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으로 틀어 막다
2부: 제주, 바람의 신학
기독교 창작 소설
등장인물
• 서충성 — 뉴질랜드 오클랜드 이민 목사, 노인케어 사역자
• 이요셉 — 서울 옥수 시장교회 담임목사
• 강민준 — 제주 출신 문화선교·상담 목사(박사), 성안교회 협력사역자
• 정민수 — 영남신학대학교 총장
• 박재범 — 뉴질랜드 열방학교장
2025년 봄,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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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주공항에서 성산포까지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내려오자 제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라산이 섬의 한가운데서 하늘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 아래로 초록이 번지고, 초록 끝에서 검은 현무암이 바다를 막고 있었다. 서충성 목사는 창문에 이마를 붙이고 그 풍경을 보았다.
섬이다.
사방이 바다로 막힌 섬. 육지와 연결되지 않는 섬. 그 섬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어떤 DNA를 가지고 있을지, 서충성은 생각했다.
뉴질랜드도 섬이었다. 그는 19년을 뉴질랜드에서 살았다. 섬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는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주는 달랐다. 뉴질랜드는 처음부터 이민자들의 섬이었다. 제주는 오래된 섬이었다. 수천 년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다 죽었다. 그 기억이 현무암 위에 새겨져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강민준 목사가 서 있었다. 제주 출신. 이 섬에서 나고 자라 신학을 했고, 다시 이 섬으로 돌아온 사람. 심리학과 신학을 결합한 박사 논문을 쓰고, 지금은 제주에서 상담과 문화선교를 결합한 목회를 하고 있었다.
"오셨어요."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제주 사람들 특유의 낮고 천천히 말하는 방식. 육지 사람들처럼 빨리 말하지 않았다.
"제주가 이렇게 바람이 심한가요?"
정민수 총장이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물었다.
강민준이 조금 웃었다.
"바람이 없는 날이 없어요. 여기선 바람을 피하려 하지 않아요. 그냥 같이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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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올레길을 걷다 — 낯선 땅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
올레길 7코스였다. 서귀포 쪽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
다섯 명이 줄을 지어 걷기 시작했다. 왼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졌다. 오른쪽으로는 밭이 이어졌다. 돌담이 밭을 나누고 있었다. 제주의 돌담은 쌓인 게 아니라 쌓여온 것이었다. 수백 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서충성이 먼저 말을 꺼냈다.
"강 목사님, 솔직하게 물어봐도 됩니까. 제주에서 목회하는 게 어때요?"
강민준이 잠시 멈췄다. 돌담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쉽지 않아요. 외지 목사에 대한 불신이 있어요."
"불신이요?"
"제주 사람들이 겪어온 역사가 있거든요.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항상 뭔가를 가져갔어요. 조선 시대엔 관리들이 왔고, 일제 때는 일본 사람들이 왔고, 해방 뒤엔 서북 출신들이 왔고. 그리고 지금은 중국 자본이 오고, 육지 투기꾼들이 오고."
이요셉이 물었다. "중국 자본이요?"
"제주 땅의 상당 부분이 중국인 소유예요. 관광지 주변 좋은 땅들이요. 제주 토박이들이 개발 붐에 밀려서 오히려 외곽으로 나가는 거예요. 자기 땅에서 쫓겨나는 거죠."
"그래서 외지 목사도 같은 눈으로 보는 거군요."
"네. '또 뭔가 빼앗으러 왔나'하는 시선이에요. 특히 서울에서 온 목사들에 대해서. '저 사람이 여기서 목회 잘 되면 서울 가는 거 아냐?' 그 의심이 있어요."
정민수 총장이 말했다. "그거 이민 교회랑 비슷하다. 서충성 목사님, 그렇지 않아요?"
서충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해요. 오클랜드 한인 교회에서도 그 거리감이 있어요. 목사는 한국에서 훈련받고 오클랜드에 와서 몇 년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거든요. 교인들은 거기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들인데. 그 사이에 괴리가 생겨요. 목사는 지나가는 사람이고, 교인은 남는 사람이야."
강민준이 말했다. "제주도 마찬가지예요. 목회자가 제주를 선교지로 보는 거, 제주 사람들은 느껴요. '저 사람한테 우리가 선교 대상이구나.' 그 느낌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같이 살아야죠. 다른 방법이 없어요."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억새가 한꺼번에 같은 방향으로 누웠다.
강민준이 계속 말했다.
"저도 제주 사람이지만, 신학교 다녀왔다가 돌아온 사람이에요. 처음엔 그게 장점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편한 사이가 되기도 했어요. 고향 사람들이 '니가 우리를 가르치러 온 거냐'는 시선을 보내거든요."
"그걸 어떻게 극복했어요?"
강민준이 웃었다.
"극복했다기보다는... 그냥 같이 있었어요. 마을 할머니들이 고사리를 꺾으러 가면 따라갔어요. 물질하는 해녀 할머니 쉬어가는 불턱에 가서 앉아 있었어요. 아무 말 안 해도요. 그냥 거기 있었어요."
이요셉이 혼자 중얼거렸다. "그냥 거기 있었어요."
서충성이 그를 돌아봤다.
"그거 서울 히키코모리 청년 이야기랑 똑같네."
이요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결국 다 같은 이야기야. 조건 없이 거기 있어주는 것."
올레길은 구불구불했다. 어디로 가는지 미리 알 수 없었다. 돌아서면 다른 풍경이 나왔다. 제주가 그런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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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아파트화, 개인화된 세상에서 — 전도가 불가능해진 시대
길이 잠시 넓어지는 곳에서 다섯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었다.
서충성이 뉴질랜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요즘 자꾸 생각하는 게 있어요. 전도가 왜 이렇게 어려워졌냐는 거예요."
"어떤 의미에서요?"
"예전에는 방문 전도가 됐잖아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는 거. 그게 지금은 거의 불가능해요."
정민수가 말했다. "아파트 때문에 그렇죠. 1층에 비밀번호가 있으니까."
"그것만이 아니에요. 아파트는 구조 자체가 폐쇄적이에요. 옆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아요.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사는 거예요. 개인화가 된 거죠."
이요셉이 끼어들었다.
"도시 교회는 종일 있어도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요. 교회 앞 길거리에 앉아 있어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교회에 관심이 없어요. 다들 이어폰 꽂고 핸드폰 보면서 걸어가거든요."
"이민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오클랜드 한인들이 사는 집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어요. 낮에 길거리에서 사람을 보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다들 차 타고 다니니까요."
강민준이 제주 이야기를 했다.
"제주도 비슷해요. 예전에는 마을 어귀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마을 어귀 자체가 없어졌어요. 도로가 넓어지고 차들이 다니면서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공간이 없어진 거예요."
"SNS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에요. SNS는 같은 관심사, 같은 세대, 같은 그룹 안에서만 돌아요. 다른 세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게 SNS에서는 안 돼요."
정민수가 말했다. "그러니까 세대가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는 건 더 어렵죠. 30대가 60대를 만나고, 60대가 20대를 만나는 게 일상에서 잘 없으니까."
"반대로 인터넷에서 붐이 있어야 하니까, 어쩌면 더 요란하게 광고해야 하는지도 몰라요.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하지만 그게 오히려 진정성을 해치는 것 같기도 하고."
박재범이 말했다.
"그러면 어디서 만나느냐는 거잖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람이 풀밭을 지나갔다.
서충성이 말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가 뉴질랜드에서 찾았어요. 그런데 이게 좀 엉뚱한 데서 찾았거든요."
"어디서요?"
"노인 케어에서요."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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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노인 케어, 거실까지 들어가는 목회
"노인 케어가 다른 이유가 뭔지 알아요?"
서충성이 말했다. 그들은 잠시 바다가 보이는 낮은 언덕에 앉았다. 파도 소리가 올라왔다.
"각 가정의 거실까지 언제나 들어갈 수 있거든요."
"거실까지요?"
"노인을 돌보러 집에 들어가면, 그 집의 안방까지 들어갈 수 있어요. 아파트 비밀번호 문제가 없어요. 초대받은 거니까요. 거실에서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해요. 그러면 안방에서 가족들이 들어요. 보이지 않는 가족들이."
이요셉이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서충성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한 인도 힌두교 어르신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해봐요."
"인도에서 뉴질랜드로 이민 온 어르신이었어요. 70세에 오셨는데, 자식들이 다 뉴질랜드에 살아서 따라오신 거예요. 근데 친구도 없고, 낯선 땅에서 10년 동안 우울하게 사셨어요. 웃지도 않고, 노래도 안 하고."
"케어를 맡게 됐어요?"
"네. 매일 3시간씩 함께했어요. 처음에는 서로 어색했죠. 저는 한국 사람이고, 그분은 인도 힌두교 어르신이니까요. 공통점이 없는 것 같았어요."
"어떻게 했어요?"
"그냥 같이 있었어요. 인도 영화를 태블릿으로 같이 봤어요. 제가 인도 영화를 전혀 모르니까, 그분이 설명해주시는 거예요. 인도 노래도 같이 들었어요. 그분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드리면, 제가 박자에 맞춰서 손뼉을 쳤어요."
강민준이 조용히 듣고 있었다.
"시바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어요. 그분이 믿는 신에 대해서 물어봤어요. '그 신이 어떤 분이에요? 어떻게 예배드려요?' 힌두 사원에 가서 어떻게 예배하는지, 힌두교 노래가 어떤 건지 다 들었어요. 제가 가르치려 한 게 아니라, 배우려고 했어요."
"그게 되는 거예요?"
"되더라고요. 그분이 처음에는 경계하셨는데, 제가 계속 물어보고 들으니까 나중에는 먼저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벵골어로 3시간씩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저는 하나도 못 알아들어요. 그냥 고개 끄덕이고, 웃고, '아, 그렇군요' 하면서요."
정민수가 웃었다. "그게 목회네요."
"그리고 집에 오기 전에 5분 정도, '나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을 불러드리고 왔어요. 제가 영어로 불렀어요. 그분이 영어를 아시니까요. 그분이 뭐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가만히 들으셨어요."
"그 어르신이 어떻게 됐어요?"
서충성이 잠시 멈췄다.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고 나서 자식 분들에게 조문 문자를 보냈어요. 그랬더니 며칠 후에 답장이 왔어요. 영어로요."
그는 핸드폰에서 저장해둔 메시지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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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뉴질랜드에서 온 편지 — 천사님께
서충성이 편지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파도 소리와 함께.
"'당신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천사였습니다. 당신이 우리 아버지를 돌봐 주어서 감사했어요.'"
이요셉이 조용히 들었다.
"'아버지는 70에 인도에서 온 후 웃지도 않고 노래도 부르지 않으셨어요. 자식들이 다 여기 살아서 오셨지만 친구도 없고 낯선 땅에서 10년간 우울하게 사셨어요.'"
바람이 잠시 멈췄다.
"'그런데 당신을 만나고 노래하는 소리를 처음 들었어요. 아버지가 그렇게 웃으시는 분인 줄 처음 알았어요.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벵골어로 3시간 동안 말씀하시는 아버지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웃게 하시고, 당신이 전해주는 노래와 이야기를 다 들었어요.'"
강민준의 눈이 촉촉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해주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가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대를 받았고 우리 나라가 잘 설계되어서 나도 당신에게 그 사랑을 나누는 겁니다. 당신과 당신의 자녀도 누군가에게 나누며 살면 좋겠다는 말을 우리는 안방과 내실에서 들었어요.'"
정민수가 안경을 벗고 눈을 닦았다.
"'아버지는 힌두교이지만 우리는 종교가 없는데, 너를 통해 기독교에 관심이 생겨서 이번 주에는 인도 교회에 가보려고 해요. 고맙습니다, 천사님에게.'"
서충성이 편지를 내려놓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파도가 왔다가 갔다.
이요셉이 먼저 말했다.
"그냥 같이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게다가 돈 받고 일했을 뿐인데."
서충성이 웃었다. 조금 쓴웃음이었다.
"케어 서비스로 간 거잖아요. 선교사로 간 게 아니라. 근데 그 거실에서 복음이 일어난 거예요. 제가 계획한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냥 필요한 사람과 같이 있어준 거예요."
박재범이 말했다.
"그게 치매 노인을 돌보러 집에 들어가는 목회 기회가 지금 넘쳐난다는 말이죠."
"넘쳐나요. 뉴질랜드에서 제가 19년 중에 1년 동안 심방하고 기도해주고 만난 사람이, 노인 케어를 하면서 그 첫 해에 만난 사람 수보다 훨씬 적었어요."
강민준이 조용히 말했다.
"제주에도 그 문이 있어요. 노인이 많아요. 자식들은 육지로 나가고, 노인 혼자 남은 집들이요. 그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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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이중섭 거리에서 물회를 먹으며 — 문화와 선교 사이
점심은 이중섭 거리 근처 식당에서 물회를 먹었다.
이중섭 거리는 서귀포 원도심에 있었다. 한국 근대 미술의 거장 이중섭이 1951년에 잠시 살았던 곳. 6.25 전쟁 중 피난민으로 이 섬에 왔다가 가장 행복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곳.
물회가 나왔다. 제주 고기국수와 물회. 빨간 양념 국물에 갈치와 다금바리가 떠 있었다. 시원하고 달콤하고 조금 매웠다.
강민준이 말했다.
"이중섭이 여기서 그림을 그릴 때 아내와 자식들은 일본에 있었어요. 그림 판 돈으로 가족을 부르려 했는데 끝내 못 만났어요. 거기서 나온 그림들이 소, 아이들, 게, 닭이에요. 그리운 것들이죠."
이요셉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예술이 그리움에서 나온다는 말이 맞네요."
"목회도 비슷한 면이 있어요.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 에덴에 대한 그리움. 잃어버린 하나님 형상에 대한 그리움. 그게 예술이 되기도 하고, 신앙이 되기도 하고."
정민수가 물었다.
"강 목사님이 문화 선교를 하는 이유가 그거예요? 예술과 신앙의 연결?"
강민준이 잠시 물회를 먹다가 말했다.
"저는 상담을 통해서 많은 분들을 만났어요. 심리학으로 접근했죠. 성도의 문제를 상처 치유, 마음챙김, 인지행동치료 같은 것으로 다루었어요. 도움이 됐어요. 실제로요. 그런데 뭔가 부족했어요."
"어떤 부분이요?"
"영적인 갈증이 더 해요. 상처가 치유되고, 관계가 좋아지고, 삶이 안정되어도 여전히 뭔가를 찾는 거예요. 그게 틸리히가 말하는 '존재의 용기'나 '존재의 근거'에 닿아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은 단순히 심리적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존재론적 물음을 가지고 있는 거죠."
서충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틸리히가 그 이야기를 했죠.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서 인간이 불안을 느끼는데, 그 불안을 해결해주는 게 신앙이라는."
"네. 그리고 몰트만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희망을 말해요. 지금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하나님의 미래가 현재로 침입해 들어온다는 거죠. 부활이 그 증거고요."
이요셉이 말했다.
"4.3 사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제주 이야기 하면서 그걸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
강민준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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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4.3의 기억 — 교회가 가해자였던 자리
물회 그릇이 치워지고 귤차가 나왔다.
제주 귤차. 따뜻하고 달콤했다.
강민준이 말을 시작했다.
"1948년 4.3 사태. 제주 사람 3만 명이 죽었어요. 7-8만 명이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이 넘는 숫자예요."
"교회는 어디 있었어요?"
"거기서 기독교의 역할이 복잡해요. 일부 서북 출신 청년들이 있었거든요. 평안도, 황해도 등 북한 지역에서 해방 후 내려온 기독교인들이요. 그 사람들이 극심한 반공 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북한에서 박해를 피해 내려온 사람들이니까요."
서충성이 조용히 들었다.
"그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이해해야 해요. 자기 가족이 공산당에 의해 죽거나 재산을 빼앗겼어요. 그 공포가 DNA에 새겨진 거예요. 제주에서 4.3이 일어나자, 그 사람들 눈에는 '공산주의자'가 보인 거예요. 그리고 그 적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어요."
이요셉이 말했다. "그 트라우마가 폭력을 낳은 거네요."
"네. 그렇다고 학살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해는 해야 해요. 그 사람들도 피해자였어요. 북한에서의 박해로부터요. 그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냈어요."
박재범이 말했다. "기독교가 그 가해에 연루된 거죠."
"제주 사람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보는지가 거기서 나와요. '저 사람들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를 죽인 사람들이다.' 그 집단 기억이 있어요. 말로는 안 해요. 하지만 몸이 기억해요."
강민준이 귤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저는 제주 사람으로서,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 그 사이에 서 있어요. 4.3 유족들을 만나면서 그 이야기를 들었어요. 상담 목회로요.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70년이 지났는데도."
"그래서 회개가 필요한 거죠."
"네. 단순한 사과가 아니라, 진짜 회개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무고하게 죽어간 분들을 기억하는 것. 그분들의 고통을 교회가 인정하는 것. 그게 먼저예요."
정민수가 말했다. "그게 이 시대 제주 목회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거네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듣는 것. 먼저 인정하는 것. 먼저 같이 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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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성안교회와 이기풍 목사 — 제주에 뿌려진 씨앗
오후에 그들은 제주 원도심으로 이동했다.
성안. 제주 성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 제주 관덕정 주변 원도심.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조용한 곳. 거기에 오래된 장로교회가 있었다.
성안교회였다.
"한국 장로교 역사에서 가장 외딴 선교지 중 하나가 제주였어요."
강민준이 설명했다. 그들은 교회 앞에 섰다.
"1908년, 이기풍 목사님이 제주에 오셨어요. 한국 최초의 장로교 목사 중 한 분이에요. 평양신학교 첫 번째 졸업생이시죠. 일곱 목사 중 한 분이 제주로 파송됐는데, 그게 이기풍 목사님이에요."
이요셉이 교회를 올려다봤다. 오래된 돌로 만든 건물이었다. 제주 현무암이 아니라 조금 밝은 돌이었다.
"제주에서의 첫 시작이 어땠어요?"
"매우 힘들었죠. 섬 사람들의 저항이 컸어요. 돌팔매를 맞기도 하셨어요. 무속 신앙이 강한 섬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목사님이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돌봤어요. 당시 의료 시설이 없었으니까요. 섬기면서 관계를 만들어가셨어요."
"지금 이 교회가 그 결과인 거군요."
"네. 100년이 넘은 교회예요. 그 안에 제주 기독교의 역사가 담겨 있어요."
그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단순했다. 오래된 나무 의자들. 높은 창문으로 빛이 들어왔다.
강민준이 말을 이어갔다.
"성안교회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예배 방식이 독특해요. 청년들이 참여하는 드라마 예배, 연극 예배를 해요. 제주의 이야기를 극으로 만들어서 예배로 드리는 거예요."
"어떤 이야기들이요?"
"4.3 이야기도 있고요. 해녀 이야기도 있어요. 제주 설화들도 있어요. 제주의 삶과 고통과 희망을 극으로 풀어내는 거예요. 청년들이 직접 대본 쓰고, 연기하고, 그게 예배가 돼요."
박재범이 눈을 빛냈다.
"문화 선교가 그렇게 이루어지는 거네요. 예배 자체가 문화 행위가 되는 거고."
"그냥 와서 앉아서 설교 듣는 예배가 아니라, 참여하는 예배예요. 내가 이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예배. 그게 특히 제주 청년들에게 먹혀요."
이요셉이 물었다. "왜요?"
"제주 청년들이 뿌리 정체성의 혼란이 있거든요. 제주 사람인데, 제주 것들이 다 사라져가고 있어요. 제주어를 못 하는 세대가 됐고, 제주 문화를 모르는 세대가 됐어요. 근데 교회 예배에서 그 이야기가 나오면, '아, 이게 나 이야기구나' 하는 거예요."
서충성이 말했다.
"정체성의 고향을 주는 거네요. 제주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그리고 그게 하나님과 연결될 때, 신앙이 추상이 아니라 삶이 돼요. '내가 살아온 이 제주 땅에 하나님이 계셨구나. 이 고통의 역사 속에도 하나님이 계셨구나.' 그게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과 만나는 거죠. 고통과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미래가 현재로 침입해 들어온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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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제주 물가와 바가지, 그리고 진짜 가난
저녁이 가까워질 때, 강민준이 솔직한 이야기를 했다.
"제주 물가 이야기를 해야 해요. 육지 사람들이 제주 와서 '바가지 상술'이라고 욕하거든요."
이요셉이 물었다. "실제로 비싸요?"
"비싸요. 그런데 이유가 있어요. 제주에는 자원이 없어요. 물도 없고, 땅도 좁고, 육지에서 모든 걸 가져와야 해요. 물류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요. 그 비용이 물가에 반영되는 거예요. 바가지가 아니라 현실이에요."
"그런데 육지 사람들이 그걸 욕해요?"
"욕해요. 특히 소셜미디어에서요. '제주 가지 마라, 바가지 심하다.' 그 말이 상처가 돼요. 제주 사람들 입장에서는 억울한 거예요. 우리가 나쁜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는데, 욕만 먹는 거니까요."
서충성이 말했다. "그게 섬의 소외감이네요."
"네. 그리고 그 소외감이 교회에 대한 감정과도 연결돼요. 육지에서 온 목사들이 그 제주의 현실을 모르고 들어와요. 제주 사람들의 경제적 어려움, 구조적 취약함을 모르고. 그냥 복음만 전하려 하는 거예요."
"그래서 더 거부감이 생기는 거고."
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2025년 기준으로, 제주 인구는 약 68만 명이에요. 이 중 기독교인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 낮아요. 한국 전체 기독교인 비율이 약 18% 수준인데, 제주는 그보다 낮아요. 이단 문제도 심각하고요."
정민수가 말했다. "이단이요?"
"제주가 어떤 면에서 이단들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에요. 외딴 섬. 폐쇄성. 정통 교회에 대한 불신. 그 빈자리를 이단이 채우는 경우가 있어요."
서충성이 말했다.
"그러면 제주 선교는 단순히 교회를 하나 더 세우는 게 아닌 거네요."
"맞아요. 제주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제주 사람들의 마음 상처를 알아야 하고, 제주의 경제 구조를 알아야 해요. 그리고 거기서 섬기는 것. 그게 제주 선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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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복지와 복음 — 교회 복지의 딜레마
해가 기울었다. 서귀포 항구가 보이는 카페에 앉았다. 배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한상원 사무총장이 전화로 합류했다. 서울에 있었지만 화상으로 연결됐다.
서충성이 먼저 말했다.
"우리 교회가 하는 복지가 의심을 받잖아요. 개교회 복지 사역이 결국 개인 이사장 것이 된다는 인식이 있고, 비리가 많아지니까요."
한상원이 화면 속에서 말했다.
"맞아요. 그게 교회 복지의 가장 큰 문제예요. 투명성이 없어요. 감사가 제대로 안 돼요."
"뉴질랜드는 사회복지를 교회에 위탁해요. 장로교, 구세군, 성공회 세 군데 복지 재단이 하는데, 아주 철저하게 관리돼요. 정부 감사를 받고, 서비스 질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위탁이 취소돼요."
강민준이 말했다. "한국 교회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될 수 있어요. 총회 차원에서 복지 재단을 만들고, 철저히 감사 관리를 하고, 좋은 질의 서비스를 하는 재단이 되면요. 그게 되면 그를 통한 복음의 통로가 열려요."
한상원이 말했다.
"총회 차원의 일만이 아니에요. 커뮤니티 복지 센터와 심방 목사, 심방 전도사를 겸한 노인 케어 전문가들의 좋은 케어 서비스와 영적 서비스. 그게 결합되면 교회가 낮은 자리에서, 삶의 자리로, 안방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어요."
이요셉이 말했다.
"목회가 상석이 아닌 섬김으로 되어지는 시간이 필요해요."
"목사의 생활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케어 사역을 하면 목사가 직접 몸으로 섬겨야 하니까요. 그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서충성이 말했다.
"마오쩌둥이 했던 것처럼, 목사들에게 의무적으로 노인 케어 육체 봉사 수련이 필요한지도 몰라요. 농촌으로 보내서 실제 노동을 경험하게 했던 것처럼. 물론 그 방식과 이념은 다르지만, 몸으로 섬기는 훈련은 필요해요."
정민수가 신학교 총장의 입장에서 말했다.
"그게 신학교 커리큘럼에 들어가야 해요. 요양보호사 자격증, 사회복지사 자격증.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요. 목사 안수받기 전에 케어 현장 실습을 의무화하는 거예요."
"그게 실제로 가능해요?"
"가능해요. 의지가 있으면요. 그리고 그렇게 훈련받은 목사들이 나오면, 그 목사들이 교회와 복지 현장을 동시에 섬길 수 있어요. 영적인 예배를 이끄는 리더이면서, 동시에 삶의 현장에서 섬기는 사람이 되는 거죠."
기도와 영성, 말씀 선포와 섬김. 그 둘이 분리되지 않는 목회. 그게 다음 시대에 필요한 목사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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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브루그만의 상상과 2025년 통계
서귀포 항구에 저녁빛이 번졌다. 배들의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정민수가 말을 꺼냈다.
"브루그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발터 브루그만. 성경적 상상력에 대해 쓴 신학자요."
강민준이 눈을 빛냈다. "제가 박사 논문에서 그 분 인용했어요."
"브루그만이 뭐라고 해요? 교회 목회에서 예언자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현재의 지배적 의식에 도전하고,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 그게 구약 예언자들이 한 일이고, 예수님이 한 일이라는 거죠."
서충성이 말했다. "그게 지금 한국 교회에 어떻게 적용돼요?"
"한국 교회가 너무 오랫동안 지배적 의식 안에 있었어요. 성장 이데올로기, 번영 신학, 대형화, 세속적 성공과 교회의 성공을 동일시하는 것. 그게 지배적 의식이 됐어요. 브루그만이 말하는 예언자적 상상력은 그걸 해체하는 거예요. '교회가 이래야 한다'는 전통적 이미지를 해체하고, 다른 모습의 교회를 상상하는 것."
이요셉이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교회. 옥수 시장 옆 교회. 그게 브루그만적 대안인 거네요."
"맞아요. 그리고 제주 성안교회의 드라마 예배가 그거예요. 전통적인 예배 방식을 해체하고, 제주 이야기로 예배를 재구성하는 것. 그게 예언자적 상상력이에요."
박재범이 핸드폰을 꺼냈다.
"2025년 실제 통계를 보면요. 한국 기독교인 수가 2015년 인구 조사에서 967만 명이었는데, 2020년 중간 조사에서 800만 명대로 떨어졌어요. 5년 만에 약 160만 명이 줄었어요."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어요. 특히 2030 세대의 이탈이 심각해요. 20-30대 기독교인 비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요. 2025년 현재, 20대 기독교인 비율은 2015년 대비 약 35% 감소한 것으로 추정돼요."
서충성이 말했다. "그러면 지금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거네요."
"빠르게 움직이되, 방향이 맞아야 해요. 더 화려한 예배, 더 큰 건물, 더 유명한 목사로는 이 추세를 막을 수 없어요. 오히려 작아지는 것, 섬기는 것,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것. 그게 브루그만이 말하는 대안적 미래예요."
강민준이 말했다.
"제주가 그 실험실이 될 수 있어요. 제주는 이미 다 잃어버린 곳이거든요. 제주 기독교는 이미 작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다른 방식을 시도할 수 있어요. 잃을 게 없을 때 더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으니까요."
"잃어버린 것이 오히려 자유가 되는 거네요."
"그게 부활의 역설이에요. 몰트만적으로요. 죽음에서 희망이 나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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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젊은이와 바람의 교회
다음날 아침, 강민준이 성안교회 청년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다섯 명의 청년들이 카페에 나왔다. 모두 제주 토박이였다. 제주에서 나서 제주에서 사는 젊은이들.
수진은 제주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서귀포에서 작은 공방을 운영했다. 덕구는 해녀 어머니를 둔 어부의 아들로, 지금은 해양 환경 관련 NGO에서 일했다. 명화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재일은 IT 회사에 다니며 원격 근무를 했다. 소이는 카페를 운영했다.
모두 성안교회 드라마 예배 팀이었다.
서충성이 물었다.
"여러분이 교회에 계속 다니는 이유가 뭐예요?"
수진이 먼저 말했다.
"드라마 예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그냥 친구 따라 왔어요. 근데 예배에서 제주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4.3 이야기, 해녀 이야기, 제주 신화 이야기. 그게 나 이야기인 거예요. '아, 교회가 나를 아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덕구가 말했다.
"저는 솔직히 처음에 기독교가 싫었어요. 집안이 무속 신앙이거든요. 어머니가 무당은 아닌데, 제사도 지내고, 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기독교는 그걸 다 부정하잖아요. '우상 숭배'라고요."
"그런데 왜 교회에 오게 됐어요?"
"강 목사님이 집에 오셔서요. 어머니한테도 인사하시고, 저희 집 방식을 존중하면서 대화하셨어요. '너희 신에 대해 말해줘'라고 먼저 물으시더라고요. 그게 달랐어요. 보통 기독교인들은 '그건 틀렸다'고 먼저 말하는데."
이요셉이 흥미롭게 들었다.
재일이 말했다.
"제가 IT 일을 하니까 데이터를 보거든요. 제주 청년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지. 제일 큰 이유가 '나와 상관없다는 느낌'이에요. 예배도 설교도 나 이야기가 아닌 거예요. 그냥 추상적인 이야기. 나는 제주에서 살고 있고, 제주의 문제를 안고 있는데, 교회는 그걸 모르는 것 같아요."
서충성이 말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교회가 뭐에요?"
모두가 잠시 생각했다.
소이가 말했다.
"바람 같아요. 제주는 바람이 강하잖아요. 바람을 피하려고 하면 힘들어요. 근데 같이 살면 괜찮아요. 바람이 있으니까 시원하기도 하고, 바람 덕에 감귤이 맛있기도 하고. 교회가 그런 것 같아요. 피하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것."
강민준이 조용히 웃었다.
"그게 좋은 신학이에요. 바람과 함께 사는 교회. 성령이 바람이잖아요. 그 바람에 저항하지 않고, 그 바람을 타는 교회."
박재범이 말했다.
"그리고 그 청년들이 드라마 예배를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직접 이야기를 쓰고, 직접 연기하고. 그게 구성주의적 신앙 공동체예요. 목사가 다 주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덕구가 말했다.
"올해 드라마 예배 주제가 '오멩이'예요. 제주어로 올챙이라는 뜻인데, 외지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기도 해요. 제주에 온 외지인들, 이민자들, 중국 관광객들. 그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예요."
이요셉이 말했다. "그게 지금 제주에서 가장 실제적인 이야기겠네요."
"네. 중국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제주가 바뀌고 있거든요. 제주 사람들이 쫓겨나는 느낌. 외지인이 싫어지는 마음. 근데 우리가 과거에 외지인이었던 때도 있었다는 거, 이기풍 목사님도 외지에서 오신 분이라는 거. 그걸 극으로 만들면서 우리가 배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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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진짜 영이 살아있는 교회
오후에 그들은 다시 올레길로 돌아갔다.
바람이 더 강해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 바람이 거슬리지 않았다. 어느새 바람과 함께 걷고 있었다.
강민준이 말했다.
"제가 상담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사람들이 심리적 치유가 이루어진 후에 오히려 더 영적인 갈증을 느껴요."
"어떤 의미에서요?"
"상처가 치유되면 여유가 생겨요. 그 여유 속에서 더 깊은 질문이 나와요. '그래서 나는 왜 사는가. 이게 다인가.' 심리학이 거기까지는 못 가요. 거기서 신앙이 필요한 거예요."
서충성이 말했다.
"그게 틸리히의 존재론이죠. 비존재의 위협 앞에서 인간은 불안을 느끼는데, 그 불안이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와도 그 질문에 답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면 교회가 프로그램과 활동으로 가득 차 있거든요. 그 깊은 질문과 씨름할 공간이 없어요."
이요셉이 말했다.
"진짜 영이 살아있는 교회가 필요하다는 거네요."
"네. 기도가 진짜인 교회. 영성이 형식이 아닌 교회.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는 예배. 그게 없으면 상담도 복지도 문화 선교도 결국 빈 껍데기예요."
"그런데 그게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강민준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다를 바라봤다.
"이기풍 목사님이 처음 제주에 오셨을 때, 아무것도 없었어요. 건물도 없고, 지지자도 없고, 돈도 없었어요. 그분이 가진 건 기도하는 무릎뿐이었어요."
"그래요?"
"목사님 일기에 보면, 매일 새벽 바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해요. '하나님, 이 섬 사람들을 사랑해주세요.' 그 기도가 100년 후 이 교회로 이어진 거예요."
서충성이 조용히 말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열매를 보지 못할 수 있다."
"맞아요. 그게 제주 선교의 본질이에요. 그리고 어쩌면 한국 기독교 전체의 다음 시대에 필요한 자세예요. 지금 내가 보는 열매가 없어도, 씨를 뿌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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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교회 복지 재단의 꿈 — 낮은 자리로
저녁 식사는 성안교회 강당에서 했다.
교인들 몇몇이 음식을 준비해놓았다. 제주 흑돼지 수육, 옥돔 구이, 빙떡. 간소했지만 따뜻했다.
한상원이 화면으로 합류했다.
"뉴질랜드 모델 이야기를 좀 더 해요. 장로교 복지 재단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서충성이 설명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정부가 교회에 케어 서비스를 위탁해요. 장로교, 구세군, 성공회가 각각 복지 재단을 운영하고요. 정부 기준에 맞춰서 서비스 질을 유지해야 해요. 못 맞추면 위탁이 취소돼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투명하고 질 높은 서비스가 이루어지죠."
"한국에서도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려면 교단이 먼저 바뀌어야 해요. 개교회 중심이 아니라 교단 중심의 복지 체계가 필요하고, 그게 정부의 신뢰를 얻어야 해요."
박재범이 말했다.
"제주도에서 그 실험을 해볼 수 있어요. 작은 섬이니까요. 제주 지역 교단이 연합해서 복지 재단을 만들고, 그게 작동하는 것을 보여주면,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는 모델이 돼요."
강민준이 말했다.
"제주에는 독거 노인이 많아요. 자식들이 육지로 나가고 혼자 남은 분들이요. 그분들을 케어할 전문 인력이 없어요. 교회가 그 공백을 채울 수 있어요."
"그러면 교회가 그 거실에 들어갈 수 있고."
"네. 그리고 제가 상담 목사로서 거기서 영적 서비스도 함께 할 수 있는 거예요. 케어와 상담, 영성이 한 사람 안에서 통합되는 거죠."
서충성이 말했다.
"목회가 상석이 아닌 섬김으로. 거실로 들어가는 목회. 노인의 손을 잡고 찬송을 불러드리는 것. 그게 다음 시대 목회의 핵심이 되어야 해요."
이요셉이 말했다.
"근데 그러면 목사가 굉장히 많은 것을 해야 하잖아요. 설교도 하고, 케어도 하고, 상담도 하고. 그게 가능해요?"
"혼자 다 할 수는 없어요. 팀으로 해야 해요. 설교 목사, 케어 전문가, 상담사, 사회복지사가 팀이 되는 거예요. 각각의 역할이 다르지만, 같은 방향을 보는 팀."
한상원이 말했다.
"총회가 그 팀을 지원하는 인프라가 돼야 해요. 개교회가 혼자 할 수 없으니까요. 교단이 자격 교육을 제공하고, 연결 네트워크를 만들고, 함께 감사받는 시스템을 만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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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선교지로서의 제주 — 변방에서 핀 꽃
다음날 아침, 마지막 일정이었다.
성산일출봉 아래 작은 카페. 일출봉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아침 빛을 받은 일출봉은 조각 같았다.
서충성이 말했다.
"제주가 선교지예요. 그걸 다시 확인하게 됐어요."
강민준이 말했다. "그런데 어떤 의미의 선교지냐가 중요해요."
"어떤 의미로 말하는 거예요?"
"선교지라고 하면 보통 '개척해야 할 미지의 땅'으로 보잖아요. 아직 복음이 안 들어간 곳. 그런 시각으로 오면 제주 사람들이 경계해요. '저 사람이 우리를 프로젝트 대상으로 본다'는 거죠."
"그러면?"
"제주가 선교지라는 건, 하나님이 이미 이 땅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의미의 선교지예요. 이기풍 목사님 때부터,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하나님이 이 섬 사람들 안에서 이미 뭔가를 하고 계신 거예요. 우리는 그걸 발견하러 오는 거예요."
정민수가 말했다. "임재론적 선교신학이네요."
"네. 하나님이 먼저 거기 계신다는 것. 우리가 하나님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이미 계신 하나님을 함께 만나는 것."
서충성이 말했다.
"그게 인도 힌두교 어르신 이야기랑 연결돼요. 그분 집에서 하나님이 이미 일하고 계셨어요. 저는 그걸 발견한 것뿐이에요. 그분의 웃음, 그분의 노래, 그분의 10년 외로움에 하나님이 이미 계셨던 거예요."
강민준이 천천히 말했다.
"4.3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계셨어요. 해녀 할머니들이 바다에서 숨을 참으며 일하는 그 자리에도 하나님이 계셨어요. 중국 자본에 밀려 외곽으로 나가야 하는 토박이 제주 사람들 안에도 하나님이 계세요."
이요셉이 말했다.
"그러면 선교사의 역할은 그분들과 함께 그 하나님을 찾아가는 거네요.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먹고, 함께 거기 있으면서."
"맞아요. 그게 브루그만이 말하는 예언자적 상상력이기도 해요. 지금 보이지 않는 것, 지금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 속에서 다른 현실을 상상하는 것. 하나님의 미래가 지금 현재에 침입해 들어오는 것을 상상하는 것."
✦ ✦ ✦
제15장: 2025년, 교회의 봄
일출봉이 아침 빛에 밝아지고 있었다.
서충성이 말했다.
"이 여행을 통해서 내가 확인한 게 하나 있어요."
모두가 그를 봤다.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고들 해요. 통계가 그걸 보여줘요. 2025년 현재, 한국 기독교인이 계속 줄고 있어요. 특히 청년들이요. 그게 맞아요."
"그런데?"
"근데 동시에, 새로운 것들이 싹트고 있어요. 성안교회 청년들이 드라마 예배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옥수 시장 교회에서 히키코모리 청년이 청소를 시작했어요. 뉴질랜드 힌두교 가정에서 아들이 인도 교회를 찾아갔어요."
강민준이 말했다.
"변방에서 꽃이 피는 거예요."
"큰 교회에서, 화려한 예배에서가 아니라, 제주 돌담 틈에서, 시장 골목에서, 힌두 할아버지 거실에서. 거기서 뭔가가 피어나고 있어요."
이요셉이 말했다.
"그게 부활의 패턴이야. 죽음처럼 보이는 곳에서 생명이 나오는 것."
박재범이 말했다.
"몰트만이 그 이야기 했죠. 희망은 낙관주의가 아니에요. 낙관주의는 지금 상황이 좋아보일 때 나오는 거고. 희망은 죽음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미래를 붙드는 거예요."
서충성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거기 있는 거예요. 제주에서, 오클랜드에서, 서울 시장에서, 힌두교 할아버지 거실에서. 그냥 거기 있는 것. 손가락이 아니라 손으로, 혼자가 아니라 함께."
✦ ✦ ✦
에필로그: 바람이 가르쳐준 것
성산일출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바람이 멈췄다.
제주에서 바람이 멈추는 순간은 드물었다. 그 드문 순간에 섬이 아주 고요해졌다.
서충성이 바다를 바라봤다. 제주 바다는 색깔이 여러 층이었다. 가까운 데는 초록, 조금 멀면 파랑, 더 멀면 짙은 남색.
강민준이 그 옆에 섰다.
"서 목사님, 뉴질랜드 돌아가시면 또 힌두교 어르신 케어하실 거예요?"
"하죠. 그게 내 목회예요. 이제."
"힘들지 않으세요?"
서충성이 웃었다.
"힘들어요. 근데 그 어르신 문자 받고 나서, 그 힘듦이 다르게 보여요. 내가 그냥 돈 받고 일한 게 아니었던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그 거실로 보내신 거예요."
강민준이 말했다.
"이기풍 목사님도 그렇게 느끼셨겠죠. 돌팔매 맞으면서, 힘들었을 텐데. 근데 그게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라는 것."
"100년 후에 이 교회가 있는 거잖아요."
"네."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이요셉이 뒤에서 말했다.
"제주 바람이 성령 바람 같아요. 어디서 불어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모두가 웃었다.
그들은 성산일출봉을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앞에는 공항이 있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서울로, 오클랜드로, 제주로.
그러나 이 이틀의 시간이 각자 안에 남을 것이었다.
제주 바람처럼.
제주 돌담처럼.
이기풍 목사의 무릎처럼.
힌두교 할아버지의 마지막 웃음처럼.
✦ ✦ ✦
부록: 제주에서 발견한 것들 — 다음 시대 목회를 위한 메모
이틀간의 대화에서 나온 것들을 강민준이 기록했다.
1. 역사를 듣는 목회
제주 4.3은 끝나지 않았다. 그 상처는 아직 많은 사람들 안에 있다. 교회가 해야 할 것은 먼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듣는 것이다. 그 들음 자체가 치유이고, 그 치유 안에서 복음이 자란다.
2. 거실로 들어가는 목회
아파트화, 개인화된 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통로가 노인 케어다. 전도지를 들고 두드리는 문이 아니라, 초대받은 문이다. 그 거실에서 찬송이 들리고, 기도가 들리고, 사랑이 전해진다.
3. 같이 있어주는 목회
조건 없이 같이 있어주는 것. 히키코모리 청년에게, 힌두교 할아버지에게, 제주 토박이 어르신에게. 프로그램이 아니라 존재의 동행.
4. 문화로 말하는 목회
드라마 예배, 연극 예배. 제주 이야기로 예배를 만드는 것. 브루그만적 예언자적 상상력을 예배 안에서 실현하는 것. 청년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구성주의적 신앙 공동체.
5. 회개하는 목회
4.3에서 교회가 연루된 가해의 역사를 인정하는 것. 그 회개가 먼저 있어야 제주에서 복음이 새롭게 들릴 수 있다.
6. 전문성으로 섬기는 목회
케어 전문가 목사. 상담사 목사. 사회복지사 목사. 그 전문성이 거실로 들어가는 합법적 이유가 되고, 그 섬김이 복음의 통로가 된다.
7. 교단이 지원하는 복지 목회
개교회 차원이 아닌 교단 차원의 투명한 복지 재단. 뉴질랜드 모델처럼 정부의 신뢰를 받는 서비스. 그것이 교회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8. 바람과 함께 사는 신앙
바람을 피하지 않는 것. 고통을, 변화를, 새로운 것을 피하지 않는 것. 그 바람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 제주가 가르쳐주는 신앙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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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봄, 제주에서
손가락으로 막은 자들 - 2부
바람의 신학, 거실의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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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이 이야기의 1부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시작되었다. 신학교 동기들이 각자의 선교지에서 돌아와 나눈 대화였다. 일본, 우간다, 우크라이나, 서울, 오클랜드의 이야기들이었다.
2부는 제주에서 이어진다. 바람의 섬, 아픔의 섬, 그러나 동시에 희망의 섬. 이기풍 목사의 무릎이 뿌린 씨앗 위에, 4.3의 눈물 위에, 해녀들의 숨비소리 위에, 오늘도 뭔가가 자라고 있다.
교회가 죽어간다는 말이 들린다. 통계가 그걸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변방에서 꽃이 핀다. 제주 청년들이 드라마 예배를 만들고, 힌두교 할아버지 거실에서 찬송이 들리고, 히키코모리 청년이 혼자 청소를 시작한다.
그것이 이 이야기가 말하고 싶은 것이다.
변방에서 피는 꽃. 거실에서 일어나는 목회. 바람과 함께 사는 신앙.
당신의 제주는 어디인가.