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의 의자
Sooni's Chair
— 열두 살 소녀가 살았다. 그리고 걸었다. —
프롤로그: 2019년 서울, 어느 새벽
새벽 2시 17분.
87세의 이순이는 잠에서 깼다. 꿈 때문이었다. 매번 같은 꿈. 배 위에서 보이던 바다. 회색 바다. 끝이 없는 회색.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손녀 민아가 켜놓고 간 TV가 작동 중이었다. 뉴스 자막이 흘러갔다.
【속보】 강남 클럽 버닝썬 내부 성폭행·마약 의혹... 경찰 유착 정황 포착 / YTN 2019.1.28
순이는 TV 앞에 멈췄다.
화면 속 기자가 말하고 있었다. 강남의 클럽. 마약. 성폭행. 몰래 찍힌 영상. 경찰이 알면서도 눈 감았다는 이야기.
그녀는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바꾸려 했다. 그런데 손이 멈췄다.
채널이 바뀌며 또 다른 자막이 흘렀다.
【국제】 이란 테헤란, 히잡 미착용 시위 여성 마흐사 아미니 경찰 구금 중 사망... 전국으로 번지는 "여성, 생명, 자유" 시위 / KBS 2022.9
이순이는 두 개의 뉴스 자막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그녀는 시간이 섞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9년과 1944년이 같은 무게로 눈앞에 있었다. 강남의 클럽과 필리핀 마닐라의 어느 골목이 같은 냄새로 코끝에 있었다.
그녀는 TV를 껐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창가 의자에 앉았다.
서울의 새벽 하늘이 창 너머로 보였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1944년이 왔다.
✦ ✦ ✦
제1부: 열두 살, 1944년 봄 — 전라남도 어느 마을
1장. 복순이의 봄
박복순의 열두 살 봄은 뒷산에서 시작했다.
전라남도 함평 들판 너머로 산이 있었고, 산에는 진달래가 피었고, 진달래 아래로 복순이와 동무들이 뛰어다녔다. 분이, 갑돌이, 옥례, 그리고 두 살 어린 막례. 다섯 명이 짝이 되어 온 봄 들판을 쏘다녔다.
복순이는 개구쟁이였다. 치마를 걷어 올리고 개울을 건넜고, 나무에 올라 새 둥지를 들여다봤다. 어머니가 "계집아이가 그렇게 함부로 굴면 시집을 못 간다"고 했지만, 복순이에게 시집은 아직 머나먼 어른들의 이야기였다.
그 봄, 마을에는 이상한 것들이 하나씩 붙기 시작했다.
주재소 담벼락에 종이 한 장이 붙었다. 복순이는 글을 읽을 줄 알았다. 서당에 다니지는 못했지만 오빠가 가르쳐줬다. 종이 앞에 서서 또렷하게 읽었다.
"여자 정신대 근로령. 조선 내 여자 정신대를 조직한다. 나라를 위해 일하는 영광스러운 길에 동참하라. 공장에서 일하면 임금이 지급되고 좋은 음식이 제공된다."
"분이야, 이게 뭐래?"
"공장에서 일하는 거래. 돈도 준대."
"공장이 어딨어?"
"일본이나 만주 쪽이라는데."
복순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임금. 좋은 음식. 그 단어들이 낯설게 반짝였다. 그들의 집에서 임금이라는 것은 아버지가 1년에 두어 번 쌀 한 섬을 팔고 받아오는 것이었고, 좋은 음식이라는 것은 명절에 먹는 쑥떡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를 복순이는 몰랐다.
열두 살이었으니까.
2장. 마을에 온 사람들
5월 어느 날,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왔다.
조선인 남자 둘과 일본인 같아 보이는 사람 하나였다. 그들은 마을 어귀에서 아낙들에게 말을 걸었다. 복순이는 옆에서 분이와 함께 그것을 봤다.
"공장에 가면 한 달에 얼마씩 드리고, 부모님께도 선금을 드립니다. 선금은 오 원이에요. 일본 공장이 아니라 조선 안에 있는 곳이고, 2년 계약이면 됩니다."
아낙들이 수군거렸다.
"딸 가진 집 있으면 알아보세요. 십사 세에서 이십 세 사이 처녀면 됩니다."
복순이는 분이의 팔을 잡아당겼다.
"쟤들 뭐래?"
"처녀들 데려간대. 공장에."
"공장에 왜 처녀를 데려가?"
분이가 대답하지 못했다. 둘 다 몰랐다. 그 물음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그날 저녁, 어머니가 복순이를 불렀다. 부엌에서 밥을 퍼다 놓으며 말했다.
"복순아, 낮에 사람들 봤제?"
"봤어요."
"너한테 그런 이야기 오면 절대 안 돼. 알겄지? 절대."
어머니의 목소리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있었다. 복순이는 그것을 눈치챘다. 어머니가 두려워하고 있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두려움이 목소리에 섞여 있다는 것은 알았다.
"왜요, 어머니? 돈도 주고 밥도 준다는데."
"그냥 안 되는 거여. 어른 말 들어."
복순이는 밥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어머니가 말하지 않는 것이 뭔지.
그러나 열두 살 소녀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3장. 가을이 오고
그해 가을, 복순이의 집에 불행이 왔다.
아버지가 징용으로 끌려갔다. 탄광이라고 했다. 어디 탄광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사흘을 울다가 그 뒤로 울지 않았다. 대신 눈이 달라졌다. 무언가를 매일 아침 결심하는 사람의 눈이 됐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쌀이 절반도 남지 않았다. 공출로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어두운 밤에 쌀자루를 마루 밑에 숨기는 것을 복순이는 보았다. 들키면 큰일 난다고 어머니가 속삭였다.
11월의 어느 날.
복순이가 장에 심부름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낯선 남자 둘이 길가에 서 있다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너 박복순이 아니냐? 함평 면장이 너 보내라 했다."
"저요? 왜요?"
"공장 일이다. 부모한테 돈 벌어다 줄 수 있어. 와봐."
복순이는 발을 떼지 않았다.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절대 안 된다고.
"저 어머니한테 물어봐야 해요."
"어머니한테는 우리가 말했다. 면에서 하는 거라 어머니도 아신다."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복순이는 그것을 몰랐다.
그녀는 심부름 바구니를 든 채, 낯선 남자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을 어귀에서 뒤를 돌아봤다. 집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어머니가 저녁밥을 짓는 연기였다.
복순이는 곧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 ✦ ✦
제2부: 배 위에서 — 1944년 겨울
4장. 배
배는 컸다. 복순이가 처음 보는 크기의 배였다.
부두에는 그녀 말고도 여자들이 있었다. 스무 명쯤. 대부분 열다섯에서 스무 살 사이였다. 복순이는 그중 가장 어렸다. 몇몇은 울고 있었고, 몇몇은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한 여자가 복순이에게 말을 걸었다. 경상도 말씨였다.
"몇 살이고?"
"열둘요."
"열둘이라고? 어떻게 온 거고?"
"공장 일 하러요. 돈 번다고 해서요."
여자가 입술을 꽉 다물었다. 말을 삼켰다.
나중에 복순이는 그 표정이 무슨 표정인지를 알게 된다. 말해줄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표정.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항구가 멀어졌다. 조선 땅이 작아졌다.
복순이는 갑판에 서서 그것을 바라봤다.
추웠다. 겨울 바다는 회색이었다. 끝이 없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울었다. 소리 없이. 손으로 입을 막고.
어머니. 어머니.
그 이름이 입술에서 떠나지 않았다.
5장. 도착
필리핀 마닐라.
복순이는 그 이름을 배 안에서 들었다. 어디인지 몰랐다. 일본도 아니고 만주도 아닌 곳. 조선에서 배로 몇 날을 가야 하는 곳.
도착한 곳은 마닐라 외곽의 작은 마을이었다. 건물 한 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조 건물. 방이 여러 개 있었다. 각 방에 번호가 써 있었다.
복순이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도착하고 사흘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 사흘 동안 그녀는 울었다. 밥을 먹지 않았다. 어린 나이의 몸이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현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녀의 방 번호는 7번이었다.
그 방에서 그녀의 열두 살이 끝났다.
✦ ✦ ✦
제3부: 7번 방 — 1944년 겨울에서 1945년 여름
6장. 함께 있는 사람들
건물 안에는 조선 여자들 외에 필리핀 여자들도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빛으로 통하는 것들이 있었다.
옆방에 말숙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경기도 화성 출신, 열여섯 살. 복순이보다 네 살 많았지만 이 세계에서는 그녀가 언니이자 어머니였다.
"복순아, 밥은 먹어야 해. 안 먹으면 더 힘들어."
말숙이가 밥그릇을 들고 왔다. 복순이는 거부했다가 받았다가 했다.
"우리 언제 집에 가?"
말숙이가 대답하지 않았다.
"말숙 언니, 집에 언제 가?"
"...모르겠어."
그 대답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모른다는 것은 때로 가장 정직한 대답이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대답이기도 하다.
복순이는 그날부터 하루하루를 세기 시작했다. 달력이 없었으므로, 창문으로 보이는 달의 모양으로 날을 셌다. 초승달, 반달, 보름달. 그 사이클이 몇 번 반복되었는지를 손가락으로 눌러 기억했다.
7장. 일상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일상
군인들이 없는 시간이 있었다.
아침 일찍. 그리고 가끔 오후의 한두 시간.
그 시간에 여자들은 빨래를 했다. 밥을 같이 먹었다. 때로는 작은 마당에 나가 햇빛을 쬐었다.
말숙이가 콧노래를 부를 때가 있었다. 고향 민요였다. 복순이는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목소리가 작아서 들릴까 말까 했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몸이 잠깐 함평 들판으로 돌아갔다.
필리핀 여자 리나가 어느 날 망고를 가져왔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노란 망고. 말숙이가 잘라 나눠줬다. 복순이는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달고, 이상하게 달고, 눈물이 날 것 같이 달았다.
"이게 뭐야?"
"망고래. 여기 과일이래."
"맛있다."
"응, 맛있어."
둘이 웃었다. 이 건물 안에서, 두 사람이 웃었다.
그 웃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 안에서는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다.
복순이는 마당에서 필리핀 하늘을 봤다. 파란 하늘. 조선 하늘과 같은 색이었다. 하늘만큼은 여기나 거기나 같다는 것을, 그녀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그것이 그녀가 가진 가장 작은 위로였다.
8장. 전쟁이 가까워지다
1945년이 되면서 뭔가가 달라졌다.
비행기 소리가 자주 들렸다. 처음엔 가끔이더니, 나중엔 밤낮으로 들렸다. 폭격 소리도 들렸다. 멀리서, 그러다 조금씩 가까이서.
군인들의 얼굴이 달라졌다. 아까와 다른 종류의 흉포함이 생겼다. 패배를 앞둔 자들의 흉포함.
말숙이가 어느 날 밤 복순이 방으로 기어왔다. 둘이 꼭 붙어 앉아 폭격 소리를 들었다.
"복순아, 전쟁이 끝나면 집에 갈 수 있을까?"
"그러겠지. 전쟁이 끝나면."
"우리 어머니가 걱정할 텐데."
"나도."
두 사람은 오래 말없이 앉아 있었다. 폭격 소리가 또 들렸다. 창문이 흔들렸다.
"복순아."
"응?"
"우리 살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복순이는 말숙이의 손을 잡았다. 어둠 속에서.
"살자. 언니."
그 약속이 그녀를 살렸다. 그 약속이 나중에 그녀를 살아있게 했다.
9장. 8월
1945년 8월.
갑자기 조용해졌다.
군인들이 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담당자들도 보이지 않았다.
말숙이가 처음으로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아무도 막지 않았다. 그녀가 돌아와 말했다.
"전쟁이 끝났대."
복순이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났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면서도, 그 말이 실감되지 않았다. 마닐라의 뜨거운 8월 햇빛이 마당에 쏟아졌다. 어디선가 필리핀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렸다.
복순이는 마당에 나가 그 햇빛 아래 섰다.
몸이 울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 울음이었다. 무릎이 꺾였다. 마당 바닥에 주저앉았다.
열세 살이었다.
말숙이가 달려와 그녀를 안았다.
"울어. 실컷 울어. 이제 울어도 돼."
복순이는 울었다. 마닐라의 8월 하늘 아래서, 조선의 어머니를 부르며, 실컷 울었다.
✦ ✦ ✦
제4부: 돌아가는 길 — 1945년 가을
10장. 배를 타고
귀환 배가 마련된 것은 9월이었다. 모든 것이 혼란이었다. 미군이 있었고, 필리핀 사람들이 있었고, 일본 군인들이 항복한 채로 있었다.
복순이와 말숙이는 함께 배를 탔다. 같은 배에 50명쯤의 조선 여자들이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침묵 속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배 위에서 말숙이가 물었다.
"복순아, 집에 가면 뭐 할 거야?"
"...밥 먹고 싶어. 어머니가 해준 밥."
"나는 동생들 보고 싶어. 막내가 지금 몇 살일까."
복순이는 창밖 바다를 봤다. 오는 길에 봤던 그 회색 바다가 아니었다. 가을 바다는 푸른빛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돌아간다는 것이 단순한 귀환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떤 것들은 돌아갈 수 없다.
어떤 것들은 한 번 잃으면 다시 찾을 수 없다.
그녀는 그것을 열세 살에 알았다.
11장. 조선에 도착해서
부산항에 도착했을 때, 부두에는 아무도 마중 나와 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족들은 그녀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살아있는지도 몰랐다.
복순이는 부산에서 기차를 탔다. 말숙이와 헤어졌다. 경기도와 전라도는 방향이 달랐다.
"언니, 잘 가."
"복순아, 잘 살아. 알았지? 잘 살아야 해."
말숙이가 그녀를 꽉 안았다. 함께 울었다.
기차가 움직이면서 말숙이의 얼굴이 멀어졌다.
복순이는 그 얼굴을 평생 기억했다. 그리고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함평에 도착한 것은 10월 어느 날이었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달렸다. 집이 보였다.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뒤를 돌았다.
한동안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달려왔다. 복순이를 끌어안았다. 어머니가 울었다. 복순이도 울었다.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 둘이 한참을 울었다.
"복순아. 복순아."
어머니는 그 이름을 수백 번 불렀다.
"네가 어디 갔는지. 내가 얼마나. 내가 얼마나."
복순이는 어머니의 등을 안았다. 얇아진 등이었다. 1년이 지나는 동안 어머니가 늙었다.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어디 있었는지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어머니가 알아서는 안 된다고, 그 순간 직감으로 알았다.
어머니에게 이 짐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12장. 마을의 시선
마을이 달랐다.
정확히는 마을 사람들의 눈이 달랐다.
복순이가 장에 나가면 몇몇 아낙들이 수군거렸다. 멀리서 보이는 수군거림이었다. 그녀가 가까이 가면 멈췄다. 그러나 멈추기 전의 눈빛은 이미 그녀에게 닿아 있었다.
분이가 찾아왔다. 옛날 동무였다. 어색했다. 복순이가 없는 1년 동안 분이는 자랐고, 세상은 바뀌었다.
"복순아, 어디 갔다 왔어?"
"공장."
"어느 공장?"
"...멀리."
분이가 무언가를 더 물으려다 말았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긴 대화였다.
복순이는 자신이 왜 달라졌는지를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마을에서 살 수 없을 것이었다. 그것을 열세 살이 알았다.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아도, 그 수치심이 무엇인지를, 그녀의 몸이 이미 배워버렸다.
그것이 가장 잔인한 것이었다.
잘못한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러나 수치심은 그녀의 것이 되었다.
✦ ✦ ✦
제5부: 살아가는 것 — 1946년 이후
13장. 공장
1946년 봄, 복순이는 마을을 떠났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녀를 모르는 눈들이 있는 곳으로.
대구의 방직 공장이었다. 실 뽑는 기계가 하루 종일 돌아가는 곳. 열두 시간씩 서서 일했다. 손이 트고 허리가 아팠다. 임금은 적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과거를 몰랐다.
공장 기숙사에는 그녀 또래의 여자들이 많았다. 각자 자기 사정을 안고 온 사람들이었다. 많이 묻지 않았다. 많이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그녀에게 편했다.
같은 기숙사의 정자라는 여자가 말을 걸었다.
"고향이 어디야?"
"전라도."
"멀리서 왔네. 왜 대구로?"
"...그냥."
정자가 더 묻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의 우정의 시작이었다. 묻지 않는 우정.
밤에 기숙사에서 잠이 오지 않을 때, 복순이는 천장을 바라봤다. 필리핀의 하늘이 떠올랐다. 파란 하늘. 망고의 단맛. 말숙이의 목소리. 잘 살아. 알았지? 잘 살아야 해.
살고 있었다. 살고는 있었다.
그것으로 지금은 충분했다.
14장. 결혼
공장에서 3년을 일하고 그녀는 결혼했다.
남편은 경상도 출신의 이씨였다. 전쟁 때 다리를 다쳐 절었지만 성실한 사람이었다. 복순이의 과거를 알지 못했다. 복순이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거짓말인가. 그녀는 오래 생각했다. 그러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말했다가 결혼이 깨지면,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침묵을 선택했다.
그 침묵이 평생의 무게가 될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아이가 태어났다. 딸이었다. 주연이라고 이름 지었다.
복순이는 딸을 처음 안았을 때 한참을 울었다. 남편은 기뻐서 우는 줄 알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 아이에게 내 이야기를 말해줄 수 있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말해줄 수 없었다. 아직.
아이가 자랐다. 딸 주연이 초등학교에 가고, 중학교에 가고, 결혼을 했다.
손녀가 태어났다.
복순이는 손녀를 처음 안았을 때, 그 아이의 얼굴에서 열두 살 자신의 얼굴을 봤다.
그 순간 뭔가가 그녀 안에서 흔들렸다.
이 아이가 열두 살이 될 때, 이 아이는 그저 열두 살이어야 한다고.
그것이 그녀가 처음으로 한 능동적인 생각이었다.
15장. 하나님 앞에서
복순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50대 중반이었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처음엔 그냥 앉아 있었다. 찬송가도 제대로 부르지 않았다.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가, 아무도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그 자리가, 편했다.
그러다 어느 주일, 목사님이 설교 중에 말했다.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십니다. 아무도 당신을 기억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복순이는 그 말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을 찾아갔다. 사람들이 다 나간 뒤에. 혼자 남아서. 목사님 앞에 앉아서 그녀는 처음으로 말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50년 만에.
전부를 말하지는 못했다. 일부만 말했다. 그래도 말하는 동안 몸이 떨렸다.
목사님이 말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복순이는 그 말이 귀에 들어왔지만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두 번째 들었을 때, 조금 들어왔다.
"하나님 앞에, 당신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세 번째 들었을 때, 그녀는 다시 울었다.
50년 만에.
그 눈물은 필리핀 마당에서 울었던 눈물과 달랐다. 그때의 눈물은 두려움과 고통의 눈물이었다. 이 눈물은... 뭐라 이름 붙이기 어려웠다. 녹는 것 같은 눈물이었다. 오래 단단하게 굳어 있던 것이 녹기 시작하는 눈물.
그날 이후로, 그녀는 하나님 앞에서 자주 질문했다.
"나는 왜 이렇게밖에 되지 않았습니까?"
대답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질문하는 것 자체가 조금씩 그녀를 바꿨다. 죄인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 ✦ ✦
제6부: 수요일의 결심 — 1992년 이후
16장. TV 앞에서
1992년 1월.
TV에서 뉴스가 나왔다. 복순이, 이제 이순이라는 이름으로 60년을 산 그녀는 TV 앞에 앉았다.
"일본 정부 위안부 강제 동원 첫 공식 인정... 서울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수요 시위 시작"
그녀는 TV 화면을 봤다. 일본 대사관 앞에 여성들이 서 있었다. 손에 현수막을 들고.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그 여성들의 얼굴 중에 자신 또래의 얼굴들이 있었다.
이순이는 TV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화면 속에서 인터뷰하는 여성이 말했다.
"이제 나이가 많아서 억울한 채로 죽기 싫어서 나왔습니다."
이순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 여성이 말하는 것을, 그녀는 전신으로 알아들었다. 한 글자도 남기지 않고.
억울한 채로 죽기 싫어서.
그녀도 그 마음이었다. 60년 동안 그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가지 못했다. 딸 주연이가 몰랐고, 손녀가 몰랐고, 이 동네 사람들이 몰랐다. 나가는 순간 모든 것이 알려진다. 그 두려움이 더 컸다.
그래서 TV 앞에서, 혼자 울었다.
17장. 베트남 뉴스
그로부터 몇 년 후, TV에서 또 다른 것을 봤다.
"한국군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 증언... 현지 생존자들 한국 정부에 사과 요구"
이순이는 TV 앞에서 굳었다.
화면에는 베트남의 작은 마을이 나왔다. 생존자들이 증언했다. 어린이들이 죽었다.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다. 한국군이 그 마을에 있었던 날에.
이순이는 오래 TV를 바라봤다.
그 베트남 여자의 눈이 보였다. 증언하는 여자의 눈이. 그 눈에서 그녀는 자신을 봤다.
나라가 다르고, 전쟁이 다르고, 시대가 달랐다. 그러나 그 눈빛은 같았다.
국가의 폭력.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든, 어느 시대에서든, 가장 먼저 겨누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순이는 몸으로 알았다.
약한 자들. 여자들.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은 언제나 침묵 속에 묻혔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그 생각이 그녀를 오래 앉혀두었다.
국가가 잘못을 했을 때, 그것을 말하는 것이 국가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침묵이 배신이라는 것.
이순이는 60대 후반에 그것을 알았다.
18장. 일본의 침묵
해가 지나도 일본은 사과하지 않았다.
1993년 고노 담화가 나왔다. 사과에 가까운 말들이 담겼다. 그러나 법적 배상은 없었다. 2015년 한일 합의가 나왔다. 이순이는 TV로 그것을 봤다.
"한일 위안부 합의 타결... 일본 정부 10억 엔 출연,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최종적. 불가역적.
이순이는 그 단어들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미 끝났다고.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그때 그녀의 딸 주연이 옆에 있었다. 주연이 말했다.
"어머니, 다행이네요. 이제 해결됐네요."
이순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해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딸은 몰랐다. 몰라서 저렇게 말할 수 있었다.
생존자들이 반대했다. TV에 나와서 말했다. "우리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순이는 그 말을 들으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도 말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
아직이었다.
✦ ✦ ✦
제7부: 2019년 겨울, 서울 새벽 — 다시 현재로
19장. 버닝썬과 마흐사
2019년, 서울의 새벽.
이순이는 창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TV를 껐지만 두 개의 자막이 눈앞에 남아 있었다.
강남 클럽에서 여자들이 당했다는 뉴스. 이란에서 여자가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었다는 뉴스.
달랐고 같았다.
달랐다: 장소가 다르고, 시대가 다르고, 이유가 달랐다.
같았다: 국가나 권력이 여자의 몸을 통제하려 했다는 것. 그것에 저항한 여자가 피해를 입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이 한동안 수군거리다가 잊을 것이라는 것.
이순이는 창밖 서울의 밤하늘을 봤다.
마닐라의 파란 하늘이 겹쳐 보였다. 베트남 여성의 눈빛이 보였다. 수요 시위에 나온 할머니들의 얼굴이 보였다. 마흐사 아미니의 사진이 보였다.
87세의 이순이는 오래 앉아 있었다.
20장. 손녀 민아
새벽 4시, 방문이 열렸다. 손녀 민아였다. 스물다섯 살. 서울에 직장을 다니면서 할머니 곁에 살고 있었다.
"할머니, 아직 안 주무세요?"
"응, 좀 안 오네."
민아가 들어와 이순이 옆에 앉았다. 창밖을 함께 봤다.
"할머니, 무슨 생각해요?"
이순이는 민아를 봤다.
손녀의 얼굴. 열두 살의 자신이 겹쳐 보이던 그 얼굴. 지금은 스물다섯이 되었다. 이 아이는 그저 스물다섯이었다. 열두 살에 빼앗기지 않았다. 스물다섯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았다.
"민아야."
"예, 할머니."
"할머니가 오늘 할 말이 있어."
민아가 이순이를 봤다.
이순이는 숨을 들이켰다.
70년 동안 말하지 않았던 것을, 지금 이 새벽에, 이 손녀에게, 처음으로.
"할머니가 열두 살 때... 어떤 일이 있었어."
민아가 조용히 들었다.
이순이는 처음으로 전부를 말했다.
마을 어귀의 종이 한 장에서 시작해서. 낯선 남자들을 따라 걸었던 것. 배 위에서 본 회색 바다. 필리핀의 파란 하늘. 말숙이. 망고. 돌아오던 배. 마을 사람들의 눈빛. 공장. 결혼. 침묵. 70년의 침묵.
말하면서 몸이 떨렸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민아는 처음엔 굳어 있었다. 그러다 울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이순이가 말을 마쳤을 때, 새벽 하늘이 조금 밝아오고 있었다.
"할머니..."
"응."
"할머니 잘못이 아니에요."
이순이는 그 말을 들었다.
목사님이 50년 전에 해준 말. 손녀가 지금 해주는 말. 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말이, 처음으로 가슴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어쩌면 70년 동안 기다린 말이었는지도 몰랐다. 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이 말을.
"민아야."
"예."
"할머니가 다음 주에... 수요일에... 어디 좀 가야 할 것 같아."
민아가 이순이의 손을 잡았다.
"같이 가요, 할머니."
21장. 수요일
2019년 2월의 수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주한 일본 대사관 앞까지 걸어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그러나 이순이에게는 70년이 걸린 길이었다.
민아가 그녀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다른 손에는 작은 현수막을 들었다. 민아가 새벽에 직접 종이에 써서 만든 것이었다.
"나는 여기 있었습니다. 이제 말합니다. 이순이, 87세."
집회 장소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젊은 사람들도 있었고, 이순이 또래의 어른들도 있었다. 외국인들도 있었다.
마이크 앞에서 누군가 말하고 있었다.
"1992년 1월 8일에 시작된 수요 시위가 오늘 1375회를 맞았습니다."
이순이는 그 숫자를 들었다.
1375번의 수요일.
그 수요일들 중 한 번도 오지 않은 자신을 생각했다. 두려워서. 부끄러워서. 말할 수 없어서.
그러나 지금은 여기 있었다.
겨울 바람이 불었다. 이순이는 민아의 손을 더 꽉 쥐었다.
일본 대사관 건물이 보였다.
그녀는 그 건물을 바라봤다.
70년 전의 회색 바다가 눈앞에 겹쳤다. 말숙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살아. 알았지?
살았다.
그녀는 살았다. 그리고 지금 여기 서 있었다.
이순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닦지 않았다.
민아도 울고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역사를 지우지 마라!"
이순이는 구호를 따라 외치지 않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 서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열두 살에 빼앗겼던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70년의 침묵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는 그녀의 것이었다.
이 추운 2월의 수요일 오전, 일본 대사관 앞의 이 자리는.
87세의 박복순, 이순이의 자리였다.
누가 뭐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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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의자
수요 시위 현장 한켠에는 소녀상이 있다.
소녀는 의자에 앉아 일본 대사관을 바라보고 있다. 두 손은 무릎 위에. 맨발이 땅에서 살짝 떠 있다. 분노도 절망도 없이, 다만 존재하는 눈빛으로.
소녀상 옆에는 빈 의자가 하나 있다.
이순이는 그 빈 의자를 봤다.
민아가 말했다.
"할머니, 거기 앉아요."
이순이는 천천히 걸어가 빈 의자에 앉았다.
소녀와 나란히.
소녀는 청동이었고, 이순이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았을 때, 무언가가 완성되는 것 같았다.
이순이는 소녀의 얼굴을 봤다.
열두 살의 얼굴.
자신의 얼굴.
그녀는 소리 없이 말했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소리로.
"잘 살았어. 네가 잘 살았어."
서울의 겨울 하늘에서 햇빛이 잠깐 비쳤다.
소녀상의 어깨 위로 빛이 내려앉았다.
이순이는 눈을 감았다.
필리핀의 파란 하늘이 보였다. 말숙이가 보였다. 망고가 보였다. 어머니의 굴뚝 연기가 보였다.
그리고 마흐사 아미니가 보였다. 베트남 마을의 여자가 보였다. 버닝썬의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던 여자가 보였다.
다 달랐고, 다 같았다.
이순이는 천천히 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다.
일본 대사관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바라봤다. 두려움 없이.
87세의 이순이는 그렇게 앉아 있었다.
마침내. 자기 자리에.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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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소설은 허구입니다. 박복순, 이순이는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역사는 허구가 아닙니다.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은 공식적으로 위안소를 운영했습니다. 동원된 여성의 수는 최소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그중 조선 여성이 가장 많았고, 가장 어린 경우는 10대 초반이었습니다.
생존자들은 귀환 후 오랫동안 침묵했습니다. 사회의 시선, 가족에 대한 걱정, 수치심이라는 이름으로 덮인 것들이 그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잘못한 것은 그들이 아니었는데.
1992년 1월 8일,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한 생존자들이 처음으로 수요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그 시위는 2024년 현재까지 1600회를 넘겼습니다.
2015년 한일 합의에 생존자들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의 동의 없는 합의가 해결이 될 수 없다고 그분들은 말했습니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 사건들도 실재합니다. 국가의 폭력은 그것을 행사하는 나라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약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나은 나라로 나아가는 힘이 됩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이것입니다.
그분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분들이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 수치심은 그분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녀상 옆의 빈 의자는 비어 있습니다. 누구든 앉을 수 있습니다. 기억하겠다는 사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