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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포식자2 회복축제 종교소설

novel church pcknz 2026. 3. 17. 17:45

회복축제
Festival of Recovery
빛의 포식자 후속작  
•  대안 공동체 교회를 향한 종교 소설  •  약 63,000자
⚠  창작물 고지
이 소설의 모든 인물·단체·사건은 순전한 허구입니다.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 강민준 목사 등 모든 교회명과 인물은 창작된 것이며 실존 단체와 무관합니다.
예수선교단·온무리교회 등의 언급은 역사적·사회적 현상 서술을 위한 것이며 현재 활동에 대한 평가가 아닙니다.

목  차
프롤로그 — 2035년 봄, 인천 부두
1부: 진단 — 교회가 잃어버린 것들
1장. 무너진 문들 — 교회가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2장. 찬양 혁명 — 예수선교단과 온무리교회가 바꾼 것들
3장. 카리스마 경제학 — 더 화려한 것이 더 옳은 것처럼 보일 때
2부: 사람들 — 생산에서 소외된 자들
4장. 히키코모리와 잃어버린 청년들
5장.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 — 낡은 창고에서 시작된 실험
6장. 회복 프로그램 — 문 밖 프로젝트와 손과 손
7장. 통계가 말하는 것 — 교회 없는 세대의 신앙
3부: 대안 — Show에서 Story로
8장. 브랜드 신앙의 해부 — 박진혁의 윤리와 그 함정
9장. Show에서 Story로 — 예배의 본질을 되묻다
10장. 소비자에서 수행자로 — 참여적 신앙의 실험
11장. 회복축제 — 인천 부두에서 열린 축제
12장. 답을 주는 교회에서 함께 걷는 교회로
에필로그 — 2035년 가을
작가의 노트
부록 — 대안 공동체 교회를 위한 12가지 실천 지침
회복축제
Festival of Recovery
— 빛의 포식자 후속작 —
— 이 소설의 모든 인물·단체·사건은 순전한 허구입니다.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를 포함한 모든 교회명과 기관명은 창작된 것이며, 실존 단체와 무관합니다. 예수선교단, 온무리교회 등이 거론되는 경우는 역사적·사회적 현상의 서술을 위한 것이며, 특정 인물이나 현재 활동에 대한 평가가 아닙니다. —

프롤로그: 2035년 봄, 인천 부두

바람이 차가웠다.
한지수는 인천 내항 부두에 서서 회색 바다를 바라봤다. 손에는 커피잔 대신 녹음기가 들려 있었다. 옆에는 이나연이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기 보여요?" 이나연이 손을 들어 부두 한쪽을 가리켰다. "저 창고 건물이요."
녹슨 빨간 지붕의 낡은 창고. 1970년대에 지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창고 벽에 흰 페인트로 쓰인 문장이 있었다.
'여기, 오래된 것들이 새로워집니다.'
한지수가 카메라를 들었다.
"저게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예요." 이나연이 말했다. "제가 지금 다니는 교회요."
6개월 전 이나연은 첫 번째 다큐멘터리 방영 후 대학원에 들어갔다. 사회복지학과. 그러면서 조용히 교회를 찾아다녔다. 크지 않은 곳을 찾았다. 화려하지 않은 곳을. 그리고 어느 일요일 오전, 친구의 소개로 인천 부두 옆 낡은 창고 교회를 처음 방문했다.
"처음 들어갔을 때 어땠어요?" 한지수가 물었다.
이나연이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조심스럽고 어두운 웃음이 아니었다.
"무대가 없었어요. PA 시스템도 없었고요. 의자가 다 다른 종류였어요. 접이식 의자, 나무 의자, 심지어 박스 위에 방석 올린 것도 있었고. 그런데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진짜 서로 알고 있었어요. 이름이 아니라 사람을 알고 있었어요."
한지수는 창고를 바라봤다.
두 번째 다큐멘터리가 시작되고 있었다.
첫 번째는 포식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단이 어떻게 작동하고, 왜 사람들이 끌려가고, 어떤 상처가 남는지.
두 번째는 다른 이야기였다. 무너진 것들이 어떻게 다시 세워지는지. 잃어버린 것들을 어떻게 되찾는지. 그리고 회복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제목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회복축제》.
이 이야기는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에서 시작된다.

1부
진단 — 교회가 잃어버린 것들


1장. 무너진 문들 — 교회가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다큐멘터리 《빛의 포식자》가 방영된 지 6개월이 지났다.
한지수는 그 6개월 동안 두 가지를 경험했다. 하나는 예상했던 것이었고, 하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예상했던 것: 법적 공방. JBK 측의 명예훼손 소송 예고. 광고 손실. 온라인 공격.
예상하지 못했던 것: 교회들의 반응이었다.
방영 다음 날부터 전국 교회 목사들의 연락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교회 청년부도 비슷한 문제가 있어요." "이단 탈퇴자를 받아줄 준비가 안 돼 있어요."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지수는 그 연락들을 분류하면서 한 가지 패턴을 발견했다.
교회들은 문제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해결책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문제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지수는 두 번째 다큐멘터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진단부터 하기로 했다.
종교사회학자 정서영 교수와 이단 연구자 박태준 목사, 그리고 두 명의 목회사회학 전문가를 만나 '한국 교회가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비판적 사고 능력.
2034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 신도 중 자신의 교회 교리를 성경 원문이나 타 교단과 비교해 검증해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8.3%에 불과했다. 92%는 담임 목사의 해석을 그대로 수용한다고 답했다.
이것이 이단이 자라는 첫 번째 조건이다.
둘째, 진정한 공동체성.
2033년 목회데이터연구소 조사. 한국 개신교 신도가 교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냐는 질문에, 평균 2.1명이라고 답했다. 출석 교인이 500명 이상인 대형 교회의 경우 그 숫자는 1.3명으로 떨어졌다.
2만 명이 모이는 예배당에서 자신을 아는 사람이 한 명. 이것이 고독이다. 그 고독이 이단의 두 번째 조건이다.
셋째, 재정 투명성.
한국 종교 단체는 세금 면세를 받으면서도 재정 공시 의무가 없다. 2033년 기준 연 헌금 수입 10억 원 이상의 교회 중 자발적으로 재정을 공시하는 교회는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나머지 88%는 헌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교인들이 알 수 없다.
이것이 착취가 자라는 세 번째 조건이다.
넷째, 세대간 언어.
2034년 25세에서 35세 한국인의 교회 출석률은 9.2%. 2010년의 23.5%에서 반 이상이 떨어졌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1위는 '설교가 현실과 무관하다'(41%), 2위는 '공동체가 가식적이다'(33%), 3위는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다'(18%)였다.
이것이 교회의 노화다.
다섯째, 회복 인프라.
이단 탈퇴자, 종교적 트라우마 경험자,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전문 상담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전국 이단 피해자 상담 전문기관은 10개 미만. 전문 상담사는 50명 이하로 추산된다.
이 다섯 개의 구멍. 이것이 《빛의 포식자》에서 제기된 문제의 핵심이었다.
《회복축제》는 이 다섯 개의 구멍을 메우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지수는 먼저 한국 교회가 어떻게 이 상태에 이르게 됐는지를 이해해야 했다.
거기서 출발점은 하나였다.
1980년대. 예수전도단과 온누리교회.
그리고 찬양이라는 이름의 혁명.
✦  ✦  ✦

2장. 찬양 혁명 — 예수전도단과 온누리교회가 바꾼 것들


1980년대 한국 교회는 정체돼 있었다.
찬송가 21장. 기도. 설교. 헌금. 찬송가 다시. 광고. 폐회. 이것이 수십 년간 반복된 주일예배의 형식이었다. 장로님들은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았다. 같은 양복을 입고, 같은 표정으로. 새벽 기도회의 기도 소리는 뜨거웠지만, 그 열기가 교회 건물 밖으로 나오는 법은 드물었다.
그 정체된 공간에 하나의 파도가 밀려들었다.
예수선교단은 국제 청년 선교 단체 JYAM 한국 지부로, 1970년대 말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새로운 예배 형식이었다. 기타 반주. 현대적 리듬. 그리고 무엇보다, 찬양하는 동안 손을 들어도 되는 문화.
당시 장로교 예배당에서 손을 드는 것은 거의 불경스러운 행위로 여겨졌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두 손을 들고 눈을 감고 찬양하는 장면은, 마치 금지된 것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 감각적이고, 자유롭고, 살아있었다.
1990년대 온무리교회가 그 파도를 제도화했다.
박용주 목사가 이끈 온무리교회는 현대적 예배의 교과서가 됐다. 밴드 편성. 전문 예배팀. 미디어 활용. 연예인 간증. 그리고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설교. 온무리교회는 1990년대와 2000년대를 통해 한국 개신교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교회 중 하나가 됐다.
한지수는 그 역사를 정서영 교수와 함께 정리했다.
"예수선교단과 온무리교회가 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그녀가 물었다.
"포장을 바꾼 거예요." 정서영이 말했다. "아니, 더 공정하게 말하면, 언어를 바꾼 거예요. 수십 년간 장로교 전통 안에 갇혀있던 예배가 청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번역됐어요. 그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었어요. 그 시대의 청년들에게 복음이 '살아있는 것'으로 느껴지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런데 무언가를 잃었다는 건가요?"
교수가 잠시 생각했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을 같이 봐야 해요. 얻은 것: 청년들의 유입. 감성적 예배 체험. 공동체적 열정. 선교에 대한 동기.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교회의 성장은 이 두 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어요."
"잃은 것은요?"
"깊이요." 그가 말했다. "감각적 예배가 지속적으로 자극을 공급해야 하는 구조를 만들었어요. 한 번 콘서트 수준의 예배를 경험한 청년은 그보다 덜한 예배에서 만족을 못 느껴요.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강렬한 것을 찾게 되죠. 이것이 예배의 인플레이션이에요."
예배의 인플레이션. 한지수는 그 단어를 노트에 적었다.
1990년대 소그룹 모임에서 기타 반주로 부르던 찬양이 2000년대에는 전문 밴드가 됐다. 2010년대에는 전국 투어를 다니는 찬양 사역팀이 됐다. 2020년대에는 유튜브 수십만 구독자를 가진 찬양 유튜버가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배는 점점 '공연 관람'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찬양 사역의 상업화였다.
2030년대 초 '크리스천 엔터테인먼트'라는 산업이 한국에 자리를 잡았다. 찬양 앨범, 예배 콘서트 티켓, 크리스천 자기계발서, 유명 목사의 강의 영상 구독 서비스. 이 모든 것이 산업이 됐다. 그리고 그 산업의 논리는 교회 안으로 침투했다.
교회가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것인가'를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를 묻기 시작했다. 마케팅 용어가 교회 회의실에 등장했다. '타겟층', '콘텐츠', '바이럴', '인게이지먼트'.
예배가 콘텐츠가 됐다. 설교가 콘텐츠가 됐다. 목사가 인플루언서가 됐다.
전 온무리교회 예배팀 리더였던 최서연(32세)은 한지수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예배팀에서 10년을 보냈어요. 처음에는 진짜 예배가 하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제 자신이 '콘텐츠 제작자'가 된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예배 전날 세트리스트를 짜면서 '이 곡이 오늘 정서적으로 어떤 흐름을 만들어낼까'를 계산하고 있는 거예요. 마치 콘서트 프로듀서처럼. 그게 잘못된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 계산이 점점 예배의 중심이 되면서, 저는 언제부터인가 예배 중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어요."
최서연은 2년 전 예배팀을 떠났다. 번아웃이었다.
"예배 공연을 준비하는 것과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다른 거예요. 저는 10년 동안 전자만 했어요. 후자를 어떻게 하는지 잊어버렸어요."
그녀가 찾아간 곳이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였다.
✦  ✦  ✦

3장. 카리스마 경제학 — 더 화려한 것이 더 옳은 것처럼 보일 때


2033년 통계 하나가 한지수의 눈길을 끌었다.
한국 개신교 유튜브 채널 구독자 상위 20개를 분석한 연구였다. 그 20개 채널 중 18개가 카리스마적 설교자 개인 채널이었다. 나머지 2개는 대형 교단 공식 채널이었다. 개인 목사 채널의 평균 구독자는 87만 명. 교단 채널의 평균 구독자는 12만 명.
이것이 의미하는 것: 한국 기독교 콘텐츠 소비의 90% 이상이 개인 카리스마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예수선교단 출신으로 현재 독립 교회 사역자인 정아론(38세)은 이 통계를 "예배의 아이돌화"라고 불렀다.
"K-pop이 아이돌 시스템을 만들었듯이, 한국 교회도 목사 아이돌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소비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목사의 콘텐츠를 구독하고, 팬덤을 형성하고, 굿즈를 사요. 아, 굿즈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유명 목사 이름이 박힌 책, 성구 노트, 텀블러가 팔려요. 그게 현실이에요."
한지수가 물었다. "그게 나쁜 건가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에요." 정아론이 말했다. "문제는, 그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구조예요. 아이돌은 팬덤을 위해 존재해요. 팬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해요. 계속 더 좋은 콘텐츠를, 더 감동적인 무대를, 더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목사가 그 압박 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목사도 공연자가 되는 거죠."
"맞아요.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청중이 그걸 원한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는 목사, 항상 명확한 답을 주는 목사, 화려한 언변을 가진 목사를 원해요. '나도 모르겠다', '나도 힘들다'고 말하는 목사는 신뢰를 잃어요."
카리스마 경제학. 이것은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지수는 박진혁의 성경 강의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겼는지 다시 생각했다.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흔들리지 않았다. 항상 명확한 답이 있었다. 복잡한 삶의 문제를 2시간 강의로 정리해줬다.
그 확신이 매력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2시간 강의로 정리되지 않는다.
예수선교단이 한국에 도입한 현대적 예배 형식은 분명 새로운 문을 열었다. 온무리교회가 실험한 미디어 목회는 수많은 청년들을 교회로 인도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문으로 들어온 청년들이 결국 어디로 갔는가.
2020년대 초반의 한국 개신교 청년층 이탈 통계는 처참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2032년 조사: 20대 개신교 신자 중 '지난 1년 동안 교회를 출석하지 않은 적이 한 달 이상 있었다'는 응답이 67%. 그중 '앞으로 교회를 떠날 것 같다'는 응답이 44%.
왜 떠나는가?
1위: "신앙과 삶이 연결되지 않는다" (38%)
2위: "교회 공동체가 위선적이다" (29%)
3위: "질문하면 이단 취급을 받는다" (17%)
4위: "예배가 공허하다" (11%)
5위: "재정이 불투명하다" (5%)
흥미로운 것은 '예배가 지루하다'는 항목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예배는 충분히 화려했다. 그런데 공허했다.
정아론이 그 간극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배가 공연이 되면, 그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은 집으로 돌아가요. 공연 관람이 삶을 바꾸지는 않아요. 그런데 교회는 그 사람들의 삶이 바뀌기를 기대했어요. 왜 안 바뀌냐고 실망했고요. 그런데 시스템 자체가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 구조였어요."
한지수는 그 분석을 들으면서 첫 번째 다큐멘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렸다.
이나연이 진리의 빛 교회에 들어간 건 기존 교회에서 공허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매주 예배를 가는데 뭔가 변하는 게 없고, 살아있지 않다는 느낌. 그 공허함이 박진혁이라는 포식자에게 들어가는 문이 됐다.
포식자는 교회의 공허함을 먹고 자랐다.
그렇다면 교회의 공허함은 어디서 왔는가.
그 답의 일부가 찬양 혁명의 역설 속에 있었다.
문을 여는 것과 집을 짓는 것은 다르다. 예수선교단과 온무리교회는 훌륭한 문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문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집은 충분히 짓지 못했다.
그리고 2030년대에 이르러, 그 집의 부재가 청년들의 이탈로 나타나고 있었다.
최서연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온무리교회에서 10년을 보냈어요. 정말 많이 배우고, 많이 성장했어요. 그 교회가 제 신앙의 기초를 만들어줬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예배를 만드는 사람'이 됐지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 교회에서는 그 차이를 말할 공간이 없었어요. 그냥 더 열심히 하면 됐어요. 더 좋은 예배를 만들면 됐어요."
그녀가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PCK 허브 처치에 처음 갔을 때, 담임 강민준 목사님이 예배 시작 전에 이런 말을 했어요. '오늘 예배가 별로일 수 있어요. 저도 피곤해요. 그냥 같이 있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울었어요. 솔직한 말을 들은 게 얼마 만인지."
✦  ✦  ✦

2부
사람들 — 생산에서 소외된 자들


4장. 히키코모리와 잃어버린 청년들 — 인터넷 뒤에 숨은 세대


유하늘(27세)은 3년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인천 남동구의 반지하 원룸. 창문은 항상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었다. 낮과 밤이 바뀌어 있었다. 새벽 네 시에 라면을 끓이고, 오후 두 시에 잠들었다. 하루 평균 인터넷 사용 시간은 열여섯 시간이었다.
그가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된 건 스물넷 때였다. 대학 졸업 후 두 번의 취업 실패. 첫 직장에서 여섯 달 만에 해고. 그 이후로 세상이 닫혔다.
한국어로는 '은둔형 외톨이'라고 부른다. 일본어로는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 사회적 관계를 끊고 집에 칩거하는 상태. 2034년 국내 추정 인원은 61만 명. 그 중 20~30대가 68%를 차지했다.
히키코모리는 단순한 게으름이나 도피가 아니다. 사회적 실패와 수치심, 그리고 그 수치심이 만들어내는 자기 격리. '내가 사람들 앞에 나타나면 폐가 된다'는 깊은 믿음.
유하늘이 처음 인터넷에서 박진혁의 강의를 만난 것은 은둔 2년째였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줬어요." 그가 PCK 허브 처치 소모임에서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꺼냈을 때 말했다. "처음에는 그냥 심심해서 봤어요. 그런데 그 강의가 저한테 직접 말하는 것 같았어요. '당신이 실패한 건 당신의 믿음이 가짜여서예요.'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어요. 제가 실패한 이유가 있다는 거잖아요. 이유 없이 실패한 게 아니라는 거잖아요."
이 역설이 한지수를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들었다.
'당신이 구원받지 못했다'는 말이 왜 위로가 됐을까.
정서영 교수의 분석은 이랬다.
"인간은 자기 고통에 이유가 있기를 원해요. 이유 없는 고통은 더 견디기 어려워요. '당신의 믿음이 부족해서'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해결책이 있다'는 뜻이에요. 믿음을 키우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죠. 그게 희망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하지만 그 희망이 또 다른 함정으로 이어졌다. 유하늘은 진리의 빛 교회 강의를 하루 4~5편씩 봤다. 목장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히키코모리에게 온라인 공동체는 완벽한 형태였다. 나가지 않아도 됐다. 카메라를 꺼도 됐다.
그런데 석 달이 지나자 그 온라인 목장이 그의 유일한 사회가 됐다.
"그 사람들이 저를 돌봐주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돌아보면 그들이 돌봐준 게 아니라 저를 붙잡아 두고 있었던 거예요. 돌봄과 통제는 처음에 구별이 안 돼요."
유하늘은 어머니의 개입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머니가 그 모임의 대화 기록을 보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그 위기에서 유하늘은 처음으로 외부와 연결됐다.
하지만 빠져나온 뒤에도 그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빠져나오면 더 좋아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더 심해졌어요. 그 공동체에서 나온다는 건 제 유일한 사회에서 나온다는 거였거든요."
그가 PCK 허브 처치를 알게 된 것은 이나연을 통해서였다. 이나연은 대학원 과제로 히키코모리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연구하다가 PCK 허브 처치의 '문 밖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 그리고 유하늘에게 연락했다.
"처음에 나오기 싫었어요." 유하늘이 말했다. "그런데 이나연 씨가 '강요 안 해요, 그냥 한 번만 와서 밥만 먹어요'라고 했어요."
밥만 먹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한국에서 히키코모리를 비롯한 사회적 고립 청년의 문제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2034년 기준 20~30대 중 '지난 6개월간 교회, 학교, 직장 외에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38%. 10년 전(2024년)의 21%에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인터넷은 이 고독을 채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심화시킨다. 온라인 관계는 언제든 끊을 수 있는 얕은 연결이다. 그 얕음이 쌓이면서 진짜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무능이 커진다.
그리고 그 취약성이 박진혁 같은 카리스마적 온라인 공동체에 가장 쉽게 포획된다.
히키코모리를 어떻게 교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것이 《회복축제》의 핵심 질문 중 하나였다.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의 '문 밖 프로젝트'는 그 답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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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 — 낡은 창고에서 시작된 실험


강민준 목사는 40대 초반이었다.
그는 키가 작고 말이 느렸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 이 분이 목사님이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화려한 언변이 없었다. 잘 정리된 설교 포인트가 없었다. 가끔 설교 도중에 "아, 제가 지금 하려던 말이 뭐였지"라고 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이나연, 최서연, 유하늘, 박재현 부부가 모였다.
한지수는 강민준 목사를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물었다.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강 목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실패에서요."
그는 원래 서울 강남의 대형 교회 부목사였다. 교인 5천 명. 예배당 최신 시설. 전문 예배팀. 청년부만 800명이었다. 그는 청년부를 맡아서 열심히 했다. 감각적인 예배를 준비했고, 유명 강사를 초청했고, SNS 마케팅을 했고,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3년 만에 청년부 숫자가 800명에서 600명으로 줄었다.
"저는 처음에 그게 제 실력 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더 노력해야 한다고요. 더 좋은 예배를 만들고, 더 강렬한 집회를 열고.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하다가 교회 청년이 버스에서 저를 못 본 척 하는 걸 봤어요."
한지수가 물었다. "왜 못 본 척했을까요?"
"나중에 그 청년한테 물어봤어요. 그가 말했어요. '목사님이 너무 바빠 보여서요. 말 걸면 죄송할 것 같아서요.'"
강민준이 잠시 말을 멈췄다.
"제가 800명을 섬기느라 한 사람을 잃고 있었어요. 그때 저는 제가 지금 하는 일이 '목회'가 아니라 '이벤트 운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는 3년 뒤 그 교회를 사임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인천으로 이사했다. 부두 옆의 낡은 창고를 월 60만 원에 빌렸다. 교인은 12명으로 시작했다.
"처음에 뭘 했나요?"
"청소를 했어요." 그가 웃었다. "창고 안에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거든요. 같이 치우면서 처음 두 달은 보냈어요. 예배보다 청소를 더 많이 했어요."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 이름에 '인터내셔널'이 들어간 이유가 있었다.
인천 부두 주변에는 이주 노동자들이 많이 살았다.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네팔, 나이지리아에서 온 사람들. 강민준은 그들과 교회를 같이 하기로 했다. 예배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진행됐다. 때로는 통역이 들어갔다. 예배 후 밥을 같이 먹었다.
'허브'는 중심축이라는 뜻이었다. 거대한 허브 공항처럼,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잠시 머무르다 가는 곳. 정착해도 되고, 잠깐 쉬어도 되고, 지나가도 되는 곳.
"정착이 목표가 아닌 교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강민준이 말했다. "모든 교회는 '더 많은 교인이 오래 다니는 것'을 목표로 해요. 그런데 저는 다르게 생각했어요. 여기에 온 사람들이 여기서 잠깐 쉬고, 회복되고, 그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게 더 좋은 거 아닐까."
한지수가 그 말을 듣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는 교회. 그것이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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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회복 프로그램 — 문 밖 프로젝트와 손과 손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에는 세 가지 프로그램이 있었다.
첫째, 문 밖 프로젝트(Door-Out Project).
히키코모리, 사회적 고립 청년, 이단 탈퇴자를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원칙은 세 가지였다. 강요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먼저 밥을 먹는다.
매주 목요일 저녁 일곱 시. 창고 한쪽에 접이식 테이블을 펼쳐놓고 밥을 차렸다. 처음에는 강민준 목사 부부가 직접 요리했다. 나중에는 돌아가면서 했다. 요리를 모르는 사람은 재료를 사왔다. 재료도 없는 사람은 그냥 와서 앉아 있으면 됐다.
유하늘이 처음 온 날, 그는 구석 자리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냥 밥이 나왔다. 먹었다. 그게 끝이었다. 두 번째 주에도 왔다. 세 번째 주에는 먼저 "뭐 도울까요?"라고 물었다. 그 말을 내뱉기까지 2주가 걸린 것이었다.
강민준 목사는 그 프로젝트의 원칙을 이렇게 설명했다.
"히키코모리 청년들은 관계에 두 가지 공포가 있어요. 첫 번째, 내가 폐가 된다는 공포. 두 번째, 내가 뭔가를 요구받는다는 공포. 우리는 그 두 가지를 처음부터 없애려고 해요. 폐가 돼도 되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공간. 그게 먼저예요."
"그다음은요?"
"그다음은 없어요. 그 공간이 안전하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되면, 사람은 알아서 나오기 시작해요."
둘째, 손과 손(Hand to Hand).
경제적으로 취약한 청년들을 위한 직업 연계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진리의 빛 교회처럼 그것을 통제의 수단으로 쓰지 않기 위한 원칙이 있었다.
첫째 원칙: 직업 연계는 교인에게만 하지 않는다.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둘째 원칙: 직장과 신앙을 연결하지 않는다. '교회 네트워크로 취직시켜준 사람을 교회에 묶어두는 구조'를 만들지 않는다. 취직 후 그 사람이 교회를 떠나더라도 괜찮다.
셋째 원칙: 모든 연계는 투명하게 공개된다. 어떤 기업과 연계했는지, 몇 명이 취직했는지, 어떤 피드백이 왔는지를 교회 게시판에 공개했다.
이 원칙들은 표면적으로 교회 성장에 불리했다.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도 돕고, 나가도 괜찮다고 하고. 그런데 강민준은 그것이 장기적으로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든다고 믿었다.
"이단 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은 뭔가를 주면 반드시 돌려받는 구조예요. 주는 행위가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가 의존성을 만들고, 그 의존성이 통제로 이어져요. 우리는 주는 행위가 그냥 주는 것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받는 사람이 아무것도 돌려줄 필요가 없는 것. 그게 복음이 말하는 은혜아닌가요."
셋째, 투명 장부 예배(Open Book Worship).
재정 투명성 프로그램이었다. 매달 마지막 주 예배에서 5분간 그달의 수입과 지출을 모두 공개했다. 헌금 총액, 임대료, 식재료비, 프로그램 운영비, 강민준 목사 사례비까지 모두 공개했다.
처음에 교인 중 일부는 이게 불편하다고 했다. 목사 월급을 다 알게 되는 게 이상하다고.
강민준은 이렇게 말했다. "이상한 게 맞아요. 우리가 그동안 왜 재정을 숨겨왔는지를 생각해봐야 해요. 숨길 것이 없으면 숨길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숨기지 않으면 신뢰가 생겨요."
그 신뢰가 공동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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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통계가 말하는 것 — 교회 없는 세대의 신앙


한지수는 두 번째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한국 교회의 현황을 보여주는 통계들을 수집했다.
그 통계들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한국 기독교 인구 추이를 보면, 2005년 전체 인구의 18.3%였던 개신교 인구가 2024년 17.7%, 2034년에는 14.2%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천주교는 10.9%에서 11.3%로 소폭 증가했고, 불교는 22.8%에서 15.3%로 큰 폭으로 감소했다. 무종교 인구는 46.5%에서 57.1%로 늘었다.
기독교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그러나 한국의 감소 속도는 유독 빨랐다. 왜인가.
목회데이터연구소가 2034년 발표한 '가나안 성도 연구'가 힌트를 줬다. '가나안 성도'는 '교회에 안 나가는 신자'를 뜻하는 표현이다. 교회를 그리워하면서도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
2034년 추정 가나안 성도 규모는 약 230만 명. 전체 개신교 신자(약 730만 명)의 31%였다.
그들은 왜 교회를 떠났는가.
1위: 목회자 또는 교인과의 관계 상처 (41%)
2위: 교회 공동체의 가식과 위선 (34%)
3위: 교리에 대한 의문 (12%)
4위: 이단 또는 비건강 교회 경험 (8%)
5위: 기타 (5%)
주목할 것은 3위였다. 교리 의문 때문에 떠나는 사람은 12%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사람들' 때문에 떠났다. 교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관계가 문제였다. 공동체가 문제였다.
가나안 성도들이 바라는 것:
1위: '상처 없는 공동체' (52%)
2위: '재정이 투명한 교회' (38%)
3위: '질문할 수 있는 교회' (35%)
4위: '삶과 연결된 설교' (31%)
5위: '지역사회를 돕는 교회' (28%)
이 목록은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가 하려는 것들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하지만 한지수는 낙관하지 않았다.
230만 가나안 성도 중 실제로 '대안 교회'를 찾아 이동한 사람은 추정 7만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223만 명은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혹은 이미 신앙을 포기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
새로운 청년들의 진입이 막혀 있었다.
2034년 한국의 20대 중 기독교 신자임을 밝히는 비율은 7.8%에 불과했다. 20년 전(2014년)의 19.4%에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이 세대에게 교회는 처음부터 선택지가 아니었다.
반면 이 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2034년 20대 청년 대상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 조사:
1위: 친밀한 관계 (44%)
2위: 창의적 활동 (23%)
3위: 사회적 기여 (18%)
4위: 영적 경험 (9%)
5위: 기타 (6%)
20대의 44%가 가장 원하는 것은 '친밀한 관계'였다. 그런데 교회가 주지 못하고 있는 것 1위가 그것이었다.
이 간극을 메우는 것. 그것이 PCK 허브 처치 같은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통계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현실.
더 화려한 엔터테인먼트와 카리스마적 강연자를 가진 집단에 청년들이 끌린다는 것.
유튜브 알고리즘은 더 자극적인 것을 추천한다. SNS는 더 완벽해 보이는 것을 부각시킨다. 그 환경 속에서 '작고 낡은 창고 교회'는 알고리즘에 걸리지 않는다. 박진혁의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50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데, PCK 허브 처치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2,400명이었다.
강민준 목사는 그 격차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유튜브 구독자 2,400명이요." 그가 웃었다. "그 중에 한 명이 유하늘이에요. 그 한 명이 지금 일주일에 한 번 문 밖 프로젝트에 나와서 밥을 같이 먹고 있어요. 저는 그 한 명이 50만 명보다 중요해요."
정서영 교수는 이 현실의 긴장을 이렇게 정리했다.
"교회의 역할 중 하나는 도달범위(reach)예요. 많은 사람에게 닿는 것. 하지만 다른 하나는 깊이(depth)예요. 닿은 사람들과 진짜 관계를 맺는 것. 엔터테인먼트 교회는 도달범위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깊이를 잃었어요. PCK 허브 처치 같은 교회는 깊이를 선택했지만 도달범위가 작아요. 이 둘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가가 과제예요."
그 과제의 답을 강민준은 '회복축제'라는 이름의 행사로 실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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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대안 — Show에서 Story로


8장. 브랜드 신앙의 해부 — 박진혁의 윤리와 그 함정


한지수는 박진혁에 대한 취재를 완전히 끝낸 것이 아니었다.
첫 번째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후에도 그의 행보는 계속됐다. 유튜브 채널 '첫열매들' 구독자 51만 명. 진리의 빛 교회는 일부 지부가 흔들렸지만 본부는 건재했다. 박진혁의 LA 세미나 일정이 다시 공고됐다.
그런데 한지수가 주목한 것은 다른 측면이었다.
박진혁의 개인 생활 방식이었다.
그는 20년째 채식주의자였다. 하루 수면이 정확히 7시간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1시간 명상을 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소셜 미디어를 직접 운영하지 않았다. 돈에 대한 욕심을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겉으로는.
이 생활 방식이 그의 신앙 메시지에 강력한 '신뢰 자산'을 부여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저렇게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겠느냐." "성공한 사람이 자기 욕망을 절제하면서까지 성경을 공부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한지수가 정서영 교수에게 물었다. "이 신뢰 자산이 왜 위험한가요? 실제로 절제된 삶을 사는 거잖아요."
"절제와 진리는 다른 거예요." 교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역사 속 수많은 카리스마 지도자들이 절제된 삶을 살았어요. 그 절제가 그들의 메시지가 옳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아요. 스스로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사람이 타인을 통제하는 데도 엄격할 수 있어요. 그 방향이 문제죠."
박태준 목사는 더 직접적으로 말했다.
"구원파 권신찬도 초기에는 매우 절제된 삶을 살았어요. JMS 정명석도 초기에는 이례적으로 성실하고 헌신적인 사역자로 알려졌어요.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초기 절제는 추종자들에게 '이 사람은 다르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기능을 해요. 그 믿음이 이후 통제 구조를 허락하는 심리적 기반이 됩니다."
하지만 한지수는 더 복잡한 질문 앞에 멈췄다.
박진혁의 도덕적 삶이 완전히 '전략'인가. 아니면 그가 진심으로 그렇게 사는가.
전 JBK 이사는 말했다. "그 사람은 젊어서부터 그랬어요. 성공한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게 진정성이 있다는 거예요. 문제는 그 진정성이 이제 특정 교리를 지지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거예요."
진정성과 교리의 옳음은 다른 것이다.
이것이 박진혁 현상이 가진 가장 치명적인 매력이자 가장 큰 함정이었다.
'이 사람은 진짜다'라는 느낌이 '이 사람의 말이 진리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논리적 비약. 그 비약이 인간의 마음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에 막기가 어렵다.
강민준 목사는 그 함정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절제된 삶을 살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치킨 좋아하고, 잠도 많이 자고, 게으른 날도 있어요. 제 교인들이 그걸 알아요. 저를 보고 '아, 저분은 정말 완전한 분이구나' 이런 생각을 못 해요."
한지수가 웃었다. "그게 강점인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도자가 불완전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요. 왜냐면 신앙은 완전한 지도자를 따라가는 게 아니거든요. 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같이 더 나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거예요. 완전해 보이는 지도자 뒤에 줄 서는 순간, 그건 신앙이 아니라 의존이 돼요."
그 불완전함의 투명성. 그것이 PCK 허브 처치를 이단 공동체와 가장 근본적으로 다르게 만드는 특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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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Show에서 Story로 — 예배의 본질을 되묻다


최서연이 PCK 허브 처치의 예배팀에 합류한 것은 교회에 나온 지 두 달이 지나서였다.
"예배 어떻게 드려요?" 그녀가 강민준 목사에게 물었다.
"그냥 드려요." 그가 답했다.
"기타 있어요?"
"저 기타 못 쳐요."
"피아노는요?"
"한 명이 연주하는데, 주일마다 달라요."
최서연은 그 첫 예배를 보고 처음에는 당황했다. PA 시스템이 없어서 목소리가 그대로 울렸다. 찬양이 크지도 않았다. 누군가 박자를 놓쳤고, 그냥 그대로 계속했다. 강민준 목사가 설교 중에 "아 이 부분 준비가 부족했는데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 예배가 끝나고 나서 최서연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공허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10년 동안 전문적으로 준비된 예배를 드렸지만, 예배가 끝나고 나서 항상 공허함이 있었다. 그 공허함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PCK 허브 처치의 '어설픈' 예배 후에 그 공허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달았다.
"전문적인 예배는 저를 관객으로 만들었어요. 저는 예배 준비를 했지만 예배를 드리지 못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저도 그냥 사람이에요. 불완전한 사람으로 거기 있는 거예요. 그게 달랐어요."
예수전도단이 가져온 현대적 찬양 예배의 원래 의도는 분명 좋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진정성 있게 예배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그 형식이 제도화되고 전문화되는 과정에서, 예배가 관람 대상이 됐다.
정아론은 예수전도단에서 오랫동안 사역했다. 그는 그 변화를 내부에서 목격했다.
"1990년대 예수전도단의 예배는 정말 날 것이었어요. 기타 하나에 수십 명이 둘러앉아서 찬양하는 거.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예배가 점점 커졌어요. 더 많은 사람을, 더 큰 장소에서, 더 완벽한 사운드로. 그게 나쁜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예배를 만드는 것'이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해졌어요."
"그 시점이 언제였나요?"
"처음으로 예배 앞에 무대 조명이 들어온 날이에요." 정아론이 말했다. "그날부터 예배자와 관객이 구별됐어요. 조명 받는 사람이 예배를 인도하고, 조명 없는 사람들이 예배를 보는 구조."
그는 현재 독립적으로 작은 찬양 공동체를 이끌고 있었다. 참여자가 30명이었다. 조명이 없었다. 모든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불렀다.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었다.
"처음에 온 사람들이 당황해요. 여기는 보는 게 아니고 하는 거라서요."
'Show에서 Story로.' 이것이 한지수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의 핵심 명제가 됐다.
엔터테인먼트적 예배는 감각에 호소한다. 그러나 그 감각은 휘발성이 강하다. 자극에 익숙해지면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그 과정에서 신앙이 서비스 소비와 구별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Story)는 다르다. 자신의 이야기, 공동체의 이야기, 성경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의미가 생긴다. 그 의미는 감각적 자극보다 훨씬 오래 지속된다.
PCK 허브 처치의 예배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매달 마지막 주의 '이야기 예배'였다.
설교 대신 교인 한 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10분. 규칙은 없었다. 힘들었던 것, 기뻤던 것,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 어떤 주에는 이주 노동자 라심이 고향을 떠나온 이야기를 했다. 어떤 주에는 이나연이 이단 공동체에서 나온 뒤 회복하고 있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어떤 주에는 유하늘이 3년간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들 앞에서 사람들은 울었다. 웃었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야기 예배가 가장 힘든 예배예요." 강민준이 말했다. "왜냐면 제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요. 저는 그냥 듣는 사람이에요. 그게 사실 제일 어려운 일이에요. 목사는 항상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거든요. 그냥 듣는 게 가장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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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소비자에서 수행자로 — 참여적 신앙의 실험


PCK 허브 처치 주변에는 세 곳의 기관이 있었다.
인천 남동구 복지관. 부두 인근 이주 노동자 쉼터. 그리고 인천 연수구의 청년 자살 예방 센터.
강민준 목사는 교회 설립 초기부터 이 세 곳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교인들은 선택적으로 이 세 곳 중 하나에서 주 1회 봉사를 했다. 강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교인의 78%가 그 중 하나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것을 박태준 목사는 '수행자 모델'이라고 불렀다.
"현대 교회의 가장 큰 실패 중 하나는 교인을 소비자로 만든 거예요. 좋은 설교를 듣고, 좋은 예배를 경험하고, 좋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소비자. 그 소비자들이 삶이 힘들어지거나 더 좋은 콘텐츠를 파는 교회가 나타나면 이동해요. 충성도가 없어요. 왜냐면 소비자에게 충성도는 없거든요."
"수행자는 다른가요?"
"다르죠. 수행자는 자기 손으로 뭔가를 한 사람이에요. 자기가 직접 라심 씨 밥을 차려준 사람, 유하늘과 함께 앉아서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은 사람, 청년 자살 예방 센터에서 전화를 받은 사람. 그 경험은 소비로 대체되지 않아요. 그건 내 이야기가 돼 버리거든요."
최서연은 이주 노동자 쉼터에서 주 1회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필리핀에서 온 마리아가 그녀에게 타갈로그어로 쓴 쪽지를 줬다. 번역해보니 "선생님 덕분에 한국이 덜 외롭습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그 쪽지를 받은 날이 제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에요." 최서연이 말했다. "10년 동안 예배를 드렸는데, 그 쪽지 하나가 그 10년보다 더 살아있었어요."
유하늘은 문 밖 프로젝트의 목요일 저녁 식사에서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그것이 6개월 뒤에는 그가 먼저 요리를 하게 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가 만든 부대찌개를 먹으면서 라심이 "한국 음식 처음 먹어봤는데 최고예요"라고 했다.
유하늘은 그날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오랜만이었다.
"뭔가 만들었는데 다음에 집에 가서 만들어 드려도 될까요?"
그 전화가 3년 단절됐던 관계의 문을 열었다.
한지수는 그 과정을 보면서, 진정한 회복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목격하고 있었다.
회복은 강렬한 감동적 집회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회복은 목요일 저녁에 누군가와 함께 부대찌개를 끓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회복은 타갈로그어 쪽지 하나에서 시작된다.
엔터테인먼트는 그 순간을 연출할 수 없다.
그것은 삶 속에서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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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회복축제 — 인천 부두에서 열린 축제


2035년 5월 15일. 목요일.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의 첫 번째 '회복축제'가 열렸다.
장소는 창고 앞 부두였다. 날씨는 흐렸다. 비가 올 것 같았다. 강민준 목사는 전날 밤 "비 와도 괜찮아요, 우산 가져오세요"라는 공지를 내보냈다.
참가자는 처음에 예상보다 적었다. 교인 47명에 초대를 받고 온 외부인 23명. 총 70명.
한지수는 카메라를 들고 그 자리에 있었다.
회복축제의 구성은 화려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단순했다.
오전 10시. 함께 청소.
부두 주변 쓰레기를 함께 줍는 것으로 시작했다. 70명이 비닐봉투를 들고 2시간 동안 쓰레기를 주웠다. 이주 노동자들도 함께였다. 라심이 네팔 친구를 데려왔다. 유하늘은 처음에 혼자 멀찍이서 줍다가 어느새 라심 옆에서 같이 줍고 있었다.
낮 12시. 같이 밥 먹기.
창고 앞에 테이블을 펼치고 점심을 먹었다. 이날 요리는 각자 하나씩 가져온 것들이었다. 라심의 달 바트(네팔 요리). 마리아의 시니강(필리핀 요리). 유하늘의 부대찌개. 최서연의 파스타. 강민준 목사 부인의 잡채.
그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조합이었다. 그런데 맛있었다.
오후 2시. 이야기 시간.
70명이 창고 안에 모였다. PA 시스템 없이, 마이크 하나로 진행됐다. 이날의 이야기 주제는 하나였다. '당신이 회복 중인 것.'
다섯 명이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이나연이었다.
"저는 2년 전에 이단 공동체에서 나왔어요. 그때 저는 저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였어요. 좋아하는 것도 모르고, 싫어하는 것도 몰랐어요. 지금은 대학원에 다니고, 가끔 여기 와서 밥을 먹어요. 아직 완전히 회복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회복 중이에요. 그게 제가 여기 있는 이유예요."
두 번째는 라심이었다. 통역이 필요했다. 강민준 목사가 직접 통역했다. 어설픈 영어와 한국어로 라심의 이야기가 전달됐다. 라심은 네팔 고르카 지진 이후 한국에 왔다. 고향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었다. "가끔 목요일 저녁에 여기 오면 외롭지 않아요. 그게 고마워요."
세 번째는 유하늘이었다.
그는 말을 시작하기 전에 한참 침묵했다. 70명이 그 침묵을 같이 기다렸다.
"저는 3년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짧은 문장이었다. 그 뒤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가 오늘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야기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박수가 났다. 박수라기보다는 손뼉 소리였다. 크지 않았다. 따뜻했다.
네 번째는 최서연이었다.
"저는 10년 동안 예배를 만들었어요. 이 자리에서 고백하면, 저는 그 10년 동안 예배를 한 번도 제대로 드린 적이 없었어요. 예배를 만드느라 바빴거든요. 지금 여기서는 예배를 드리고 있어요. 아직도 어색해요. 하지만 드리고 있어요."
다섯 번째는 박재현이었다.
그는 진리의 빛 교회에서 나온 뒤 PCK 허브 처치를 찾았다. 아내도 함께였다.
"저는 목장 리더였어요. 저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분들에게 직접 사과를 할 기회가 없었어요. 여기서 이렇게 말하는 게 그 사과의 시작이에요. 저는 여전히 회복 중이에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던 사람으로서요."
창고 안이 조용했다.
오후 4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를 맞으면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라심이 네팔 노래를 불렀다. 마리아가 따라 불렀다. 최서연이 기타를 들고 왔다. 어설픈 반주였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한지수는 카메라를 내렸다.
촬영보다 그냥 거기 있고 싶었다.
그날의 회복축제에는 조명이 없었다. 전문 사운드가 없었다. 완벽한 설교가 없었다. 감동적인 집회 분위기가 없었다.
그런데 한지수는 그 자리에서 뭔가를 봤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 강의로 설명되지 않는 것. 유튜브로 재생되지 않는 것.
살아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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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답을 주는 교회에서 함께 걷는 교회로


회복축제가 끝난 뒤 한 주가 지났다.
한지수는 강민준 목사의 사무실에서 긴 대화를 나눴다. 창고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공간. 책상 위에 성경 몇 권과 기도 노트. 컵라면 봉지 하나.
"강 목사님은 박진혁 씨와 무엇이 가장 다르다고 생각하세요?"
강민준이 잠시 생각했다.
"저는 답이 없어요." 그가 말했다. "박진혁 씨는 답이 있어요. 믿음1과 믿음2. 명확한 체계. 논리적 완결성. 그게 그분의 매력이에요. 사람들은 답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답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같이 걸어요." 그가 말했다. "저는 제 교인들에게 답을 줄 수 없어요. 취직 안 된다는 유하늘에게 '왜 취직이 안 되냐'는 답을 몰라요. 고향에 못 간다는 라심에게 '왜 못 가냐'는 답을 몰라요. 그냥 같이 있는 거예요."
"그게 충분한가요?"
강민준이 조용히 웃었다.
"충분하지 않아요. 그게 문제예요. 저도 알아요. 더 좋은 체계가 있으면 좋겠어요. 더 명확한 답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제가 없는 걸 있는 척할 수 없어요."
한지수는 그 솔직함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동하는 역설을 봤다.
박진혁의 확신은 의심을 허용하지 않았다. 의심이 생기면 '믿음이 없는 것'이 됐다. 그 구조가 이나연을 공동체 안에 묶어뒀다.
강민준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의심을 허용했다. "저도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목사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의심을 꺼낼 수 있었다.
그 의심이 공동체 안에서 나눠질 때, 그것이 신앙의 성장이 됐다.
정아론이 말했다.
"예수전도단에서 배운 것 중 하나가 '더블 홀딩'이에요. 확신과 의심을 동시에 붙잡는 것. 이게 선교 현장에서 매우 중요한 자세예요. 다른 문화권에 가면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흔들리거든요. 그 흔들림을 허용하면서도 중심을 붙잡는 것. 그게 성숙한 신앙이에요."
"그게 한국 교회에 없다는 건가요?"
"교회가 확신만 훈련시켰어요. 의심 다루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의심이 생기면 두 가지 선택밖에 없어요. 의심을 억누르고 계속 교회를 다니거나, 아니면 교회를 떠나거나. 중간이 없어요."
PCK 허브 처치는 그 중간을 만들려고 했다. 의심을 가져도 괜찮은 공간. 모르겠다고 말해도 되는 공간. 아직 회복 중이라고 말해도 되는 공간.
그것이 이 교회가 히키코모리 유하늘을, 이단 탈퇴자 이나연과 박재현을, 번아웃 예배팀 리더 최서연을 같은 공간에 모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한지수가 마지막 질문을 했다.
"교회가 이단보다 강해질 수 있을까요?"
강민준이 창밖 부두를 바라봤다.
"강해지는 게 목표가 아니에요." 그가 말했다. "이단은 강하려 해요. 더 많은 사람을, 더 강한 확신으로, 더 단단한 조직으로 묶으려 해요. 교회가 그것과 경쟁해서 이기려 하면 같은 게 돼버려요."
"그럼 뭐가 목표예요?"
"진짜가 되는 것이요." 그가 말했다. "가짜 빛은 진짜 빛보다 더 밝아 보여요. 하지만 가짜는 가짜예요. 진짜 공동체가 있으면, 사람들은 결국 구별할 수 있어요. 그걸 믿어요."
비가 창고 지붕을 두드렸다.
녹슨 빨간 지붕 위로 빗소리가 가득했다.
'여기, 오래된 것들이 새로워집니다.'
한지수는 그 글씨를 다시 바라봤다. 처음 봤을 때와 지금 봐을 때가 다르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구호처럼 보였다.
지금은 살아있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에필로그: 2035년 가을

다큐멘터리 《회복축제》는 2035년 10월에 방영됐다.
첫 번째 다큐멘터리와는 달랐다. 《빛의 포식자》는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분노, 논쟁, 법적 공방.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이야기했다.
《회복축제》는 조용했다. 처음 이틀은 거의 반응이 없었다. 한지수는 솔직히 실망했다.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이메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하늘처럼 3년 반 동안 방에 있었어요. 이 다큐 보고 처음으로 밖에 나갔어요."
"저 온무리교회 예배팀이에요. 최서연 씨 이야기를 보고 울었어요. 저도 똑같았어요."
"제 교회 목사님한테 이 다큐를 보여줬어요. 목사님이 다음 주 설교 주제를 바꾸셨어요."
"PCK 허브 처치 같은 교회를 우리 동네에 만들고 싶어요. 강민준 목사님 연락처 알 수 있나요?"
그리고 이 이메일.
"저는 지금 이단에서 빠져나오려고 해요. 무서워요. 도와줄 수 있나요?"
한지수는 그 마지막 이메일을 읽고 박태준 목사에게 전달했다. 박 목사는 즉시 답장을 보내줬다.
방영 두 달 뒤, 전국 7개 도시에서 'PCK 허브 처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는 목사들의 모임이 시작됐다. 그들은 강민준에게 연락했다. 강민준은 세 가지를 먼저 물었다.
"당신의 교회 재정은 공개되어 있나요?"
"당신의 교회에서 이단이라는 의심 없이 질문할 수 있나요?"
"당신의 교회에서 교인이 나가도 괜찮나요?"
세 가지 모두에 '예스'라고 답한 네 곳만 네트워크에 참여했다.
강민준은 네트워크의 이름을 '열린창고(Open Warehouse) 교회 연합'이라고 지었다.
이나연은 대학원 논문을 완성했다. 주제: '컬트 탈퇴 후 심리적 회복에 있어 대안 공동체의 역할 연구 —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 사례를 중심으로'. 그녀의 지도 교수는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투고하도록 권유했다.
유하늘은 인천의 한 소셜 벤처에 취직했다. 복지 소외 지역에 온라인 서비스를 연결하는 회사였다. 그의 3년간의 인터넷 의존 경험이 역설적으로 그 일에 도움이 됐다. "저처럼 인터넷 안에서 살아본 사람이 인터넷 밖으로 나오는 방법을 알아요"라고 그는 말했다.
박재현과 그의 아내는 PCK 허브 처치의 '이단 탈퇴자 지원팀'에서 함께 봉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특별한 무게가 있었다.
최서연은 PCK 허브 처치의 주일 찬양을 맡았다. 화려하지 않게. PA 없이. 함께 부르는 방식으로.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주일, 라심이 모르는 가사를 따라 부르려고 애쓰는 모습을 봤다. 라심은 한국어를 못 읽었다. 그런데 옆 사람이 손가락으로 가사를 짚어주고 있었다.
그 순간 최서연은 자신이 찬양을 '드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박진혁의 진리의 빛 교회는 2035년 말 기준으로 아직 존재했다. 일부 지부는 문을 닫았지만 강남과 서울 본부는 유지됐다. 소송은 계속됐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43만으로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 강의를 봤다.
한지수는 그것을 보면서 낙담하지 않았다. 더 이상.
포식자는 빛의 부재 속에서 자란다.
그렇다면 답은 포식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빛을 켜는 것이다.
PCK 허브 처치는 작은 빛이었다. 인천 부두의 녹슨 창고에서 켜진 조그만 빛.
하지만 그 빛이 이나연을 회복시켰다. 유하늘을 방 밖으로 나오게 했다. 박재현 부부가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빛은 주장하지 않는다. 빛은 그냥 켜진다.
그리고 어둠은 빛이 있는 곳에서 더 이상 어둠으로 있을 수 없다.

작가의 노트
이 소설은 한국 교회의 실제적 현황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예수선교단과 온무리교회는 실존하는 단체를 모델로 했습니다. 그들이 한국 기독교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며, 이 소설에서 서술된 내용은 그 역사적·사회적 역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지, 현재 해당 단체나 구성원들에 대한 평가가 아닙니다.
통계 수치들은 실제 연구 결과들을 참조했으나 소설적 가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 연구를 위해서는 목회데이터연구소,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교사회책임 등의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와 강민준 목사는 완전한 허구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교회들이 한국 곳곳에 실제로 존재합니다. 낡은 건물에서, 적은 수의 사람들과 함께, 조용하게 빛을 켜고 있는 교회들이.
이 소설이 그 교회들에 대한 작은 헌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  록
대안 공동체 교회를 위한 12가지 실천 지침
소설 속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의 실험을 바탕으로 실제 교회에서 적용 가능한 실천 방안을 정리합니다.
이 지침은 소설 속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의 실험을 바탕으로, 실제 교회에서 적용 가능한 실천 방안을 정리한 것입니다.
지침 1 — 재정 완전 공개부터 시작하라




매달 수입과 지출 전체를 교인들과 공유하십시오. 목사 사례비 포함. 처음에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 불편함이 신뢰로 바뀌는 데 보통 3개월이 걸립니다. 재정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이후의 어떤 노력도 기반이 없습니다.
지침 2 — '먼저 밥부터' 원칙을 세워라




새로 온 사람, 상처받은 사람, 이단 탈퇴자, 히키코모리. 이들에게 교리 설명이나 신앙 권면보다 밥을 먼저 제공하십시오. 배고프고 고립된 사람에게 말씀은 두 번째입니다. 밥상 공동체가 예배 공동체보다 먼저입니다.
지침 3 — 질문이 허용되는 공간을 만들라




설교 후 질문 시간을 정기적으로 허용하십시오. '좋은 질문'만 받지 마시고, 불편한 질문도 받으십시오. "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목사가 모든 답을 가진 척하는 목사보다 더 안전합니다.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 공동체는 이단과 구조적으로 같습니다.
지침 4 — 탈퇴를 환영하라




교인이 교회를 나가겠다고 할 때 붙잡지 마십시오. 떠나는 사람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어디로 가세요? 거기서 잘 되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이것이 이단 공동체와 가장 명확하게 구별되는 지점입니다.
지침 5 — 이단 탈퇴자 전담 돌봄팀을 구성하라




이단을 빠져나온 사람들을 위한 전담 소그룹이 필요합니다. 이 그룹의 리더는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정기적 만남, 심리 상담 연계, 법률 지원 정보 제공. 이 세 가지를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십시오.
지침 6 — 히키코모리와 사회적 고립 청년을 위한 '느린 문'을 만들라




즉각적인 참여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처음 몇 달은 그냥 오게 하십시오. 요구하지 마십시오. 관계를 강요하지 마십시오. 느린 속도로 신뢰를 쌓는 것이 이들에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성급한 '환영'이 오히려 이들을 다시 방으로 몰아보낼 수 있습니다.
지침 7 — 예배를 관람이 아닌 참여로 설계하라




설교를 줄이고 나누는 시간을 늘리십시오. 전문 예배팀보다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찬양을 우선하십시오. 가끔 교인이 이야기하는 '이야기 예배'를 시도하십시오.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완벽하지 않음이 오히려 진정성을 만듭니다.
지침 8 — 지역사회와 연결되라




교회 인근의 복지관, 이주 노동자 쉼터, 청년 자살 예방 기관 중 하나와 파트너십을 맺으십시오. 교인들이 그 기관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하도록 연결하십시오. 봉사는 강제가 아닌 선택이어야 하지만, 그 기회를 교회가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외부를 향한 실천이 없는 교회는 내향적으로 썩어갑니다.
지침 9 — 목사의 불완전함을 숨기지 마라




목사가 잘 모르는 것, 실수한 것, 힘든 것을 솔직하게 나누십시오. 완벽한 지도자 이미지가 추종자를 만들지 신앙인을 만들지 않습니다. 목사가 먼저 자신의 불완전함을 드러낼 때, 교인들도 자신의 불완전함을 꺼낼 수 있습니다.
지침 10 — 교회의 성공 지표를 바꿔라




출석 인원과 헌금 규모로 성공을 측정하지 마십시오. 대신 이런 것들을 측정하십시오. 얼마나 많은 이단 탈퇴자가 회복됐는가. 히키코모리 중 몇 명이 사회로 나왔는가. 취업 연계를 통해 몇 명의 삶이 달라졌는가. 교인 중 재정 상황을 투명하게 아는 비율이 얼마인가. 이것들이 진짜 성공의 지표입니다.
지침 11 — 카리스마적 지도자 구조를 해체하라




담임 목사 1인에게 모든 결정권이 집중되는 구조를 바꾸십시오. 재정위원회, 목회위원회, 지역사회 연계위원회를 투명하게 운영하십시오. 카리스마적 지도자에게 의존하는 공동체는 그 지도자가 흔들릴 때 함께 무너집니다. 구조가 건강해야 사람이 건강합니다.
지침 12 — 인터넷 중독 청년을 위한 '오프라인 작은 것들'을 설계하라




인터넷 의존 청년들에게 '빠져나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대신 인터넷보다 더 좋은 것들을 보여주십시오. 목요일 저녁 밥 한 그릇, 함께 쓰레기 줍기, 타갈로그어 쪽지 하나. 거대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작고 따뜻한 실제 경험들이 인터넷보다 더 강합니다. 디지털 세계는 현실의 삶을 시뮬레이션하지 못합니다. 교회가 그 현실의 삶을 먼저 살아야 합니다.

맺음말
엔터테인먼트는 문이 될 수 있지만 집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전도단이 연 문, 온누리교회가 넓힌 문. 그 문들은 분명 중요했습니다. 그 문을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문 안에 집이 없었습니다.
집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집은 조용합니다. 집은 불완전합니다. 집은 실패도 허용합니다. 집은 나갔다가 다시 와도 됩니다.
PCK 인터내셔널 허브 처치는 그 집을 짓고 있습니다. 인천 부두의 녹슨 창고에서. 서툴게. 천천히.
그리고 그 집에서, 오래된 것들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이 한국 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은 하나입니다.
집이 되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