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교회
— 질문이 환영받는 곳에서 생긴 일들 —
대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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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할 때 많은 것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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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서충성 목사 — 뉴질랜드 한인 커뮤니티센터 소장. 60대 초반. 썸머힐 철학에 꽂혀 10년째 교회를 실험 중. 말끝마다 "괜찮아요~"를 붙이는 습관이 있어 학생들이 몰래 '괜찮아 목사님'이라 부른다.
이진주 교사 — 특수학교 교사. 40대 중반. ADHD 아이들의 언어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레고를 손에 쥐어줄 때 아이들 눈빛이 바뀌는 걸 본 후 인생이 바뀌었다. 항상 가방에 레고 조각 몇 개를 넣고 다닌다.
소이화 소장 — 치매 주간센터 소장. 50대. 치매 어르신들과 매일 "오늘이 무슨 날이에요?"를 반복하며 깨달은 게 있다: 기억보다 존재가 더 중요하다는 것. 강단 있는 성격에 눈물도 많다.
함주천 박사 — 기독교 교육학 박사. 50대 중반. 논문을 너무 많이 써서 일상 대화에도 각주를 달고 싶어 한다. "그것은 3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요..."로 말을 시작하는 버릇이 있다.
이혜원 — 패널. 30대 초반. 뇌가 순수하고 명랑하다. 위트 있는 질문을 무한 생산하는 기계. MZ세대 특유의 직진 화법으로 어른들을 당황시키는 재주가 있다.
이잠호 — 유튜브 채널 '겸석은 힘들다' 운영자. 30대 후반. 구독자 12만. 매주 "저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니죠?"를 외치며 살아가는 중이다. 세상에서 제일 솔직한 사람.
박양자 교수 — 양자역학 교수. 60대. 이름이 '양자'인 게 본인도 신기하다고 한다. 과학과 신앙의 접점을 찾는 데 인생을 바쳤다. 갑자기 슈뢰딩거의 고양이 얘기를 꺼내는 게 특기.
이수경 박사 — 기독교 교육 은퇴 박사. 70대. 평생 기독교 교육을 해온 분. 은퇴 후에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다. 가끔 "내가 젊었을 때는..."으로 시작하다가 스스로 "아, 이러면 꼰대지"라며 말을 바꾼다.
오 필립 — 다이버전 테라피스트(Diversion Therapist). 40대 초반. 교육 현장에서 창의적 전환 치료를 실천. 항상 "그 에너지, 다른 데 써봅시다"가 입버릇이다.
기독교 교육 연구소 학생들 — 20대 초중반. 논문보다 유튜브를 먼저 찾고, 예배보다 예배 후 밥이 더 기대되는 세대. 하지만 진지한 질문을 가슴에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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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도착 — 아무도 제 시간에 오지 않았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한인 커뮤니티센터 2층 세미나실.
오전 10시 정각. 정확히 아무도 없었다.
아니, 한 사람이 있었다. 이혜원이었다. 그녀는 세미나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텅 빈 의자들을 바라보다가 폰을 꺼내들었다.
"오늘 AI와 교회 세미나 있는 거 맞죠?" 카톡 단체방에 메시지를 날렸다.
5초 후.
이잠호: "가고 있어요. 양자역학 교수님이랑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는데 슈뢰딩거 고양이 얘기 15분 들었습니다. 저 지금 살아있는 건지 죽은 건지 모르겠어요."
박양자: "그건 내가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기 전의 상태를 설명한 거예요. 도착했어요."
함주천: "그것은 3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첫째—"
이혜원: "박사님 지금 카톡에 각주 다실 것 같아서 무서워요."
이수경: "저 화장실에 있어요. 70대는 좀 이해해주세요."
소이화: "저는 센터 어르신 한 분이 오늘이 제 결혼식이라고 우기셔서 드레스 입혀드렸어요. 지금 가요."
이진주: "저는 왔어요. 레고 가져왔어요."
서충성: "다 괜찮아요~"
이혜원은 폰을 내려놓으며 혼자 빙그레 웃었다. '이 사람들이 AI 시대 교회를 논하러 온다고?'
10시 18분. 드디어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충성 목사가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레포트 묶음이 한 아름이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프린터가 말을 안 들어서—"
"목사님," 이잠호가 손을 들었다. "그거 AI한테 시키면 됐잖아요."
"아, 그렇지! 근데 AI한테 프린트하라고 했더니 '저는 물리적 도구를 조작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괜찮아요~"
연구소 학생 중 하나인 김도현(23세)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목사님, 그게 AI한테 프린트를 시킨 게 아니라 파일을 보내라고 하셨어야—"
"아, 그래요? 그런 것도 돼요? 괜찮아요~"
이혜원이 옆 사람에게 속삭였다. "저분 '괜찮아요'를 몇 번이나 쓰실지 오늘 세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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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잡혔다. 넓은 원형 테이블에 모두가 앉았다. 벌집 구조는 아니었지만, 서충성 목사가 구석 자리에 놓인 의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저 의자들은 오고 싶지 않은 분들을 위한 거예요. 오늘 너무 진지해지면 저기 가서 쉬어도 됩니다."
이수경 박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저 70년 교육 현장에서 그런 말 처음 들어봤어요. 진지한 세미나에서 쉬어도 된다고."
"그게 바로 오늘 주제잖아요!" 서충성 목사가 두 눈을 빛내며 레포트를 펼쳤다. "AI 시대의 교회. 질문이 환영받고,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으며, 함께 먹고 노는 교회."
이잠호가 눈썹을 올렸다. "잠깐만요.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교회요? 구독자들한테 말하면 다음 주 교회 가겠다는 댓글 폭발할 것 같은데요."
"바로 그게 포인트예요." 서충성 목사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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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막: 씨앗들 — 썸머힐에서 레고까지
서충성 목사가 레포트 첫 장을 펼쳤다.
"이 이야기는 네 개의 씨앗에서 시작해요. 첫 번째는 썸머힐."
"썸머힐?" 이혜원이 즉각 손을 들었다. "영국에 있는 그 학교요? 수업 안 가도 되는?"
"정확히는," 함주천 박사가 입을 열었다. "그것은 3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요, 첫째, A.S. 닐의 자유 교육 철학에 기반하고, 둘째—"
"박사님." 이혜원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몇 가지인지 세고 있을 여유가 없을 것 같아서요. 한 문장으로 해주시면 감사해요."
방 안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함주천 박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빙그레 웃었다.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질문이 생기면 물어보고, 선생님은 답해주는 학교예요."
"오!" 이혜원이 박수를 쳤다. "완벽한 한 문장이에요!"
소이화 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 센터 어르신들도 비슷해요. '오늘 뭐 해야 해요?'라고 묻지 않고, '오늘 뭐 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표정이 완전히 달라져요. 치매 어르신들도요."
"그게 핵심이에요!" 서충성 목사가 테이블을 탁 쳤다. "그런데 닐의 썸머힐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아이가 어떤 질문을 해도 답하려면, 선생님이 과학, 철학, 역사, 예술, 신학 모든 분야의 박사여야 했거든요. 그게 가능해요?"
이잠호가 즉각 대답했다. "불가능이죠. 저는 역사도 모르고, 과학도 모르고, 제 유튜브 영상 편집도 모르는데 구독자한테 맡겨요."
웃음이 터졌다.
"바로 그거예요." 서충성 목사가 계속했다. "그런데 2026년에, 그 '모든 것을 아는 박사'가 생겼어요. AI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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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자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이 부분에서 좀 말씀드려도 될까요?"
모두가 기다렸다. 박양자 교수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저는 양자역학을 40년 가르쳤어요. 그 40년 동안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이 뭔지 알아요?"
"슈뢰딩거 고양이요?" 이혜원이 말했다.
박양자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알았어요?"
"아까 교수님이 이잠호 씨한테 15분 설명하셨다고 해서요."
"맞아요." 박양자 교수가 웃었다. "그리고 그다음 질문이 뭔지 알아요? '교수님, 근데 그게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어요?' 40년 동안 양자역학을 가르쳤는데 학생들은 결국 의미를 물어요. 의미는 물리학 방정식이 답해줄 수 없어요."
조용해졌다.
"AI도 마찬가지예요. AI가 아무리 많은 걸 알아도, '왜 살아야 하는가'를 답할 수는 없어요. 데이터로 만들어진 존재는 데이터 너머의 것을 줄 수가 없으니까요."
이수경 박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기독교 교육 40년 하면서 배운 거랑 똑같은 말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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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씨앗 이야기로 넘어갔다.
"ADHD 아이 이야기예요."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이진주 교사가 조용히 앉아 있다가 눈을 들었다.
"제가 여기서 말해도 될까요?"
"당연하죠."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이진주 교사는 가방에서 작은 레고 조각을 꺼냈다. 노란 2x4 블록이었다.
"저는 특수학교에서 15년 일했어요. 그 15년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얘는 왜 가만히 못 있어요?'였어요. ADHD 아이들한테 기존 예배 구조는 고문이에요. 앉아 있기, 조용히 하기, 집중하기. 이게 그 아이들이 가장 못하는 세 가지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이혜원이 물었다.
"레고 코너요."
이진주 교사가 손에 든 레고 블록을 테이블에 놓았다.
"교회 한쪽 구석에 레고 코너를 만들었어요. 그 아이는 거기서 끊임없이 놀았어요.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고. 다른 아이들과 다툼이 없었어요. 집중했어요. 그러다가 준비가 되면, 자기가 원할 때, 찬양하는 데로 슬그머니 왔어요."
"슬그머니." 오 필립이 중얼거렸다. 그는 오늘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 단어가 핵심이에요."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오 필립은 다이버전 테라피스트답게 천천히 말했다. "강제로 오게 하면 그건 참석이에요. 스스로 슬그머니 오면 그건 소속이에요. 치료 현장에서도 똑같아요. 제가 환자를 프로그램으로 끌고 오면 저항이 생겨요. 그 사람이 자기 페이스로 다가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결국 와요. 꼭 와요."
소이화 소장이 눈물이 글썽였다. "저희 치매 어르신들도 그래요. 강제로 활동에 앉히면 저항하시는데, 좋아하는 음악 틀어놓으면 자기도 모르게 다가오세요. 그 순간이 제가 이 일 못 그만두는 이유예요."
이잠호가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를 시작했다. "이거 영상 만들어도 되겠다. '강제로 오게 하지 마라'."
"제목이 그렇게 되면," 이혜원이 말했다. "교회 다니기 싫다는 유튜브 댓글 달릴 것 같은데요."
"원래 제 채널이 그런 채널이에요." 이잠호가 태연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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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학생 이채은(22세)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 질문 있어요. 근데 좀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어요."
"이상한 질문이 제일 좋은 질문이에요."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ADHD 아이한테 레고 코너 만들어주는 건... 교회가 그 아이를 받아들인 거잖아요. 근데 저는요." 이채은이 잠깐 멈췄다. "저는 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낀 적이 있어요. ADHD는 아니에요. 그냥 질문이 많아서요. '하나님이 있으면 왜 나쁜 일이 일어나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런 말 하면 안 돼'라는 말 들었거든요."
정적이 흘렀다.
서충성 목사가 천천히 말했다. "지금 그 질문, 이 자리에서 다시 해줘요."
이채은이 놀란 표정으로 목사를 봤다.
"하나님이 있으면 왜 나쁜 일이 일어나나요?"
서충성 목사가 미소를 지었다. "정말 좋은 질문이에요."
이채은의 눈에 뭔가 촉촉한 것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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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막: AI — 불가능이 가능해진 순간
함주천 박사가 노트북을 열었다.
"자, 이제 핵심으로 들어가 봅시다. AI가 교회 교육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이잠호가 손을 들었다. "저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저 AI 되게 무서워요."
"무서운 게 뭐예요?" 이혜원이 물었다.
"저 유튜브 해요, 맞죠. 근데 AI가 저보다 영상 더 잘 만들어요. 자막도 잘 달고, 썸네일도 잘 만들고, 스크립트도 잘 써요. 그러면 나는 뭐예요?"
"그건," 박양자 교수가 말했다. "제가 40년 동안 양자역학 가르치면서 느낀 거랑 같은 질문이에요. 내가 컴퓨터로 풀 수 있는 방정식을 왜 가르치나."
"그래서요?" 이잠호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컴퓨터는 방정식은 풀어요. 근데 학생 눈에 경이감이 생기는 순간은 못 만들어요. 그게 내 일이에요."
이잠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댓글 달린 거 읽으면서 우는 순간이 있거든요. '이 영상 보고 오늘 하루 버텼어요'라는 댓글이요. AI가 그걸 느낄 수 있어요?"
"못 느껴요." 서충성 목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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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충성 목사가 레포트의 표를 펼쳤다.
"여기 제가 정리해 놓은 게 있어요. AI가 할 수 있는 것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모두가 표를 들여다봤다.
AI가 할 수 있는 것:
어떤 질문에도 즉각 대답. 진화론과 창조론 함께 탐구. 24시간 신앙 질문 대응. 변증학 자료 즉시 제공.
교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이름을 기억하고 눈물을 함께 흘리는 관계. 밥을 함께 먹으며 삶을 나누는 공동체. 용서와 화해가 실제로 일어나는 현장. 안아주는 몸, 손을 잡아주는 사람.
이수경 박사가 안경 너머로 표를 천천히 읽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잠깐 멈췄다. "아, 이러면 꼰대지. 다시 할게요. 제가 기독교 교육 현장에서 40년 있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뭔지 알아요? 아이들 질문에 제대로 못 답해준 거예요. 진화론이 나오면 피했어요. '하나님이 왜 나쁜 일을 허락하시나요?'라고 하면 얼버무렸어요. 그게 너무 후회돼요."
"왜 그랬어요?" 이혜원이 조용히 물었다.
"무서웠어요." 이수경 박사가 솔직하게 말했다. "틀린 답을 할까봐. 믿음이 흔들릴까봐. 근데 AI가 있었으면 달랐을 것 같아요. '저도 이 질문 같이 찾아볼게요. AI한테 한 번 물어볼까요?'라고 했으면, 오히려 더 좋은 공간이 됐을 텐데."
이채은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게 진짜 솔직한 선생님이잖아요."
"나는 그걸 70세에야 깨달았어요." 이수경 박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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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원이 손을 들었다.
"저 AI한테 실제로 신앙 질문 해본 적 있어요. 한번 보여드려요?"
모두가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이혜원이 폰을 꺼내 AI 채팅창을 열었다.
"제가 AI한테 이렇게 물어봤어요.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왜 어린아이들이 고통받아요?'"
"그래서?" 이잠호가 물었다.
"AI가 '이 질문은 신학에서 신정론이라고 하는데...' 이러면서 어거스틴부터 C.S. 루이스까지 막 줄줄이 설명해줬어요. 되게 길게."
"좋은 답이었나요?" 함주천 박사가 물었다.
이혜원이 잠깐 생각했다. "정보는 좋았어요. 근데 저 그날 되게 힘들었거든요. 이유가 있어서 물어본 거예요. AI는 그걸 몰랐어요. 그냥 정보를 줬어요."
조용해졌다.
오 필립이 말했다. "다이버전 테라피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있어요. 기술이 발전해서 앱으로 분노 조절 프로그램도 있고, 명상 유도도 있는데... 환자가 '저 지금 죽고 싶어요'라고 했을 때 앱은 '호흡 운동을 해보세요'라고 해요. 그 순간 옆에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교회예요."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AI는 정보를 줄 수 있어요. 근데 옆에 있어줄 수는 없어요. 교회는 옆에 있는 공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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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학생 강민준(21세)이 손을 들었다.
"근데 저는 교회가 옆에 있어준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별로 없어요."
작은 정적이 흘렀다.
강민준은 계속 말했다. "교회 갔는데 처음 온 사람이라고 앞에 세워서 소개시키고, 헌금 봉투 왜 안 냈냐고 집사님이 뒤에서 부르고, 청년부에서는 왜 예배 자주 빠지냐고 카톡 오고... 저는 솔직히 AI가 더 안전하게 느껴질 때 있어요. 판단 안 하니까."
이수경 박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건 교회가 잘못한 거예요. 인정할게요."
서충성 목사가 고개를 숙였다. "저도 목사로서 사과해요. 그런 교회를 만든 사람들 중 하나니까요."
강민준이 당황한 눈으로 목사를 봤다.
"그래서 이 레포트를 쓴 거예요."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질문이 환영받는 교회.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교회. 강요하지 않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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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막: 공간 — 벌집 의자와 미로 놀이터
"이제 공간 이야기 해볼게요." 서충성 목사가 레포트를 넘겼다.
이혜원이 즉각 손을 들었다. "벌집 의자가 뭐예요?"
"봐요." 서충성 목사가 세미나실 구석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육각형 모양으로 배열된 의자들이 있었다. 각자의 칸이 있으면서도 서로 연결된 구조였다.
"각 칸이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어 있어요. 혼자 있어도 되지만 외롭지 않은 구조예요."
이혜원이 일어나서 가보더니 앉아봤다. "오, 이거 되게 좋다.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는데 내 공간이 있는 느낌이에요."
"기존 줄 의자는요," 이진주 교사가 말했다. "모두 같은 방향을 보며 수동적으로 앉는 구조예요. 특수학교 아이들한테 그 구조 자체가 스트레스예요. 자기 몸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계속 의식해야 하거든요."
"그러면 벌집 의자는요?" 이잠호가 물었다.
"자기 공간이 있어요. 경계선이 명확해요. 근데 연결도 돼요. ADHD 아이들이 실제로 더 차분해져요."
소이화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매 어르신들도 본인 자리가 정해지면 훨씬 안정되세요. 공간이 심리적 안전감을 줘요."
박양자 교수가 말했다. "재미있네요. 양자역학에서 입자는 관측되기 전까지 위치가 확정되지 않아요. 관측되는 순간 위치가 정해지죠. 사람도 비슷한 것 같아요. 자기 자리가 확인될 때 존재가 확정되는 느낌."
이혜원이 메모를 했다. "교수님, 지금 되게 멋진 말씀 하셨는데요."
박양자 교수가 겸연쩍어했다. "또 슈뢰딩거 나왔나요?"
"아니요. 이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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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필립이 입을 열었다.
"미로 놀이터 이야기가 제 전공이에요. 다이버전 테라피에서 미로는 중요한 도구예요."
"어떻게요?" 이채은이 물었다.
"충동적인 아이들,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아이들을 직접 압박하면 반발이 와요. 근데 미로 게임을 시키면 그 에너지를 탐험에 쓰게 돼요. 막히면 돌아오고, 다시 시도하고. 이게 바로 문제 해결 훈련이에요. 그런데 아이들은 그게 훈련인지 몰라요. 그냥 놀고 있어요."
"그러면 교회에 미로 놀이터가 있다는 건," 이혜원이 말했다. "신앙 여정이 헤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네요."
"맞아요." 서충성 목사가 환하게 웃었다. "교회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당신의 신앙 여정이 헤매는 것처럼 보여도 괜찮아요. 우리도 함께 찾아가고 있어요.'"
이잠호가 천장을 보며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 그거 되게 필요했어요. 교회 다니다가 질문이 생겨서 떠났는데, 그 질문 가지고 있어도 된다는 말 들었으면 안 떠났을 것 같아요."
"그 질문이 뭐였어요?" 이수경 박사가 조용히 물었다.
이잠호가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제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기도 많이 했는데 안 나으셨어요. 그 후에 하나님이 계신가, 계신다면 왜 그러셨나... 그 질문을 교회에서 못 했어요. 분위기상."
정적이 흘렀다.
이채은이 아까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하나님이 있으면 왜 나쁜 일이 일어나나요?"
이번엔 아무도 "그런 말 하면 안 돼"라고 하지 않았다.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그 질문에 쉬운 답은 없어요. 근데 기독교는 수천 년 동안 그 질문과 씨름해 왔어요. 욥이 씨름했고, 시편 기자들이 씨름했고,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어요. 그 질문을 품고도 신앙 안에 있을 수 있어요."
이잠호가 눈을 깜빡였다.
"지금 그 말이 15년 전에 필요했던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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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막: 레고 성경도시 — ADHD 아이가 만드는 하나님 나라
이진주 교사가 가방에서 레고 조각들을 더 꺼냈다. 여러 색의 블록들이 테이블에 쏟아졌다.
"실제로 해봤어요."
"뭘요?" 이혜원이 눈을 반짝였다.
"성경 도시를 레고로 만들게 했어요. ADHD 진단 받은 8살 아이한테."
"예루살렘?" 강민준이 물었다.
"처음엔 그 아이한테 '예루살렘을 만들어봐'라고 했어요. 아이가 레고를 집어들더니 저를 보는 거예요. '선생님, 예루살렘이 어떻게 생겼어요?' 제가 AI한테 물어봤어요. AI가 예루살렘 성전 구조를 설명해줬어요. 아이가 그걸 듣더니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요?" 소이화 소장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성전 다 만들고 나서 그 아이가 저한테 물어요. '선생님, 예수님은 이 성전 어디 계셨어요?' 제가 AI한테 또 물었어요. 성전 뜰, 유월절, 상을 엎으신 이야기... 아이가 레고 상을 하나 만들어서 성전 안에 놓더니, 확 뒤집었어요. 그러면서 '예수님 막 화났다!'라고 하는데, 그게 어떤 설교보다 생생한 성경 이야기였어요."
테이블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아이의 몸과 손이 이야기를 기억한 거예요." 이진주 교사가 말했다. "그 아이는 그 장면을 평생 잊지 않을 거예요."
오 필립이 박수를 쳤다. "완벽한 다이버전 테라피예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행동으로 전환. 그 과정에서 치유가 일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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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주천 박사가 드디어 학자다운 분석을 시작했다.
"그것은 구성주의 학습 이론, 특히 피아제의 동화와 조절 개념과 연결이—"
이혜원이 손을 들었다. "박사님, 한 문장 버전이요."
함주천 박사가 잠깐 멈췄다. "아이가 직접 만들면서 배운다."
"완벽해요." 이혜원이 엄지를 들었다. "박사님 요즘 진짜 는 것 같아요."
"이게 요약이에요?" 함주천 박사가 약간 아쉬운 표정으로 물었다.
"더 하고 싶으시면 하셔도 돼요." 이수경 박사가 인자하게 말했다.
"아니에요... 이번엔 이혜원 씨 말이 맞아요." 함주천 박사가 수긍했다.
이채은이 손을 들었다. "근데 진짜 궁금한 게 있어요. 레고로 성경 도시 만드는 게 예배가 될 수 있어요?"
서충성 목사가 조용히 대답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이렇게 나와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거예요. 레고를 만들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성경 이야기가 몸으로 기억되면... 그게 예배 아닌가요?"
침묵 후, 이채은이 천천히 말했다. "저는 교회에서 그런 말 처음 들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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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막: Nothing But Being — 아무것도 안 하는 주일
"이제 제일 논란 많은 부분이에요." 서충성 목사가 레포트를 넘기며 씩 웃었다.
"Nothing But Being. 존재만 하기."
이잠호가 즉각 반응했다. "그게 뭐예요?"
"한 달에 한 번,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주일이에요."
연구소 학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강민준이 손을 들었다. "그러면 예배는요?"
"예배 하고 싶으면 해요.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교회에 그냥 와서 앉아 있다 가도 돼요."
"와서 있다 가면 되는 교회." 이혜원이 천천히 반복했다. "진짜요?"
"진짜예요."
이잠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는 그런 교회 없어서 교회를 떠났던 것 같아요. 가면 뭔가 해야 했거든요. 봉사하고, 헌금하고, 출석 체크하고, 소그룹 나가고..."
"그게 다 나쁜 건 아니에요." 이수경 박사가 말했다. "근데 그것들이 우선이 되면 안 돼요. 먼저 와서 있어야 해요. 그냥."
"그냥 있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은데요." 이채은이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해요."
오 필립이 입을 열었다. "그게 현대인의 증상이에요. FOMO — Fear Of Missing Out. 뭔가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공포. 다이버전 테라피의 역설적인 목표 중 하나가 '아무것도 안 하는 능력'을 키우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하는 능력." 박양자 교수가 중얼거렸다. "양자역학에서 진공 상태도 에너지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가장 많은 잠재력을 가진 상태."
"교수님 또 슈뢰딩거—" 이혜원이 말했다.
"이번엔 진공 에너지예요." 박양자 교수가 방어했다.
"좋아요, 계속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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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화 소장이 조용히 말했다.
"치매 어르신들이 저한테 가르쳐 준 게 있어요. 어떤 분이 창 밖을 하염없이 보고 계셨어요. 뭐 하세요? 물었더니 '그냥 봐'라고 하셨어요. 뭐 보여요? 하니까 '하늘'이라고. '거기 계시네.' 뭐가요? '하나님.'
기억이 다 사라진 분이 하늘에서 하나님을 봤어요. 아무것도 안 하시는 순간에."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이잠호가 헛기침을 했다. 눈이 촉촉했다.
"저 요즘 너무 바빠서 하늘 본 지 오래된 것 같아요."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그래서 Nothing But Being이에요. 아무것도 안 할 때 많은 것이 일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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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원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 솔직하게 여쭤봐도 돼요? 목사님."
"당연하죠."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목사님은 목사님이잖아요. 이 모든 철학 정말 믿어요? 아니면 요즘 트렌드 맞추는 거예요?"
방 안이 잠깐 긴장됐다.
서충성 목사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진짜처럼 느껴졌다.
"저 뉴질랜드 와서 10년 됐어요. 처음에 한인 교회 개척했을 때는 아주 전통적으로 했어요. 설교 잘 해야지, 프로그램 잘 만들어야지. 근데 사람들이 오다가 떠났어요. 나중에 왜 떠났냐고 물었더니, '교회에 오면 숨이 막혔어요'라고 했어요."
이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저를 바꿨어요. 하나님이 주신 곳인데 숨이 막히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10년 동안 찾아다녔어요. 어떤 교회여야 하는가. 썸머힐 읽고, 레고 코너 만들고, 도시락 들고 공원 나가고... 트렌드 아니에요. 실패에서 배운 거예요."
이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더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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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막: AI 반주와 수노 찬양 — 교회가 직접 음악을 만들다
점심 휴식 후, 오후 세션이 시작됐다.
연구소 학생 최수아(24세)가 노트북을 열었다.
"제가 아까 점심 먹으면서 실험해봤어요. 수노에서 찬양 만들었어요."
"오, 진짜요?" 이혜원이 달려들었다.
"네. 아이들이 쓴 가사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직접 만들어봤어요."
최수아가 노트북에서 파일을 열었다.
"이게 가사예요. 제가 썼어요. '하나님, 강물처럼 흘러요 / 바람처럼 불어요 / 여기에 계세요.'"
"저 들을게요." 이진주 교사가 말했다.
최수아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에 부드러운 보이스. AI가 만든 음악이었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30초쯤 흘렀다.
소이화 소장이 먼저 말했다. "우리 센터 어르신들 들으시면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저 이거 설교 대신 틀어도 될 것 같아요." 이잠호가 말했다.
이수경 박사가 눈물을 닦았다. "이게 아이가 쓴 가사라고 했죠? 저는 40년 기독교 교육 했는데 이 세 줄보다 깊은 기도문을 못 쓸 것 같아요."
이혜원이 노트에 받아 적었다. "하나님, 강물처럼 흘러요. 바람처럼 불어요. 여기에 계세요."
"여기에 계세요." 서충성 목사가 조용히 반복했다. "이게 예배의 본질이에요. 거창한 신학이 아니라. '여기에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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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주천 박사가 말했다.
"AI 반주 시스템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좀 정리하면, 그것은—" 이혜원이 눈을 가늘게 뜨는 걸 보고 재빨리 수정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AI가 반주를 맡으면 두 가지가 자유로워져요. 음악가가 예배에 집중할 수 있고, 반주자가 없는 소그룹에서도 찬양이 가능해요."
"진짜 중요한 게 있어요." 이진주 교사가 말했다. "특수학교에서 악기 배우는 아이들이 있어요. 근데 악보 보고 동시에 감정 표현하는 게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AI 반주가 있으면 그 아이가 한 가지 음을 치면서도 완전한 음악이 나와요. 그 아이가 예배 음악에 참여할 수 있어요."
이채은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진짜 포용이다."
"그렇죠." 이진주 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그냥 그 아이가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문을 하나 더 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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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잠호가 폰을 들었다.
"저 지금 라이브 안 하지만 메모하고 싶어요. 오늘 들은 것 중에 영상 만들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어떤 게요?" 이혜원이 물었다.
"하나... AI가 정보는 줄 수 있는데 옆에 있어줄 수는 없다. 둘... 아무것도 안 할 때 많은 것이 일어난다. 셋... 슬그머니 오는 게 참석이 아니라 소속이다. 넷... 질문이 환영받는 교회."
"그 목록," 이수경 박사가 말했다. "제가 40년 기독교 교육 하면서 쓴 논문들보다 실용적이에요."
"그게 MZ세대의 힘이에요." 함주천 박사가 말했다.
모두가 그를 쳐다봤다. 예상 밖의 말이었다.
"아니, 제가 틀렸나요?" 함주천 박사가 멋쩍어했다.
"아니요." 이혜원이 말했다. "맞아요. 그리고 박사님이 그걸 인정하시는 게 더 놀라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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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막: 자연예배 — 도시락 싸들고 놀러 가는 교회
박양자 교수가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서목사님 레포트에 이런 구절이 있더라고요. '온 교인들이 도시락 싸들고 놀러 가는 교회가 좋다.'"
"좋아요?" 이수경 박사가 물었다.
"저는 이 문장 처음 읽었을 때 웃었어요. 그러다가 울었어요."
"왜요?" 이혜원이 물었다.
"제가 다닌 교회들을 돌이켜보면, 도시락 싸들고 놀러 가는 분위기가 없었어요. 항상 진지하고, 무겁고, 뭔가를 이뤄야 할 것 같았어요. 근데 사실 초대교회가 그랬잖아요. 집에서 밥 먹고, 같이 있고."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자연예배는 한 달에 한 번이에요. 공원에 가요. 도시락 싸가요. 찬양하고, 나눔하고, 밥 먹어요. 설교 대신 목사가 물어요. '오늘 자연에서 하나님을 어디서 보셨어요?'"
"대답을 못하면요?" 강민준이 물었다.
"괜찮아요. 안 해도 돼요. 근데 항상 누군가 대답해요. 지난번엔 8살 아이가 '고래요'라고 했어요. 요나 이야기 생각했대요."
웃음이 번졌다.
"그러다 직장 잃은 형제가 말했어요. '저는 강이 계속 흘러가는 거요. 막혀도 어떻게든 가던데요.'"
정적.
"그 말 자체가 간증이에요. 누가 그 말 써줬겠어요? AI가 써줬겠어요? 그 사람 안에서 나온 거예요. 그 사람이 강을 보면서 자기 삶을 본 거예요."
소이화 소장이 조용히 말했다. "우리 치매 어르신 한 분이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시는데, 꽃을 보면 웃으세요. 아무것도 없어도 꽃이 있으면 웃으세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이 기억보다 더 깊은 데 닿는 것 같아요."
이혜원이 메모를 멈추고 잠깐 앉아 있었다.
"저 오늘 되게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조용히 말했다. "원래 이런 세미나에 오면 '아, 뭔가 배웠다'로 끝나는데 오늘은 좀 달라요."
"뭐가 달라요?" 오 필립이 물었다.
"뭔가 안에서 건드리는 느낌요."
서충성 목사가 웃었다. "그게 성령이에요. 아마도."
이혜원이 잠깐 멈추더니 말했다. "저 그 말 처음엔 좀 빨리 판단하려 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열어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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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막: 30가지 원칙 — 새로운 교회 생태계
오후 2시. 함주천 박사가 발표를 시작했다.
"30가지 원칙을 보면, 크게 6개 섹션으로 나눌 수 있어요."
"박사님." 이혜원이 손을 들었다.
"왜요?"
"지금 30가지 다 하실 건가요?"
"... 원래 계획은 그랬는데."
이혜원이 시계를 봤다. "두 시간이에요."
"각 항목당 4분이에요. 가능해요."
이잠호가 속삭였다. "저 '겸석은 힘들다' 에서 이런 상황이 제일 힘들어요."
오 필립이 말했다. "박사님, 어떤 3가지가 가장 핵심이에요?"
함주천 박사가 리스트를 쭉 훑어봤다.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
"AI 질문 키오스크. 세대 간 연결. 그리고 예언자적 발언."
"그거 세 개만 해요." 이혜원이 말했다. "나머지는 자료로 배포해 주시고."
"그게 더... 효율적이긴 하죠." 함주천 박사가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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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질문 키오스크부터 해요."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교회 로비나 카페에 AI 탐구 스테이션을 놔요. 신앙, 과학, 역사, 성경 어떤 질문이든 할 수 있어요. 리더는 옆에서 대화를 이어가는 코칭 역할이에요."
이채은이 손을 들었다. "근데 AI가 잘못된 답을 하면요?"
"괜찮아요."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잘못된 답이 나오면 더 깊은 탐구의 시작이에요. '이 AI는 이렇게 말하는데, 성경은 뭐라고 하나요?' 그 질문이 더 좋은 공부예요."
"오." 강민준이 생각에 잠겼다. "AI를 답 기계로 쓰는 게 아니라, 질문 생성기로 쓰는 거네요."
"정확해요!" 서충성 목사가 박수를 쳤다.
이진주 교사가 말했다. "특수학교에서도 AI를 쓸 때 답을 구하는 게 아니라 대화를 시작하는 도구로 써요. 아이가 '이게 뭐예요?'라고 물으면 AI가 설명하고, 그 설명 듣고 아이가 또 질문하고. AI가 대화 파트너가 되는 거예요."
"치매 어르신들한테도 AI 스피커 써요." 소이화 소장이 말했다. "기억 잃으신 분들이 AI한테 물어보면 AI가 대답해요. AI가 짜증내지 않거든요. 어르신이 같은 말을 열 번 해도요."
이잠호가 말했다. "저는 열 번 같은 말 들으면 짜증나는데."
"그래서 AI와 사람이 함께 있어야 해요." 소이화 소장이 말했다. "AI는 무한히 반복에 인내하고, 사람은 진짜 감정을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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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세대 간 연결." 함주천 박사가 말했다.
"인터넷 알고리즘은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연결해요. 교회는 80세 할머니와 20세 대학생이 같은 밥을 먹는 공간이에요."
이혜원이 말했다. "제 할머니가 92세인데, 저는 할머니 이야기 진짜 재미있거든요. 근데 할머니 친구들은 다 돌아가셔서 할머니가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요."
"그게 현대의 비극이에요." 이수경 박사가 말했다. "노인이 고립되고, 청년이 방향을 잃고. 이 두 세대가 함께 있으면 서로 채워줄 수 있는데."
이잠호가 말했다. "저 채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팬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댓글에 '내 손자 같아서 구독했어요'라는 분들이요. 온라인에서도 세대가 연결될 수 있어요."
"온라인은 연결이에요." 오 필립이 말했다. "근데 밥은 못 같이 먹어요."
"맞아요." 이잠호가 수긍했다. "밥이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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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예언자적 발언." 함주천 박사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모스, 미가, 예레미야처럼 사회 불평등, AI 기업 독점, 이민자 차별에 대해 성경의 언어로 발언하는 교회."
이혜원이 손을 들었다. "이건 좀 정치적인 것 아닌가요?"
"예언자적이에요."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정치적인 것과 예언자적인 것은 달라요. 정치는 편을 드는 거고, 예언자는 진실을 말하는 거예요. 강자에게 불편한 진실을요."
"AI 기업 독점이라고 하셨는데," 박양자 교수가 말했다. "저도 과학자로서 이게 걱정돼요. AI 데이터가 극소수 기업에 집중되면, 그 기업들이 사실상 세계의 지식을 독점해요."
"교회가 거기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강민준이 회의적으로 물었다.
"낼 수 있어야 해요." 이수경 박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초대교회가 로마 제국에 목소리를 냈던 것처럼요. 세상 권력에게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게 교회의 역할 중 하나예요."
이잠호가 메모했다. "교회가 AI 윤리 발언 기관이 된다. 이거 영상 주제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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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막: 어느 주일의 하루 — 이야기로 보는 비전
서충성 목사가 레포트 마지막 장을 펼쳤다.
"자, 이제 이 모든 게 실제로 일어나면 어떤 날이 될지, 8장 이야기를 읽어볼게요."
조용해졌다.
서충성 목사가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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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어느 주일 아침. 자연예배 주일이다.
오전 9시. 교회 주차장에 교인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저마다 도시락을 들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 김 집사님을 위해 청년부가 미리 도시락을 준비했다. ADHD인 8살 민준이는 레고 공방에 잠깐 들러 지난주에 만들다 남긴 고래를 봉투에 챙긴다. 오늘 강가에서 완성할 생각이다.
카풀 안에서 대화가 시작된다. 지난주 직장을 잃은 30대 박 형제가 조용히 앉아 있다. 옆에 앉은 장로님이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냥 함께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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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읽다가 멈췄다.
"그냥 함께 가고 있다. 이게 포인트예요. 장로님이 '힘들지? 왜 직장 잃었어? 내가 도움 줄 수 있어?'가 아니에요. 그냥 함께 가고 있어요."
이잠호가 조용히 말했다. "제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이야', '천국 갔으니까 기뻐해야지' 이런 말들이 오히려 상처였어요. 그냥 있어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소이화 소장이 말했다. "위로가 말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같이 있는 게 위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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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충성 목사가 계속 읽었다.
공원에 도착하면 아이들이 제일 먼저 흩어진다. 민준이는 강가에 앉아 고래 레고를 완성한다. 다른 아이들이 옆에 모여 구경한다. '이거 뭐야?' '고래야. 요나 이야기 알아?' 민준이가 먼저 설명한다. AI에게 '고래가 사람을 삼킬 수 있어?'라고 질문하는 아이도 있다. 누구도 '그런 말 하면 안 돼'라고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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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은이 웃었다. "누구도 '그런 말 하면 안 돼'라고 하지 않는다."
"그게 자유예요."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질문이 환영받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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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30분. 언덕 위 잔디밭에 둥글게 앉는다. 찬양 리더가 수노로 만든 찬양을 블루투스 스피커로 튼다. 아이들이 지난달 자연예배에서 직접 쓴 가사다. '하나님, 강물처럼 흘러요 / 바람처럼 불어요 / 여기에 계세요.' 거창하지 않지만, 이 노래 안에 아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설교 대신, 목사님이 묻는다. '오늘 자연에서 하나님을 어디서 보셨어요?'
민준이가 손을 든다. '고래요.' 웃음이 번진다.
박 형제가 천천히 말한다. '저는... 강이 계속 흘러가는 거요. 막혀도 어떻게든 가던데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 말 자체가 간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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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이잠호가 폰을 뒤집어 엎었다.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냥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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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을 꺼낸다. 함께 먹는다. 이것이 오늘의 성찬이다. 김 집사님이 말한다. '이런 교회가 있을 줄 몰랐어요.' 처음 온 이웃이 조용히 듣는다. 강요가 없었다. 그냥 여기 있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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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충성 목사가 책을 덮었다.
침묵이 흘렀다. 긴 침묵이었다.
이수경 박사가 먼저 말했다. "이런 교회가 있을 줄 몰랐어요."
모두가 그 말의 무게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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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막: 질문들 —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모든 게 시작되는 곳
연구소 학생들 중 가장 조용했던 박서준(23세)이 손을 들었다.
"저 한 가지 현실적인 질문을 해도 될까요?"
"하세요."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이 모든 게 완벽한데요. 근데 저는 이게 가능한지 잘 모르겠어요. 교회에는 기득권이 있고, 장로님들이 계시고, 예산이 있고, 전통이 있잖아요. 레고 코너 만들려고 하면 '그게 예배야?'라고 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서충성 목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요. 저도 겪었어요. '목사가 왜 공원에 가요? 교회에서 예배해야지.' 이런 말이요."
"그럼 어떻게 했어요?"
"저는요,"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먼저 작게 시작했어요. 레고 코너 하나. 도시락 한 번. 그 작은 것이 실제로 변화를 만들면, 사람들이 봐요. '어, 이 아이가 달라졌네.' '저 어르신이 웃으시네.' 그게 설득이에요. 논리가 아니라 현장이에요."
함주천 박사가 말했다. "변화는 제도에서 오지 않아요. 이야기에서 와요. 민준이가 레고로 고래 만들어서 요나 이야기 설명한 것처럼요. 그 이야기가 퍼지면 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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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원이 손을 들었다.
"저 오늘 여러 번 생각했는데요. 저는 교회를 안 다녀요. 근데 오늘 얘기는 교회 얘기인데 제가 계속 관심이 가고, 계속 뭔가 만지는 느낌이 있어요. 그게 신기해요."
"왜 교회를 안 다녀요?" 소이화 소장이 조용히 물었다.
"복잡해요." 이혜원이 잠깐 생각했다. "하나님이 있는지 모르겠고, 있다면 왜 이런 세상인지 모르겠고, 교회는 가면 판단받는 느낌이고."
"지금 그 세 가지 말한 거요,"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그게 다 환영받는 교회면 어떨 것 같아요?"
이혜원이 잠깐 생각했다. "가볼 것 같아요."
"그러면 충분해요."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와서 있어봐요. 뭐 안 해도 돼요."
이혜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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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자 교수가 말했다.
"저는 과학자로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어요. 과학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더 근원적인 질문을 해요. '이 우주가 왜 이렇게 정교한가.' '의식이 뭔가.' '왜 존재가 있는가.' 이게 과학이 답 못 하는 영역이에요. 그 영역을 교회가 채워야 해요."
이잠호가 말했다. "그런데 교회가 그걸 잘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 경험상."
"지금은요." 이수경 박사가 말했다. "근데 변하고 있어요. 오늘 이 방에 있는 사람들이 그 증거예요."
모두가 잠깐 서로를 봤다.
정말로, 이 방에는 특수학교 교사, 치매 센터 소장, 양자역학 교수, 유튜버, 다이버전 테라피스트, 은퇴 교수, 현직 박사, 연구소 학생들, 그리고 교회 안 다니는 패널이 있었다. 이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질문을 두고 함께 앉아 있었다.
'어떤 교회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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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막: 함께 먹는다 — 오늘의 성찬
세미나가 마무리될 즈음, 소이화 소장이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아, 깜빡했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센터 어르신들이랑 어제 같이 만든 거예요. 오늘 가져와도 되냐고 했더니 '당연히 되지!'라고 하셔서요."
그러더니 이진주 교사도 가방을 열었다. "저도 있어요."
최수아가 말했다. "저도요! 왠지 가져와야 할 것 같아서요."
강민준이 폰을 들고 편의점 앱을 열었다. "저 주문할게요."
"괜찮아요~" 서충성 목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혜원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이거 지금 도시락 싸들고 모인 거잖아요."
"맞네." 이잠호가 웃었다.
"공원이 아니어도 되는 거였네." 이채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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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에 도시락들이 하나둘 펼쳐졌다. 각자가 가져온 것이었다. 일부는 직접 만든 거고, 일부는 편의점 거고, 소장님이 가져온 건 어르신들이 만든 거였다.
이수경 박사가 조용히 기도했다.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 음식에."
짧은 기도였다.
이잠호가 눈을 뜨며 말했다. "저 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기도 안 했는데, 지금 이 기도는 이상하게 들렸어요."
"어떻게요?" 소이화 소장이 물었다.
"따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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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으며 대화가 계속됐다.
오 필립이 김밥을 먹으며 말했다. "다이버전 테라피에서 식사 공유가 치유 과정에서 중요해요. 같이 먹는 행위가 경계를 낮춰요."
"공자도 밥을 같이 먹은 사람을 믿으라고 했잖아요." 박양자 교수가 말했다.
"공자가 그런 말 했어요?" 이혜원이 물었다.
"어... 맞나요?" 박양자 교수가 웃었다. "아닐 수도 있어요. 그냥 그런 느낌이어서."
모두가 웃었다.
"이거 AI한테 확인하면 되겠다." 강민준이 폰을 꺼내려 했다.
"안 해도 돼요." 이혜원이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엔 그냥 먹어요."
강민준이 폰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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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교사가 가방에서 레고 블록을 꺼내 테이블 한쪽에 놓았다.
이채은이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블록 하나를 집었다. 노란 블록이었다.
"뭐 만들고 싶어요?" 이진주 교사가 물었다.
이채은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미로요."
"만들어 봐요."
이채은이 조용히 블록을 쌓기 시작했다. 복잡하게 구불구불한 길이 생겼다.
이잠호가 옆에서 보다가 말했다. "막히는 길이 있네요."
"어. 막히면 돌아가야 해요." 이채은이 말했다. "그게 신앙 여정이라고 하셨잖아요."
서충성 목사가 조용히 그 모습을 봤다.
아무것도 안 할 때 많은 것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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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막: 마무리 — 질문 하나씩
세미나가 끝날 때, 서충성 목사가 말했다.
"마무리로, 각자 오늘 남은 질문 하나씩 말해줘요. 답 안 해도 돼요. 그냥 질문을 소리 내보는 거예요."
이수경 박사부터 시작했다.
"저는요... 40년 교육 했는데 지금 다시 시작하면 어떻게 다를까요?"
함주천 박사.
"교회가 정말 변할 수 있을까요?"
이진주 교사.
"레고 코너 하나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요?"
소이화 소장.
"기억이 다 사라져도 남는 게 있다면 뭘까요?"
오 필립.
"에너지를 다른 데 쓰게 도와주는 것, 그게 결국 사랑이 아닐까요?"
박양자 교수.
"우주가 이렇게 정교한 게 우연일 수 있을까요?"
이잠호.
"아버지, 지금 어딘가에 계신가요?"
(잠시 침묵)
이채은.
"질문을 해도 되는 공간이 있다면, 저는 돌아올 수 있을까요?"
강민준.
"작은 것들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최수아.
"제가 만든 이 찬양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요?"
이혜원이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오래 생각했다.
"여기에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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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충성 목사가 그 질문을 받아들었다.
"괜찮아요~"라고 하지 않았다.
"저도 그 질문, 아직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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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각자의 주일
세미나가 끝나고 한 달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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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잠호의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왔다. 제목: "교회 다니기 싫은 당신에게." 12분짜리 영상이었다. 레고 코너 이야기, 슬그머니 오는 것의 의미, 고래 이야기. 댓글에 "저 오늘 오랜만에 교회 갔어요"가 341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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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은은 다음 주일에 서충성 목사 교회에 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벌집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한 시간쯤 후, 레고 코너에서 미로를 만들었다. 목사님이 지나가면서 "뭐 만들고 있어요?"라고 물었다. "탐험 중이에요"라고 답했다.
"완벽해요." 목사님이 웃으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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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화 소장은 그날 이후 센터에 AI 스피커를 도입했다. 어르신 한 분이 스피커한테 "오늘 하늘 어때?"라고 물었다. AI가 날씨를 설명했다. 그 어르신이 웃으며 말했다. "맑구나. 하나님이 기분 좋으신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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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교사는 특수학교 교실에 레고 성경 도시 프로젝트를 정식으로 시작했다. 첫 달에 아이들이 만든 건 노아의 방주였다. 한 아이가 방주에 공룡을 넣으면서 말했다. "공룡도 하나님이 만들었잖아요." 이진주 교사는 그 말을 메모했다. 아이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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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원은 한 달 동안 매일 밤 자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폰 메모에 썼다.
'여기에 계세요?'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아래 자기도 모르게 쓴 말이 있었다.
'오늘 강물처럼 흘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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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자 교수는 다음 학기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 우주가 왜 이렇게 아름다운지 알아요?"
학생들이 수식을 꺼내려 했다.
"잠깐. 그 전에 그냥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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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잠호는 아버지 기일에 혼자 공원에 갔다. 도시락을 싸들고. 강가에 앉아서 물이 흘러가는 걸 봤다.
막혀도 어떻게든 가는 물.
눈물이 났다. 오래 울었다.
그리고 폰을 꺼내 녹화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오늘 저 아버지 기일이에요. 아무 말도 안 할게요. 그냥 같이 있어요."
14분 동안 강물 소리만 녹음됐다.
댓글 1,84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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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충성 목사는 그 달 주일에 설교 없이 예배를 했다.
공원에서 모여, 도시락 먹고, 자연에서 하나님을 어디서 보셨냐고 물었다.
처음 온 사람이 있었다. 아무것도 강요받지 않았다. 끝날 때 그 사람이 말했다.
"다음 주에도 와도 돼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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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이 이야기는 끝이 없다.
질문이 환영받는 곳에서는 이야기가 계속 시작되기 때문이다.
레고 블록처럼, 쌓고 부수고 다시 만든다. 미로처럼, 막히면 돌아오고 다시 찾는다. 강물처럼, 막혀도 어떻게든 간다.
AI 시대의 교회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함께 먹고, 함께 있고, 질문하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곳.
그런 교회가 세상 어딘가에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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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 요한복음 4:24
레고로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것도 예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예배다.
도시락 싸들고 공원에 가는 것도 예배다.
"여기에 계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예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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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 —
AI 시대의 교회 | 대담 집중 소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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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이혜원의 '괜찮아요' 카운트
세미나 내내 세어보니, 서충성 목사는 '괜찮아요'를 총 23번 말했다.
그중 21번은 진심이었고, 2번은 상황이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말했다.
이혜원은 그 2번이 가장 따뜻했다고 나중에 말했다.
"정말 안 괜찮을 때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목사인 것 같아요."
서충성 목사는 그 말을 듣고 오래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저도 그게 되고 싶어요. 아직은 연습 중이에요."
"괜찮아요." 이혜원이 웃으며 말했다.
— 진짜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