은 아직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었다. 증인을 보호하는 것이 제작자의 책임이었다.
"당신은 왜 아직 안 나오셨어요?"
박재현이 긴 침묵 뒤에 말했다.
"제 아내와 두 아이가 거기 있어요. 제가 나오면 아내가 저를 '믿음을 버린 사람'으로 볼 거예요. 이혼을 요구할 수도 있어요. 아이들이 아빠를 잃는 거잖아요. 제가 선택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요."
선택할 수 없다.
한지수는 그 말이 차갑게 가슴에 박히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컬트가 만들어내는 가장 완벽한 감옥이었다. 쇠창살도 없고 자물쇠도 없지만 인간은 떠날 수 없다. 두려움의 무게가 그 사람의 발을 땅에 묶어두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이나연이 언급했던 '사라진 청년들' 중 하나를 추적했다.
김도현. 당시 28세. 2년 전 교회를 떠났다. 이나연을 통해 어렵게 연락처를 얻어 문자를 보냈다. 사흘 만에 짧은 답이 왔다. '전화는 됩니다.'
전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무슨 일을 하고 계세요?"
"편의점 아르바이트요. 예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어요. 교회 네트워크로 들어간 회사였는데, 나오면서 같이 잘리게 됐어요."
"교회와 직장이 연결돼 있었군요."
"처음에 목장 리더가 취업을 소개해줬어요. 그 회사 사장님이 교회 장로님이셨거든요. 제가 교회를 나오겠다고 했을 때 사장님이 부르더니 오늘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해고였죠. 해고 사유는 업무 성과 부족이라고 처리했어요. 증명이 어렵대요."
한지수는 그 구조를 이해했다. 취업 소개가 단순한 친절이 아니었다. 직장과 신앙을 하나로 묶는 것. 나가면 일자리도 잃는 구조. 이것이 경제적 의존성의 완성된 형태였다.
"지금 어떻게 지내세요?"
긴 침묵이 있었다.
"작년에 많이 힘들었어요. 교회도, 직장도, 교회 통해서 만났던 여자친구도. 다 없어졌어요. 거기다가 가족들은 '왜 교회 다니더니 이렇게 됐냐'고 하고. 그때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이었어요."
한지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은요?"
"지금은 동네 정신건강복지관에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이 '탈퇴 이후 증후군'이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단 공동체를 빠져나온 뒤 오는 정체성 혼란, 공허함, 대인 불신.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내가 혼자가 아닌 것 같았어요."
탈퇴 이후 증후군.
한지수는 그 단어를 노트에 적었다. 이단이 사람을 떠나보낸 뒤에도 그 사람 안에 남겨두는 상처. 그 상처를 받아줄 준비가 된 교회는 한국에 얼마나 있는가.
9장. 내부 고발의 대가 — 진실을 말하는 것의 무게
협박이 시작된 것은 7월 말이었다.
첫 문자는 발신자 불명으로 왔다. '당신이 뭘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흘려들었다. 제보를 받다 보면 이런 메시지는 종종 있었다.
그런데 계속됐다.
'그 자료들을 갖고 있는 게 당신에게 이롭지 않습니다.'
'이나연은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녀의 말을 믿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 '최성민이 드린 자료는 도용된 문서입니다. 계속 이 방향으로 가면 법적 대응이 있을 것입니다.'
최성민을 안다. 그 자료를 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취재 상황이 어딘가에서 새고 있었다.
그 주 목요일 밤, 한지수의 아파트 현관문 앞에 봉투가 놓여 있었다. 열어보니 사진 한 장. 이나연과 한지수가 합정 카페에서 처음 만난 날의 사진이었다. 공공장소에서 촬영한 것이었지만, 그들이 그 카페에서 만날 것을 누군가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한지수는 경찰에 신고했다.
담당 경찰관은 사진을 보고 말했다. "공공장소 촬영이라 범죄 혐의 특정이 어려워요. 동일인이 반복적으로 따라다닌다는 걸 입증해야 스토킹 방지법 적용이 되는데, 지금은 증거가 부족해요."
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공백. 또다시 그 단어가 나타났다.
박태준 목사가 전화로 말했다.
"이런 패턴 전에도 봤어요. 신천지가 내부 고발자들에게 쓴 방법이에요. 직접 폭력은 쓰지 않아요. 법적 공포를 조장하고, 고발자의 신뢰성을 공격하고, 주변인들에게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말을 흘리죠. 그리고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경우도 있어요."
MBS 편집장 김성훈이 한지수를 불렀다.
"솔직히 말할게요. 이거 나가면 JBK가 우리 광고 전부 뺄 거예요. 이미 연예부 쪽에 JBK PR 팀이 연락을 해왔어요. '한지수 기자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취재를 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한지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계속 할 겁니까?" 편집장이 물었다.
"네."
"이유가 뭐야?"
한지수는 창밖을 봤다.
"박재현 씨가 선택할 수 없다고 했어요. 아내와 아이들이 거기 있어서요.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저한테는 이 다큐가 해야 할 일이에요."
김성훈이 오랫동안 침묵했다가 말했다.
"방영 날짜 잡자. 대신 모든 증거가 완벽해야 해. 추측이 아니라 검증된 사실만."
그날 밤 이나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떨렸다.
"선생님, 예전 목장 언니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선생님 만나는 거 그만두지 않으면 제 자기 고백 일지를 유포하겠다고요."
한지수는 전화기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이나연 씨,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하세요. 그리고 오늘 밤은 혼자 있지 마세요. 내일 아침 저한테 전화해요."
전화를 끊고 한지수는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그녀가 이 취재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가졌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드러내는 것.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상처받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리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4부
한국 교회의 응답
10장. 교회의 침묵 — 가장 강력한 방어선의 부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가면서 한지수가 가장 놀란 것은 박진혁의 행동이 아니었다.
한국 교회의 침묵이었다.
그녀는 서울 시내 주요 교단의 이단 대책 담당자들을 차례로 만났다. 예장 합동, 예장 통합, 기독교 대한 감리회. 모두 이단 문제를 다루는 공식 기구를 갖고 있었다.
"진리의 빛 교회에 대해 교단 차원의 조사나 성명이 있었나요?"
예장 합동 측 담당자는 말했다. "내부적으로 논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식 이단 규정을 위해서는 교단 신학위원회의 긴 심의 과정이 필요해요. 최소 2~3년이 걸립니다."
"그 사이에 피해자가 생기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어요."
또 다른 교단 관계자는 솔직했다.
"박진혁은 유명인이에요. 잘못 건드렸다가 소송이 걸려오면 교단이 감당을 못 해요. 이단 선포는 법적 리스크가 크거든요. 증거도 완벽해야 하고 과정도 철저해야 하고. 그래서 손대기가 쉽지 않은 거죠."
법적 리스크. 절차. 시간.
그 사이에 이나연 같은 청년들이 공동체의 그물에 걸려 있었다. 김도현이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상처를 안고 있었다. 박재현이 아이들을 잃을까봐 두려워 선택을 못 하고 있었다.
박태준 목사의 진단은 직접적이었다.
"한국 교회가 이단에 취약한 근본 이유는 세 가지예요. 첫째, 비판적 성경 교육이 없어요. 신도들이 스스로 성경을 검증하는 능력이 없으니, 설득력 있는 강사가 나타나면 그냥 따라가요. 둘째, 공동체성이 약해졌어요. 도시 대형 교회에서 진정한 관계와 돌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단 공동체의 따뜻함에 끌리는 거예요. 셋째, 이단 대응 기구가 교단 정치에 물들어 있어요. 피해자 보호보다 교단의 체면이 우선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서영 교수는 더 근본적인 지적을 했다.
"한국 교회는 오랫동안 권위적인 구조로 운영됐어요. 담임 목사의 말이 곧 진리이고, 의심하면 믿음이 없는 것이 되는 문화. 그 문화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단에 가장 취약한 신도를 만들어냅니다. 권위를 그냥 따르도록 훈련된 사람은, 박진혁처럼 더 설득력 있는 권위가 나타났을 때 그냥 따라가거든요. 비판적 사고가 훈련되지 않은 채 권위 의존성만 높아진 것이죠."
한지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이상한 역설을 느꼈다.
이단이 자라는 것은 이단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교회가 비어 있기 때문이었다.
비어있음. 관계의 비어있음, 교육의 비어있음, 투명성의 비어있음.
그 빈 공간을 이단이 채운다. 언제나 그렇게.
11장. 빛과 그림자 — 진실의 마지막 조각들
8월이 되면서 취재에 속도가 붙었다.
한지수는 박진혁의 오랜 지인 한 명을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JBK 설립 초기부터 함께했던 전직 이사. 익명을 요구했다.
"박진혁은 성실하고 진지한 사람이에요." 그가 말했다. "사업에서 성공했지만 항상 공허하다고 했어요. '돈도 있고 명예도 있는데 뭔가 빠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그 공허함을 채운 게 성경이었어요. 처음에는 진짜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신학자들 만나러 다니고, 원어 성경 공부도 하고, 신학 서적들을 산더미처럼 사서 읽고."
"그러다가 언제부터 달라졌나요?"
그가 잠시 생각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아요. 그의 강의를 듣고 감동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이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 확신이 강해질수록 주변에서 다른 말 하는 사람들을 밀어냈어요. 신학자들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대신 '저분들이 아직 믿음2를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는 논리로 처리해버렸죠."
"그게 의도적이었을까요?"
"아마 아닐 거예요. 그게 더 무서운 거죠. 자기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위험해요. 왜냐면 그 확신이 설득력의 원천이니까요. 그리고 아무도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인간은 스스로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게 됩니다. 종교는 '이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논리로 모든 자기비판을 차단할 수 있어요."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한지수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이광훈(72세). 1980년대 구원파 탈퇴자. 오대양 사건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이었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방에서 그를 만났다. 창밖의 바다가 11월 빛 속에서 은빛으로 빛났다.
"공동체를 나온 건 딸 때문이었어요." 그가 말했다.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적은 말 속에 무게가 있었다. "딸이 당시 열 살이었는데,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거예요. 공동체 밖 아이들과 교류하지 말라고 배웠으니까. 딸의 눈에서 고립감을 봤을 때 비로소 제가 깨어났어요."
한지수가 물었다. "지금 진리의 빛 교회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이단들이 나타나고 있어요.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같은가요?"
노인이 바다를 바라봤다.
"달라진 것은 포장이에요. 유튜브, 세련된 강의, K-pop. 젊은 세대의 언어로 말하는 것. 빠른 거요. 그게 달라졌죠." 그가 말을 이었다. "같은 건, 고독한 사람을 향한 손길이에요. 그리고 그 손길이 언제 통제로 바뀌는지 모르게 하는 것. 그건 변하지 않았어요."
"개인이 그 경계를 알아챌 수 있을까요?"
"혼자서는 어려워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 과정이 너무 서서히 일어나거든요. 물이 한 방울씩 돌을 파듯이요. 어느 날 보면 돌이 패여 있는 거예요. 자기가 언제부터 변했는지 모르는 거죠."
"그럼 무엇이 필요한가요?"
"밖에서 봐주는 사람이요." 노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신앙 공동체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자기가 변해가는 걸 못 봐요. 봐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가족이든, 친구든, 아니면 목사든. 교회가 그 역할을 못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이단이 파고드는 틈새는 언제나 외로움이거든요."
한지수는 그 말을 녹음기에 담으면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호텔 방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었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장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12장. 진실의 무게 — 다큐멘터리의 완성
편집실에서 9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는 데 3주가 걸렸다.
마지막 편집 과정에서 한지수는 수백 시간의 영상을 90분으로 압축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첫째,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박진혁이 이단 교주라는 선언을 다큐멘터리가 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큐멘터리의 역할이 아니다. 구조를 보여주고, 증언을 담고, 전문가의 분석을 제시하는 것. 판단은 보는 사람이 한다.
둘째, 상처받은 사람들을 도구화하지 않는다. 이나연, 김도현, 박재현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소재가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기로 결정한 용기를 존중한다. 그 용기가 무거운 대가를 치를 것임을 알면서도.
편집장 김성훈이 러프컷을 보고 나서 오랫동안 침묵했다.
"이거 나가면 법적 대응 즉각 들어올 거야." 그가 말했다.
"알아요."
"JBK 광고 끊기는 건 기본이고."
"알아요."
"그래도 해?"
한지수가 편집장을 바라봤다.
"박재현 씨가 선택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 아내와 아이들이 거기 있어서요." 그녀가 말했다.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저한테는 이 다큐가 해야 할 전부예요."
시사회 당일. 내부 관계자 30명이 편집실 스크린 앞에 모였다.
90분이 지나고 불이 켜졌을 때, 침묵이 흘렀다.
법무팀 이수진 변호사가 먼저 말했다.
"법적으로 검토했어요. 이 영상은 공개된 유튜브 강의 분석, 탈퇴자 증언, 전문가 분석으로 구성돼 있어요. 진술자들의 신원을 보호했고, 사실 관계를 왜곡하거나 과장한 부분이 없어요. 박진혁 측이 소송을 건다면 받아낼 수 있는 내용이에요. 단, 법정 싸움이 길어질 수는 있어요."
"얼마나요?"
"3년에서 5년. 그 동안 방송사는 압박을 받을 수 있어요."
김성훈이 한지수를 봤다.
"한지수, 네가 결정해."
한지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나연의 떨리는 손. 김도현의 새벽 목소리. 박재현이 '선택할 수 없다'고 했을 때의 그 표정.
"방영합니다."
《빛의 포식자》는 2034년 11월 22일 MBS에서 방영됐다.
방영 직후 JBK는 즉각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광고 계약 전면 중단을 통보했다. JBK 팬덤 일부가 한지수의 SNS와 MBS 시청자 게시판을 공격했다. '무고', '마녀사냥', '이단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댓글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동시에 세 가지 일이 일어났다.
이단 탈퇴자 상담 센터의 전화가 방영 다음 날 평소의 7배로 늘었다. 담당자들이 밤새 전화를 받았다.
여러 교단이 공동으로 '이단 피해자 법률 지원 태스크포스' 발족을 발표했다. 처음으로 교단들이 연대해서 행동했다.
진리의 빛 교회 일부 지부의 목장 리더들이 자발적으로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박재현에게서 문자가 온 것은 방영 열흘 뒤였다.
"아내랑 얘기했어요. 많이 울었어요. 그런데 아내도 사실은 오래전부터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대요. 말을 못 했던 거래요. 저도 말을 못 했고. 저희 이번 달 교회 안 가기로 했어요."
한지수는 그 문자를 오래 바라봤다.
아내도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말을 못 했을 뿐.
그 침묵을 깨는 것. 그게 다큐멘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거대한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이상하다고 느끼던 사람들이 서로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에필로그: 일 년 뒤 — 2035년 11월
이나연은 대학원에 들어갔다.
사회복지학과. 전공 논문 주제는 '컬트 피해자 탈퇴 후 사회적 재통합 프로그램 연구'였다. 첫 세미나에서 그녀가 발표를 마치고 교수가 물었다. "이 주제를 선택한 개인적 이유가 있나요?" 이나연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제가 경험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않게 하고 싶어서요."
교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박재현 부부는 작은 교회를 찾았다.
목사가 성경을 가르치는 방식이 느리고 조용했다. 화려한 강의도 없었다. 유튜브 채널도 없었다. 어느 일요일 오전, 교인 중 한 명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목사가 예배 도중에 말했다. "지금 잠깐 기도하고, 오늘 예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병원에 같이 가실 분은 함께 가요." 절반이 넘는 교인이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박재현은 그 모습을 보고 차 안에서 울었다고 했다. "이게 진짜인 것 같아요"라고 박태준 목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최성민은 법원에서 증인으로 섰다.
진리의 빛 교회를 상대로 한 민사 소송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헌금 강요 및 불투명 재정 운용에 대한 소송. 그는 직장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증언했다. "무서웠어요. 지금도 무서워요. 근데 제가 침묵하면 또 다른 김도현이 생기잖아요."
김도현은 상담을 계속 받으면서 조금씩 일상을 되찾았다.
6개월 뒤 새 직장을 잡았다. 작은 사회적 기업이었다. 첫 출근 날 그가 이나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처음으로 월급 받으면 어디에 쓸지 생각해봤어요. 좋은 것을 먹고 싶어요." 이나연이 답장을 보냈다. "같이 먹어요."
정서영 교수는 교육부의 의뢰를 받아 작업을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에 '비판적 종교 리터러시' 단원을 도입하는 프로젝트. 이단의 심리 구조와 비판적 사고를 10대부터 가르치는 것. 처음에 교육부 담당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종교의 자유와 충돌하지 않나요?" 교수가 답했다.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구별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유는 선택할 수 있을 때 진짜 자유예요."
박태준 목사는 한지수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꿨나요? 아니요. 진리의 빛 교회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건 질문이 틀렸어요. 다큐멘터리 하나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요. 다큐멘터리는 누군가 한 명이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그 한 명이 또 다른 한 명에게 전하고. 그렇게 변해가는 거죠."
그리고 한지수 자신.
두 번째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 주제는 한국 교회 자체였다. 이단이 파고드는 틈새를 먼저 채우고 있는 교회들의 이야기. 서울 구로구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료 법률 상담을 해주는 작은 교회. 경남 창원에서 이단 탈퇴자 전담 목회를 10년째 해온 목사. 강원도 산골에서 20가구가 함께 살며 농사를 짓고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
그 교회들에는 화려한 유튜브 채널도 없었다. 세련된 강의도 없었다. 설득력 있는 성경 해석 시스템도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빛이 달랐다.
억눌리지 않고, 비교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눈빛. 요구받지 않아도 서로를 향해 나아가는 눈빛.
한지수는 그것을 촬영하면서 처음으로 '진짜 빛'이 무엇인지를 보았다.
빛은 화려하지 않았다. 빛은 조용했다. 빛은 자신이 빛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어둠이 물러났다.
포식자는 언제나 빛보다 더 밝게 빛나려 한다.
그래서 빛처럼 보인다.
진짜 빛을 먼저 보여주는 것. 그래서 가짜 빛이 빛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한지수가 앞으로 10년 동안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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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작가 한지수의 노트 — 2034년 11월, 방영 직전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나는 박진혁을 미워하는가.
솔직히 처음에는 그랬다. 이나연의 떨리는 손을, 김도현의 새벽 목소리를, 박재현이 '선택할 수 없다'고 말할 때의 그 표정을 보면서 분노가 생겼다. 그 분노의 대상이 필요했고, 박진혁이 가장 명확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취재를 계속하면서 나는 그 분노가 단순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진짜 문제는 박진혁이 아니었다. 박진혁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이나연과 김도현과 박재현이었다. 외로웠던 청년들. 따뜻한 관계가 필요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그 따뜻함을 구할 때 그 자리에 먼저 있지 못한 교회.
포식자는 빈자리를 찾는다. 빈자리를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두 번 울었다.
한 번은 이나연이 '잘하셨다는 말을 들은 게 오랜만이에요'라고 했을 때.
한 번은 강원도 산골 교회에서 탈퇴자들이 서로를 안아줄 때.
그 두 장면이 이 다큐멘터리의 처음과 끝이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 그냥 밥을 먹는 것. 그냥 안아주는 것.
그것이 빛이었다.
부 록
한국 교회를 위한 10가지 바른 종교 정책 제언
이 제언들은 소설 속 가상 인물들의 논의를 바탕으로 실제 한국 교계에서 검토할 만한 정책적 방향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 제언들은 소설 속 가상 인물들의 논의를 바탕으로, 실제 한국 교계에서 검토할 만한 정책적 방향을 정리한 것입니다.
제언 1 — 비판적 성경 교육의 제도화
교단 및 교회 차원에서 성도들에게 성경 해석의 기본 원칙을 가르쳐야 합니다. 문맥 읽기, 원어 이해, 역사적 배경, 성경 내의 다양한 문학 장르 구별. 스스로 본문을 검증할 수 있는 신도는 자의적 해석에 속지 않습니다. 특히 청소년 신앙 교육에 '이단 식별 능력'을 포함하는 정기적 커리큘럼이 필요합니다. 이단은 결코 '성경을 안 읽는 사람들'을 공략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관심이 많지만 검증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공략합니다.
제언 2 — 진정한 공동체성 회복
이단이 파고드는 가장 큰 틈새는 외로움입니다. 도시 교회가 잃어버린 관계적 따뜻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수천 명이 모이지만 서로 모르는 대형 교회 구조는 이단에 가장 취약한 신도를 만들어냅니다. 소그룹 모임이 통제의 도구가 아닌 진정한 돌봄의 공간이 되도록 리더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취약한 청년들을 진정으로 돕는 교회가 이단 예방의 가장 강력한 방어선입니다. 취업 지원, 주거 연계, 심리 상담을 조건 없이 제공하는 것. 이것이 선교 이전에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제언 3 — 이단 탈퇴자 전문 상담 인프라 구축
현재 한국의 이단 탈퇴자 전문 상담사는 전국에 극소수입니다. 교단들이 공동으로 재원을 마련해 광역시·도 단위로 이단 피해자 지원 센터를 설립해야 합니다. 심리 상담은 물론 법률 지원, 재정 피해 회복, 사회적 재통합 프로그램을 포함해야 합니다. '탈퇴 이후 증후군'은 실재하는 심리 장애입니다. 이단을 빠져나온 사람이 또 다른 피해를 겪지 않도록 교회가 그 회복의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제언 4 — 종교 단체 재정 투명성 법제화 추진
한국의 종교 단체는 면세 혜택을 받으면서도 재정 공개 의무가 없습니다. 이 구조가 재정 착취를 가능하게 합니다. 교단 스스로 먼저 재정 공시를 시행하고, 정부에 일정 규모 이상 종교 단체의 재정 공시 의무화 법안을 제안해야 합니다. 신도는 자신이 드린 헌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투명성이 신뢰의 기초입니다.
제언 5 — 신속한 이단 경보 시스템 구축
교단 이단 규정 절차가 2~3년 걸리는 동안 피해자는 계속 발생합니다. 이단 규정과 별도로, 신학위원회가 6개월 이내에 '우려 단체 경보'를 발령할 수 있는 신속 절차를 만들어야 합니다. 법적 이단 규정은 엄격하게 유지하되, 성도들에게 주의를 촉구하는 경보는 빠르게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두 트랙을 분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언 6 — 디지털 이단 모니터링 팀 운영
이단의 주요 전도 창구가 유튜브, SNS, 팟캐스트로 이동했습니다. 교단 협력으로 디지털 종교 콘텐츠를 상시 모니터링하는 전문 팀을 운영해야 합니다. 의혹 콘텐츠에 대한 신학적 반박 영상을 빠르게 제작·유통하는 디지털 변증 사역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단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퍼지는 속도에 대응하려면 교회도 같은 채널에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제언 7 — 경제적 취약 계층 청년 지원 사역 강화
이단이 가장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대상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청년들입니다. 취업 지원, 주거 지원, 심리 상담을 교회가 조건 없이 제공할 때 이단의 관계의 그물이 들어설 공간이 줄어듭니다. 이것은 선교 전략이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 순서를 바꾸지 않아야 합니다. 먼저 돕고, 그 다음은 그 사람이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제언 8 — 탈퇴자 재통합 전담 목회 프로그램
이단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기존 교회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단에 물든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단 내 회복 공동체 프로그램을 만들어 탈퇴자들이 신앙을 재건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들을 보는 시선이 심판이 아닌 회복이어야 합니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공간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제언 9 — 가족 대상 이단 대처 교육 실시
이단 공동체에 가족이 들어가 있는 경우,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강압적 설득은 더 깊이 들어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교단 차원에서 가족을 위한 이단 대처 가이드를 제작하고 정기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가족이 포기하지 않고 곁에 있는 것이 탈퇴의 가장 강력한 동인 중 하나입니다. 관계를 끊지 않는 것. 그 한 가지가 때로는 모든 것을 바꿉니다.
제언 10 — 교회 자체의 윤리적 자기 점검
이단을 비판하기 전에 교회가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도들의 재정적 취약점을 이용하지 않는가? 우리 소그룹은 통제가 아닌 돌봄인가? 우리는 교인들이 자유롭게 다른 교회도 다닐 수 있는가? 우리는 탈퇴한 교인을 정죄하지 않는가? 우리 담임 목사는 재정 사용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는가? 이 질문들이 교회의 건강 지표입니다. 이단을 이기는 것은 반이단 운동이 아닙니다. 진짜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포식자는 빛의 부재 속에서만 자랍니다. 빛이 되십시오.
맺음말
이 소설은 실존하는 교단이나 개인을 단죄하기 위해 씌어지지 않았습니다.
한지수도, 박진혁도, 이나연도, 박재현도, 최성민도— 이 모두는 허구의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경험한 것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사회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빛과 포식자를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포식자는 빛처럼 보이도록 설계됩니다. 그리고 진짜 빛은 화려하지 않아서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이 소설이 그 구별을 위한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 교회에 바라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먼저 빛이 되십시오.
포식자는 언제나 빛의 부재 속에서만 자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