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푸나의 의자
The Chair in Takapuna
— 기억과 침묵, 그리고 한 의자 사이에서 —
프롤로그: 타카푸나의 아침
뉴질랜드의 봄은 10월에 온다.
타카푸나 해변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한국 공원의 포후투카와 나무에는 이미 진홍빛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뉴질랜드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부르는 나무다. 여름이 크리스마스인 나라에서, 꽃이 피는 시간도 거꾸로다.
오용태 집사는 매일 아침 이 공원을 지나 교회로 간다.
그는 57세다. 부산 출신으로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뉴질랜드로 이민을 왔다. 오클랜드 노스쇼어에서 소규모 식품 유통업을 하며, 타카푸나 한인 교회의 집사로 22년을 섬겼다. 아내 박명순, 딸 지수, 아들 현우. 그는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 위에 세워졌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진짜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요즘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이유는 공원 한쪽에 놓일 예정인 것 때문이다.
청동으로 만든 소녀상.
이른 아침, 공원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꺼낸 그는 어젯밤에 보다 잠든 유튜브 영상을 다시 찾는다. 제목: "소녀상의 진실 — 당신이 몰랐던 역사." 구독자 87만 명의 채널이다. 그는 이어폰을 꽂는다. 새소리 사이로 목소리가 들어온다.
"위안부 동원은 국가가 강제한 것이 아닙니다. 민간 업자들이 임금을 제시하고 모집한 것입니다. 이것을 성노예라고 부르는 것은 역사 왜곡입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멈춘다.
왜냐하면 그 순간, 딸 지수가 두 달 전에 물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빠, 소녀상이 왜 나쁜 거야? 그 할머니들이 불쌍한 거 아니야?"
그는 그때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포후투카와 꽃봉오리가 바람에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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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집사님의 세계
1장. 주일 아침
타카푸나 한인교회의 주일 예배는 오전 11시에 시작한다.
오용태 집사는 10시 20분에 도착해서 주차 안내를 돕는다. 이것이 그의 봉사다. 22년 동안 한 번도 빠진 적 없다. 비가 와도, 몸이 아파도. 딱 한 번, 아들 현우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만 빠졌다.
이날 아침, 주차장에서 그는 이웃 집사인 최재원을 만난다.
"용태 씨, 이번 주 당회에서 소녀상 건 또 나온대요."
"또요?"
"이번엔 설치 반대 서명 운동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정 장로님이 주도하신다고."
오용태는 잠시 말이 없었다. 예배당 입구에서 박명순이 손을 흔든다. 빨리 들어오라는 신호다.
"나중에 이야기해요."
그는 아내 쪽으로 걸었다.
예배 중, 찬양을 부르는 동안에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두 개의 목소리가 충돌하고 있었다.
하나는 어젯밤 유튜브의 목소리. "소녀상은 반일 민족주의 좌파의 정치 도구입니다."
다른 하나는 딸 지수의 목소리. "그 할머니들이 불쌍한 거 아니야?"
그는 어느 쪽도 완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2장. 정 장로와 당회
정기 당회는 월요일 저녁 7시에 열렸다.
정현모 장로는 교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70대 초반, 경남 진주 출신, 1990년대 초반에 이민을 와서 지금은 건설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목소리가 크고 확신이 강하며, 오랫동안 한 방향을 보아온 사람의 눈빛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료를 꺼냈다. 인쇄된 A4 용지 세 장이었다.
"소녀상 설치에 반대하는 근거를 정리해봤습니다."
그가 읽기 시작했다.
"첫째, 위안부 문제는 역사적으로 논쟁이 있는 사안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강제 동원이 과장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한쪽 주장만 담긴 조형물을 공원에 세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둘째, 소녀상 설치는 우리 교민 사회와 일본인 커뮤니티 사이에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소녀상 운동의 배후에는 반미·반일 성향의 좌파 단체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이 운동에 동조하는 것은 영적으로 위험합니다."
당회실이 조용했다.
오용태 집사는 당회원이 아니었지만, 회의 참관이 허락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이 약간 떨렸다. 왜 떨리는지는 몰랐다. 동의해서인지, 동의하지 않아서인지.
당회장 윤성호 목사가 말했다.
"오늘은 여러 의견을 들어보는 것으로 합시다. 결정은 다음 당회에서."
정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
3장. 딸 지수의 질문
그날 밤, 오용태는 늦게 귀가했다.
거실에서 지수가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었다. 열여섯 살인 지수는 타카푸나의 뉴질랜드 고등학교에 다닌다.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 나이다.
"아빠, 학교에서 과제 나왔어. 지역 사회 이슈에 대해 조사하는 거."
"무슨 이슈?"
"한국 공원 소녀상이요. 어떻게 생각해요, 아빠?"
오용태는 소파에 앉았다. 피로한 몸이었다.
"복잡한 문제야."
"어떻게 복잡한데요?"
"역사 해석이 여러 가지거든."
지수가 노트북 화면을 돌려 아버지에게 보여줬다. 영어 위키피디아 페이지였다. "Comfort Women"이라는 제목 아래, 유엔 인권위원회 보고서 요약이 있었다.
"여기에는 강제 동원이었다고 나와 있어요. 유엔에서도 인정한 거잖아요."
"유튜브에 보면 다른 이야기도 있어."
"유튜브요?" 지수가 살짝 눈썹을 올렸다. "아빠, 유튜브는 누구든 올릴 수 있잖아요."
오용태는 말이 막혔다.
"그리고요," 지수가 계속했다. "학교 역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이거 1996년에 유엔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서 공식으로 성노예라고 규정한 거래요. 그게 유튜브보다 더 믿을 만한 자료 아닌가요?"
오용태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수가 말했다.
"아빠, 나는 그 할머니들이 불쌍해요. 그게 잘못된 감정이에요?"
"아니."
"그럼 소녀상이 왜 문제예요?"
오용태는 오랫동안 딸을 바라봤다.
"...아빠도 잘 모르겠다."
그 대답이 입에서 나왔을 때, 그는 스스로 놀랐다.
22년 동안 교회에서 집사로 살아오면서, 그는 "잘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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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각자의 진실
4장. 정 장로의 세계
정현모 장로에게는 이 모든 것이 명확했다.
그는 1950년생이다. 한국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절, 경남 진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인민군을 피해 남으로 내려온 황해도 출신이었다. 그 아버지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알았고, 그 지식을 아들에게 전해주었다.
정 장로는 1970년대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다. 유신 시절이었다. 주변에는 운동권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는 거기 가담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는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들 중 일부는 북한 사상에 물들었고, 나중에 종북 세력이 되었다.
그의 세계에는 명확한 선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대(對) 빨갱이 세력.
하나님의 나라 대(對) 사탄의 세력.
이 두 선은 그에게 겹쳐 보인다.
소녀상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들을 그는 안다. 정의기억연대. 그 단체의 전 대표가 나중에 횡령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것이 그에게는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그 운동은 처음부터 돈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이 확신을 의심한 적이 없다.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유튜브 피드, 그의 카카오톡 단체방, 그의 교회 인맥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사흘 전, 손녀 서연이가 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학교에서 소녀상 이야기 배웠는데요. 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거야."
"근데 할아버지, 그 할머니들이 겪은 일은 진짜잖아요."
정 장로는 말했다.
"그래, 그분들이 고생한 건 안타까운 일이지. 그런데 그걸 동상 만들어서 공원에 세우는 게 맞느냐, 그게 문제인 거야."
"왜요? 전쟁에서 돌아가신 군인들 동상은 세우잖아요."
정 장로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손녀가 돌아간 뒤, 그는 오랫동안 거실에 앉아 있었다.
5장. 이주연 권사의 기억
이주연 권사는 교회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 중 하나다.
74세. 경북 안동 출신. 1985년에 남편을 따라 뉴질랜드에 왔다. 남편 박재호는 10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혼자 타카푸나의 아파트에 산다.
그녀는 이 소녀상 논쟁이 시작된 이후로, 교회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아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그 이유를 물어보지 않는다.
이주연 권사가 입을 열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위안부였다.
어머니는 살아서 돌아왔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동의 작은 마을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평생을 살았다. 결혼을 했고, 딸을 낳았고, 밭을 갈았고, 늙어서 죽었다.
이주연이 그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이었다. 혼미한 정신으로 어머니가 중얼거린 것들. 이름 모를 곳의 이름 모를 일들. 이주연은 그 말들을 전부 들었고, 전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전부 혼자 안고 있다.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자식들에게도. 아무에게도.
그래서 이 소녀상 논쟁이 시작되었을 때, 그녀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정 장로가 "소녀상은 좌파의 도구"라고 말할 때, 그녀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좌파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그냥 열여섯 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어머니의 비밀이 세상에 나온다. 그것이 두려웠다. 아직도.
6장. 박선영 전도사의 고민
박선영 전도사는 33살이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1.5세대다. 부모님이 1990년대에 이민을 왔고, 그녀는 오클랜드에서 학교를 다니고, 신학교를 나와 지금 이 교회에서 사역한다.
그녀에게 이 논쟁은 두 겹으로 불편하다.
첫 번째 불편함: 자신이 배운 신학과 교회 어른들의 신학이 다르다는 것.
신학교에서 그녀는 배웠다.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셨다. 억압받는 자를 해방시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이것은 해방신학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 본문이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 어른들은 말한다. 소녀상은 좌파 운동이다. 기독교인은 참여하면 안 된다.
그녀에게 이 두 목소리는 같은 성경을 읽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두 번째 불편함: 그녀가 말을 꺼내면 어른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전도사는 교회 위계에서 아래쪽이다. 목사님보다 아래, 장로님보다 아래, 권사님보다도 아래. 그녀가 의견을 내면 "젊은 사람이 세상 물정을 몰라서"라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그녀도 말하지 않는다. 지금은.
하지만 어느 날 밤, 잠이 오지 않아 성경을 펼쳤을 때, 그녀는 이사야 58장을 읽었다.
"네가 알고자 하는 것이 이것이 아니냐.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하며..."
그녀는 그 구절을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노트에 적었다. "내가 침묵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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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세 사람이 만나다
7장. 수요일 저녁 성경 공부
교회 수요 성경 공부는 저녁 7시 30분에 시작한다. 이날 참석자는 열두 명이었다.
성경 공부가 끝난 뒤, 누군가 말을 꺼냈다.
"소녀상 건, 이 자리에서 한번 이야기해봐도 될까요?"
말을 꺼낸 것은 박선영 전도사였다. 그녀는 말하기 전에 잠시 눈을 감았다. 오늘 말하기로 결심했다. 이사야 58장을 읽은 이후로.
방 안의 공기가 약간 달라졌다.
정 장로가 말했다.
"좋아요. 이야기해봅시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 안에 단단한 것이 있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의 부드러움.
박 전도사가 말했다.
"저는 소녀상에 대해 신학적으로 생각해봤습니다. 성경에서 약자를 기억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잖아요. 약한 자를 돌보고, 억압받은 자를 해방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요. 그 관점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것이 왜 기독교적이지 않은지 저는 아직 이해가 안 됩니다."
정 장로가 말했다.
"그 운동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요? 종북 단체들이에요."
"배후가 누구든 피해자의 고통은 달라지지 않는 것 아닌가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오용태 집사는 이 장면을 지켜봤다. 그는 자신이 어느 쪽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두 쪽 다 맞는 것 같기도 했고, 두 쪽 다 뭔가 빠진 것 같기도 했다.
그때, 평소에 말이 없던 이주연 권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8장. 이주연 권사가 말하다
이주연 권사의 목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들었다.
"제가 한 가지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방 안에 완전한 고요가 내렸다.
"제 어머니가..."
그녀가 멈췄다. 40년 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말이었다. 입술이 약간 떨렸다.
"제 어머니가 일제 시대에... 그 일을 겪으신 분입니다."
방 안의 사람들이 굳었다.
"어머니는 평생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저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야 알았습니다. 혼미한 중에 하신 말씀을 들었어요. 그 이후로 저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주연은 잠시 눈을 내려다봤다.
"소녀상이 좌파 운동인지 아닌지는 저는 잘 모릅니다. 배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요. 근데 저는 한 가지는 압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는 평생 부끄러워하셨어요. 자기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팠어요. 당신이 당한 일이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려서, 평생을 조용히 사셨으니까."
방 안이 오래 고요했다.
정 장로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
"...권사님,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의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아까의 단단함이 사라졌다. 뭔가를 처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어머니가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제라도. 그게 제가 소녀상에 대해 생각하는 전부입니다."
박 전도사는 눈물이 날 것 같은 것을 참았다.
오용태 집사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내려다봤다.
그의 마음속에서 두 달 동안 충돌하던 두 목소리 중 하나가, 아주 천천히,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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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정 장로의 밤
9장. 뒤바뀐 밤
정현모 장로는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했다.
이주연 권사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아내는 이미 잠들었다.
그의 뇌는 지금 두 개의 층위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한 층위에서는 그가 22년 동안 쌓아온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종북 세력. 반일 민족주의. 정치적 도구. 이 단어들이 자동으로 배열되었다.
다른 층위에서는 이주연 권사의 목소리가 있었다. "어머니는 평생 부끄러워하셨어요."
그는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불을 켜지 않고 소파에 앉았다.
어둠 속에서 그는 생각했다.
자신이 반대하는 이유가 진짜 무엇인지를.
소녀상이 좌파 운동의 도구이기 때문인가?
그 운동의 배후가 나쁘기 때문인가?
그것이 진짜 이유라면, 이주연 권사의 어머니 같은 분들의 고통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분들이 겪은 일이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었다고 해서, 그 일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그러다 핸드폰을 들었다. 유튜브를 열려다가, 멈췄다.
대신 성경 앱을 열었다.
그는 무작위로 페이지를 열었다. 미가서 6장.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정의. 인자. 겸손.
그는 그 세 단어를 오래 바라봤다.
소녀상에 반대하는 것이 정의인가. 그것이 인자인가. 그것이 겸손인가.
새벽 3시가 되었다.
정 장로는 처음으로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된 무거움이 조금 내려놓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10장. 전화
다음날 아침, 정 장로는 오용태 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태 씨, 어제 성경 공부 자리에서 권사님 말씀 들었죠?"
"예, 들었습니다."
"나... 어젯밤에 많이 생각했어요."
오용태는 조용히 들었다.
"내가 반대 논리를 정리해서 당회에 냈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게 다 내가 유튜브에서 본 내용이에요. 직접 역사 자료를 찾아본 게 아니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로님."
"그게 좀... 부끄럽더라고. 이주연 권사님은 직접 겪은 분의 딸인데, 나는 유튜브를 보고 반대한 거잖아요."
짧은 침묵.
"장로님, 저도 딸한테 제대로 대답을 못 했습니다.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용태 씨, 우리 공부를 좀 해봅시다. 제대로. 유튜브 말고, 실제 자료로요."
오용태는 잠시 말이 없었다가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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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공부하는 사람들
11장. 도서관
타카푸나 도서관은 교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토요일 오전, 정 장로와 오용태 집사, 그리고 박선영 전도사가 도서관 열람실에 모였다. 전도사가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이미 프린트된 문서들이 놓여 있었다.
"제가 미리 자료를 좀 찾아봤어요." 박 전도사가 말했다.
자료들이 펼쳐졌다.
1993년 일본 정부 고노 담화 전문. 1996년 유엔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요약. 일본 육군성 1938년 통첩 사본. 생존 피해자들의 증언록. 그리고 뉴라이트 역사관을 반박하는 학술 논문들.
정 장로가 고노 담화를 읽었다.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담당하였으나, 그 경우에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으며, 더 나아가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
그는 이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이게 일본 정부가 직접 발표한 거예요?"
"예." 박 전도사가 말했다. "1993년에요. 일본 내각관방장관이 발표했어요."
정 장로는 천천히 서류를 내려놓았다.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를 읽은 오용태가 말했다.
"유엔이 1996년에 이미 이걸 성노예라고 규정했네요. 저는 이게 최근에 만들어진 주장인 줄 알았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박 전도사가 말했다.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30년 전부터 국제 사회에서 인정된 사실이에요."
세 사람은 오전 내내 자료를 읽었다. 말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도서관 카페에 앉았을 때, 정 장로가 말했다.
"내가 반일 종족주의 책을 보고 많이 참고했는데, 그 책의 주장과 실제 일본 정부 공식 문서가 다르네요."
"예." 박 전도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책은 학계에서 많이 비판받은 책이에요. 저도 신학교에서 그 책을 역사 비평 수업에서 다뤘는데, 반박 자료가 훨씬 많았습니다."
정 장로가 커피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내가 22년 동안 교회에서 옳은 것을 가르치고, 옳은 것을 말한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목소리에서 자책이 느껴졌다.
"장로님." 오용태가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어제까지 유튜브가 역사책인 줄 알았어요."
"우리가 너무 쉽게 믿었던 것 같아요." 박 전도사가 말했다. "나쁜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결과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믿고 있었던 거니까요."
잠시 세 사람이 침묵 속에 있었다.
그러다 정 장로가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12장. 이주연 권사를 찾아가다
그 다음 날, 정 장로와 오용태 집사는 이주연 권사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이주연 권사는 두 사람이 방문한다고 했을 때 놀랐다. 그녀는 수요일 저녁 성경 공부에서 말한 뒤로 후회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것을 꺼내버렸다는 느낌.
그러나 두 사람이 들어와 앉은 뒤에 정 장로가 말한 첫 마디는 그녀의 예상과 달랐다.
"권사님,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주연은 말이 없었다.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시기 얼마나 어려우셨을까요. 40년 동안 혼자 안고 계셨다니."
이주연의 눈이 촉촉해졌다. 그녀는 눈을 내려다봤다.
"저도 자료를 더 찾아봤습니다." 정 장로가 말했다. "권사님 말씀 듣고 나서. 내가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일본 정부도 공식 문서로 인정한 내용을 내가 유튜브 보고 아니라고 했으니."
이주연이 고개를 들었다.
"장로님이 달라지셨네요."
"권사님 덕분입니다."
오용태가 말했다.
"권사님,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소녀상이 세워지면 어떤 마음이실 것 같으세요?"
이주연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타카푸나 해변 쪽 하늘이 푸르렀다.
"어머니가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되는 것 같은 마음이겠죠."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어머니가 겪은 일이 어머니의 부끄러움이 아니라, 어머니가 살아남은 진실로 기억되는 것. 그게 소녀상이 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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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당회와 그 이후
13장. 두 번째 당회
두 번째 당회가 열렸다. 이번에는 정 장로가 새로운 입장을 가지고 들어왔다.
"저번 당회에서 소녀상 반대 논거를 제가 제출했는데, 그 이후에 직접 자료를 더 찾아봤습니다."
당회원들이 그를 봤다.
"제가 그동안 참고한 자료들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1993년에 공식 문서로 인정한 내용들을, 저는 유튜브를 보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잘못된 판단이었어요."
당회실이 조용해졌다.
"그래서 저는 소녀상 설치 반대 서명 운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바꿨습니다. 찬성까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반대는 하지 않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다.
윤성호 목사가 말했다.
"장로님, 많이 생각하셨겠습니다."
"예. 그리고 이주연 권사님 이야기를 듣고 나서요. 그분 어머니가... 직접 겪으신 분이라고 하셔서."
방 안에 무거운 고요가 흘렀다.
몇몇 당회원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최재원 집사가 조용히 말했다.
"저도 반대는 안 하는 쪽으로 바꾸겠습니다."
하나씩 고개가 끄덕여졌다.
투표는 하지 않았다. 필요하지 않았다.
14장. 소녀상이 세워지던 날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타카푸나 한국 공원에 소녀상이 세워졌다.
제막식에는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한인 교민들, 뉴질랜드 시민들, 일부 일본계 주민들, 마오리 원로들.
타카푸나 한인교회에서도 사람들이 왔다.
박선영 전도사는 앞쪽에 섰다. 그녀의 눈은 소녀상을 향해 있었다. 의자에 앉은 청동 소녀. 두 손은 무릎 위에. 맨발이 땅에서 살짝 떠 있다. 정면을 향한 눈빛. 분노도 절망도 없이, 다만 존재하는 눈빛.
오용태 집사는 중간쯤에 서 있었다. 딸 지수가 그의 옆에 있었다. 지수가 조용히 물었다.
"아빠, 이제 어떻게 생각해요?"
오용태는 잠시 소녀상을 바라봤다.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분들이 여기 있었다는 것을."
지수가 아버지의 팔짱을 꼈다.
정현모 장로는 뒤쪽에 서 있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였다. 아내가 먼저 오자고 했다. 그는 처음엔 망설였지만 왔다.
소녀상 옆의 빈 의자를 바라봤다.
그는 한참 동안 그 의자를 봤다. 그러다 조용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 의자 옆에 섰다.
거기서 그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도였는지 사과였는지 그 자신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이었다.
이주연 권사는 군중 속 한켠에 혼자 서 있었다.
소녀상을 바라봤다.
어머니가 열여섯 살이었을 때의 얼굴을 떠올렸다. 사진은 없었다. 오래된 기억 속 어머니의 얼굴, 아직 주름이 없던 얼굴.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소리로.
"어머니. 이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오클랜드의 봄바람이 공원을 지나갔다. 포후투카와 꽃잎 몇 장이 떨어져 소녀상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진홍빛 꽃잎.
소녀상은 그것을 받았다. 여전히 정면을 향한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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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타카푸나, 일 년 후
일 년이 지났다.
소녀상은 여전히 타카푸나 한국 공원 한켠에 있다. 매일 누군가 꽃을 가져온다. 이름 모를 손길들.
박선영 전도사는 요즘 청년들과 소녀상 앞에서 기도회를 한다. 한 달에 한 번. 처음엔 다섯 명이었다가, 지금은 열다섯 명이 된다.
오용태 집사는 딸 지수에게 역사 이야기를 자주 한다. 예전에는 "복잡한 문제야"라고 말하던 것들을. 지금은 "이런 일이 있었어. 기억해야 해"라고 말한다. 지수는 학교 과제에서 A를 받았다.
정현모 장로는 여전히 보수적이다. 많은 것들에 대해 예전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소녀상 앞에서 고개를 숙인 그날 이후로, 그는 유튜브로 역사를 배우지 않는다. 대신 도서관을 간다. 천천히.
이주연 권사는 올해 처음으로 3.1절에 소녀상 앞에서 열린 작은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갔다. 그리고 소녀상 옆의 빈 의자에 앉았다.
아무도 그녀가 왜 앉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어머니 곁에 있는 것처럼.
타카푸나의 봄이 또 왔다.
포후투카와 꽃이 다시 피었다.
진홍빛 꽃잎이 소녀상의 어깨 위에 또 내려앉았다.
소녀는 여전히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두려움 없이.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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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소설은 허구입니다. 등장인물과 교회는 모두 가상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담고 있는 현실은 가상이 아닙니다. 뉴질랜드 한인 교민 사회에서 소녀상을 둘러싼 논쟁이 실제로 있었고, 그 안에서 보수 기독교인들의 반대가 있었고, 동시에 가족 안에 피해자의 이야기를 안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유튜브와 SNS를 통해 한인 디아스포라 커뮤니티에도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를 믿고 있습니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 단지 접한 정보가 왜곡되었기 때문에.
이 소설은 그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정현모 장로는 악인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이해가 흔들리는 순간, 그는 변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그 흔들림의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녀상 옆의 빈 의자는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누구든 앉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 의자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